박원곤 교수 “문 대통령 베이징올림픽 참석, 국익 차원에서 신중해야”

2021년 10월 19일 오전 11:03 업데이트: 2021년 10월 19일 오전 11:03

“한국, 자유민주주의 국제 질서 유지에 능동적으로 힘 합쳐야”
“비핵화 교착상태서 남북회담 무의미…북미대화가 먼저”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중국 공산당의 인권탄압을 이유로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보이콧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내년 2월에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한 및 남·북·중 정상회담이 추진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어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14일 에포크타임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 올림픽에 참석할지에 대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다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에 온다는 조건이 필요하다”고 전제했다.

박 교수는 “문 대통령은 어떻게든 남북정상회담을 다시 개최해서 임기가 끝나기 전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고 싶겠지만 북한이 어느 정도 호응할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현실적으로도 김 위원장이 베이징에 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북한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내년 말까지 올림픽 참가 자격을 정지당해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기 어려운 데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도 변수다.

“文 베이징 방문, 얻는 것 없이 손해만 볼 수도”

박 교수는 “문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한다면 한국은 큰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베이징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보이콧하려는 현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해 2015년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재현된다면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남·북·중이 베이징에 모인다면 미국의 한국에 대한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고 봤다.

이어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에 올라간 일은 워싱턴 조야에서 일종의 이미지로 각인됐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 직후 워싱턴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한국은 중국에 경사될 것’이라는 게 미 국방부 고위관리의 첫마디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2015년 9월 박 전 대통령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천안문 망루에서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대규모 열병식을 지켜봤다. 미국은 부정적으로 반응했고 외교 참사로까지 회자되고 있다.

박 교수는 설령 문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으로 남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우리에게 득이 될 건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지난달 유엔총회에서 ‘종전 선언’을 제안한 것은 베이징 올림픽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만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종전선언 논의는 의미가 없다는 세간의 의견에 동조했다.

아울러 종전선언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입장이 다르다는 점도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말하는 종전선언은 비핵화 교착상태에서 남북·북미관계를 돌파하기 위한 일종의 마중물로 쓰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한국의 의도에 이미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으며, 북한이 대화에 임하고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종전선언을 하나의 상응 조치로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박 교수는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남북 간에도 별 의미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달 청와대 박경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어 베이징올림픽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의 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2018년에 이미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 9·19 남북군사합의까지 다 이뤄졌다”며 “남북 간 합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남북 간에 이미 맺은 합의를 북한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남·북·중 3국이 모이더라도 공동성명이 나오기는 어렵지만, 공동성명이 나온다고 해도 결국 중국이 주장하는 쌍궤병진(雙軌竝進·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을 함께 추진) 입장을 반복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없다”면서 “이런 상황은 남·북·중 대(對) 미국의 대결 구도로 비칠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러면 한국은 얻는 것도 없이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만 확인해주고 미국 조야에 퍼진 중국경사론을 확증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불참 시 중국과의 관계도 잘 관리해야”

박 교수는 지난달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방한을 거론하며 “이런 이유로 중국은 한국을 약한 고리로 보고 어떤 식으로든 끌어들이려 할 것이고 남북 정상을 베이징 올림픽 즈음해 초청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접견하고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에 뜻을 같이한 바 있다.

만약 성공한다면 중국은 2가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우선 전 세계에 ‘평화’ 이미지를 부각하면서 올림픽 흥행을 유도할 수 있다.

아울러 남북정상을 동시에 초청함으로써 무엇보다 중국이 한반도에 그만큼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미중관계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북한이 과연 이에 응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박 교수는 “문 대통령이 베이징 올림픽 불참 결정을 내릴 경우에도 중국과의 관계를 잘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이 베이징 올림픽에 정치적으로 보이콧하는 데 한국이 참여할 경우 중국과의 관계에서 난감한 처지가 될 수도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동맹국 등 여러 국가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 중국 입장에서 한국만 겨냥해 보복하기는 힘들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유지하고 있는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은 시효가 끝나가는 상황”이라며 “한국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복원하겠다는 정책적 기조는 분명하다”며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태도는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나온 공동성명에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그동안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제 질서 속에서 안보와 번영을 보장받았던 것에 비하면 우리가 너무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한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미국과 힘을 합쳐 지금보다 훨씬 능동적으로 이러한 질서를 끌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취재본부 이윤정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