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문화대혁명 막자” 중국계 이민자, 美 하원 출사표

차이나뉴스팀
2023년 06월 16일 오후 5:30 업데이트: 2023년 06월 16일 오후 6:01

“미국이 내가 떠난 나라처럼 될까봐 걱정”
릴리 윌리엄스, 공화당 하원 경선에 또 출마

중국계 미국인 여성이 연방의회 진출에 도전한다. 이번이 3번째다. “중국 공산당 치하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알려 미국이 공산주의 중국과 같은 곳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내년 미국 하원의원 선거의 뉴햄프셔주 제2선거구 공화당 후보 경선(프라이머리)에 출마 선언한 릴리 윌리엄스(58·중국명 탕바이허·唐百合)는 문화대혁명 시절 중국에서 겪은 끔찍한 사건과 비슷한 일이 지금 미국에서 재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윌리엄스는 ‘정치적 올바름(PC)’, ‘비판적 인종이론’, ‘워크 컬처(Woke Culture)’ 등 변종 공산주의 이념이 미국 사회 각 분야에 스며들어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을 빠르게 잠식해 “사랑하는 미국이 내가 떠난 나라(중국)처럼 될까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워크 컬처는 인종차별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해 ‘깨어있을 것(woke)’을 요구하는 사회적 풍조를 가리킨다. 미국판 깨시민 정도의 의미다. 문제는 그것의 지향점이 명확히 사회주의 이념, 공산주의 시스템에 맞춰져 있다는 데 있다는 게 윌리엄스의 지적이다.

그녀는 일부 미국인들이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을 가져다줄 대안’인 양 생각하는 워크 컬처가 실제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공산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를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공산당 독재하의 중국, 사회주의 제도를 도입한 후 극도로 가난해진 베네수엘라, 굶주려 죽어가면서도 독재자를 찬양하는 북한이 미국인들이 바라는 이상향인가”라고 물음을 던졌다.

윌리엄스는 “나를 포함해 많은 미국인은 그런 사회를 원치 않을 것”이라고 자답하며 “하지만 그런 사회로 향하는 워크 컬쳐가 미국인, 특히 공산주의의 위험성을 모르고 사회주의를 낭만스럽게 착각하는 젊은 층에서 급속히 퍼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자라난 뼈저린 경험

1964년 중국 중남부 쓰촨성 청두에서 태어난 윌리엄스는 문화대혁명(1966~1976년)의 광풍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가 기억하는 그 시절은 끔찍한 가난과 굶주림, 공산주의 이념의 세례로 얼룩졌다.

그녀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정상적인 국가와 사회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비틀린 사회에서 몸에 배어든 습성을 완전히 떨쳐버리는 데에는 미국 미국 사회에 정착하고도 무려 2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윌리엄스가 돌이켜본 중국 사회는 마르크스주의를 철저하게 적용해 기존 사회질서를 전복하고 공산주의 유토피아로 이행하려 했으나, 오히려 끊임없는 ‘혁명’과 투쟁, 탄압이 되풀이되는 ‘지옥’이었다.

그녀는 “마르크스주의는 인류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눠 모든 사회 문제를 계급적 대립의 구조로 파악한다”며 계급 간 대립이 마르스크주의가 자리 잡기 위한 필수적 환경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마오쩌둥이 한 일은 이를 더 세분화한 것이다. 공산당은 계급을 나누고 한쪽에 ‘지배계급’ 딱지를 붙였다. 어제까지 남을 억압하던 지배계급이 하루아침에 피지배계급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곧 피비린내 나는 계급투쟁의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미국 사회는 그녀를 몸서리치게 만들었던 중국의 계급투쟁 사회를 연상시킨다는 게 윌리엄스의 설명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학교를 보면 마르크스주의의 ‘자본’ 대신 ‘인종’을 기준으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갈라진다.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에서부터 더 어린아이들까지 이런 이념을 주입당하고 있다. 워크 컬처가 벌이는 일이다.”

윌리엄스는 “마오쩌둥은 순진한 이상주의자와 젊은 홍위병들을 네 가지 낡은 것(사상·문화·풍속·관습)을 타파한다는 구실로 전통문화과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 이용했다”고 했다.

이어 “지금 미국의 워크 컬처를 보라”며 “청소년들이 부모의 교육권에 반대한다. 대학 강의실에서는 학생들이 교수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미국의 위인들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부수고 쓰러뜨린다.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1985년 중국 명문 푸단대 법학과를 졸업한 윌리엄스는 1988년으로 건너와 텍사주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주립대학 행정대학원을 1991년 수료하고 사회적 의료, 법률자문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사업가 겸 바이어로 경력을 쌓아왔다.

그녀가 미국 유학을 결심한 것은 푸단대 3학년 때, 중국에 유학온 미국인 유학생을 통해 ‘미국 독립선언서’를 접하고 ‘개인의 권리’라는 단어를 보고 전율을 느낀 일이 계기가 됐다.

그때까지 공산당이 만들어 놓은 왜곡된 가치관과 사회 환경 속에서 자란 그녀는 그날 인간의 기본적 권리는 정부가 허용해주는 것이 아니라 신(神)에 의해 천부적으로 주어진 것이자 헌법에 의해 보장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충격이었다.

윌리엄스는 그날부터 자유와 민주주의, 법치가 있는 번영의 땅 ‘미국’을 동경했다. 마침내 1988년 5월 상하이를 떠나 미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후 텍사스 주립대 행정대학원에 들어갔다.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미국의 시스템을 연구하고 싶어서였다.

그녀에게는 왜 미국의 일부 세력,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자유와 평등을 누리면서도 미국을 사회주의 시스템, 공산주의 정권이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국가로 만들려고 하는지가 여전히 의문이다.

“청년들, 좌파의 정치적 선동에 이용당해”

윌리엄스가 미국 사회의 좌경화, 급속한 사회주의화를 경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처음부터 의회 진출을 생각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2000년부터 미국의 정치를 공부하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당헌 및 당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또한 ‘공산주의 희생자 기념재단(VOC)’에서 강사로 활동하면서 중고교생 및 대학생들에게 공산주의의 본질과 위험성을 알려 왔다.

그러나 수년간 미국 내 여러 곳으로 강연을 다니면서 누구도 아이들에게 공산주의의 해악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 젊은이 중 상당수는 마오쩌둥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른 채 마오쩌둥이나 체 게바라의 얼굴이 찍힌 티셔츠를 입고 다니며 심지어 공산당 깃발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사회주의 이념에 세뇌된 미국 젊은이들은 이제 정부에 모든 것을 공짜로 줄 것을 요구한다. 대학 교육도, 의료서비스도 무료로 제공하라고 한다. 그들은 이런 복지 혜택이 커질수록 생계를 더욱 정부 지원에 의존하게 되며 결국 정부의 사회주의 정책이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모른다.”

미국에서 ‘힙한 것’처럼 여겨지며 성행하는 워크 컬처는 동성애 혹은 성전환의 확산 및 제도권 편입, 인종차별 반대를 강조해 오히려 인종차별 혼란을 키우는 각종 사건으로 이어지고 또 미국 역사를 노예제 중심으로 바꾸는 데로 이어진다.

단순히 교육활동을 뛰어넘어 미국판 문화대혁명을 수습하려면 정치적 영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이유다.

젠더 이념, 마오쩌둥의 성별 모호화 정책과 유사

여성인권의 보장과 불평등의 해소를 주장하는 젠더이념은 역설적으로 남성 같은 여성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기존의 여성스러운 여성은 남자들이 주입한 잘못된 가치관의 결과물이라고 비판한다.

윌리엄스는 마르크스와 마오쩌둥이 추진하던 것과 같은 일이라고 봤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실현하려면 ‘가정을 파괴하고,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개인 자산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마오쩌둥은 사생활이 매우 난잡했고 여성 인권을 무시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성 역시 남성처럼 매몰차고 투철한 혁명전사가 될 것을 요구했다. 고대 중국에는 역사적으로 우아하면서도 강단 있는 여성이 많았지만, 오늘날 중국 여성들은 내면에서나 행동에서도 사나운 이미지가 강해졌다. 지금 미국도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

“워크 컬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전환의 일상화를 추진한다. 초등학교와 유치원에서까지 급진적인 성교육을 실시하고 아이들에게 성별은 선택 가능한 것이며 성전환과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여기고 동경하게 하는 공교육을 추구한다.”

“그사이 자녀를 어떻게 교육할지에 관한 부모의 권리가 박탈되고, 가정의 윤리가 헝클어진다. 민주당 우세 지역에서는 자녀가 13세 이상이면 부모 동의 없이 스스로 성전환을 결정할 수 있다.”

“젠더 이념을 주입당한 한 13세 소녀는 부모 몰래 성전환 약을 먹었다. 16세 때 소녀는 잘못된 선택임을 깨닫고 여성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극심한 정신적 갈등 끝에 소녀는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윌리엄스는 2014년 민주당 후보로 콜로라도 주의회 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고 2016년에는 역시 민주당 소속으로 콜로라도에서 연방상원 의원 선거 출마를 모색하기도 했다.

이후 뉴햄프셔주로 이사한 뒤에는 공화당으로 소속을 옮겨 2022년 중간선거에서 하원의원에 출마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같은 당 밥 번스 후보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연방의회만 따지면 이번에 세 번째, 주의회까지 포함하면 네 번째 도전이다.

민주당 지지자였던 그녀가 공화당으로 전환하게 된 것은 미국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양대 축이었던 민주당이 워크 컬처를 제지하는 대신 오히려 지지하고 두둔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특히 2020년 미국을 휩쓴 ‘블랙라이브스매터(BLM·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는 윌리엄스가 정계 진출 필요성을 또 한 번 절감한 사건이었다.

“상점이 약탈당하고 공공기물이 파손되며 차량이 불타는 폭동이 미국 전역에서 일어났다. 인권과 표현할 권리를 외쳤지만, 보수 성향인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자기 생각을 말하면 가게가 망하고 회사에서 쫓겨나며 학교나 직장에서는 극단주의자로 몰렸다. 사회적으로 ‘취소’ 당했다.”

당시 민주당 내부에서는 BLM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으나, 2020년 초 한 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자 92%가 BLM를 지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의 BLM 지지율은 37%였다.

미국 내 BLM 지지율은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직후 60%대까지 올라갔으나 이후 폭력 시위가 확산되며 점차 떨어졌고 이달 14일 퓨리서치센터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51%로 나타났다.

윌리엄스는 미국이 문화대혁명으로 혼란에 빠지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어서 출마한다면서 공산국가에서 탈출한 자신의 이야기가 이념적 거짓말을 타파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