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반란’ 용병 수장 벨로루시行, 러 당국 형사입건 취소

한동훈
2023년 06월 25일 오후 4:10 업데이트: 2023년 06월 25일 오후 4:10

바그너 그룹 무장반란, 대규모 유혈충돌 없이 일단락
벨로루시 대통령 중재안 양측 수용…세부사항 미공개
러시아 정부, 바그너 그룹 용병에 “보복조치 없다” 약속

러시아 용병집단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를 목전에 두고 병력을 철수했다. 벨로루시 대통령의 중재로 러시아 정부와 바그너 그룹은 대규모 유혈 충돌 없이 사태를 매듭짓기로 했다.

24일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텔레그램에 올린 음성 메시지를 통해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하던 병력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전날 러시아 군 수뇌부를 처벌하겠다며 “군사 쿠데타가 아니라 정의의 행진”이라는 선언과 함께 진격한 바그너 그룹은 하루 만에 모스크바 200㎞ 지점까지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이날 벨로루시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의 중재로 바그너 그룹이 무장반란을 끝냈으며, 프리고진은 벨로루시로 이주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드리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중재의 결과에 따라, 러시아 당국은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고발을 취소할 것이며 무장 반란에 가담한 바그너 그룹 용병들은 과거 러시아를 위해 복무한 공로를 인정받아 어떠한 보복 조치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다만, 페스코프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을 “비극적”이라고 평가하며 “내가 말할 수 있는 더 이상의 상황은 없다”는 말로 중재안의 세부안을 알려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을 거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앞서 반란자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리겠다고 말했지만,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 용병들의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이 같은 말을 뒤집은 셈이 됐다.

러시아 요식업자 출신으로 푸틴의 오랜 측근이었던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하자 바그너 그룹을 이끌고 러시아 정규군 대신 최전방에서 활약했으며 8개월 이상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인 바흐무트를 점령하고 이후 이곳을 사수해 왔다.

그러나 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한 러시아 군 지도부와 마찰을 빚어 왔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주축으로 한 군 수뇌부는 바그너 그룹에 정부와의 용병 계약을 체결하라며 정규군 편입을 종용했고 프리고진은 이를 거부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프리고진은 23일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러시아 국방부가 바그너 그룹 후방을 미사일로 공격해 2천 명의 병력을 사망하게 했다고 주장하며 “우리 젊은이들을 파괴하고 수만 명의 러시아 군인 생명을 앗아간 사람들은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무장 반란을 선언했다.

용병집단 바그너 그룹 설립자 겸 수장 예프게니 프리고진. 2023.3.3 | Concord Press Service/로이터/연합

이후 우크라이나에 있던 병력을 돌려 러시아 국경을 넘은 뒤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에 있는 군사시설을 장악했으며 모스크바로 진격하던 도중 루카셴코 대통령의 중재로 군사행동을 마감했다.

무위로 끝나기는 했지만 바그너 그룹의 신속한 진격에 모스크바는 한때 초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거리에는 장갑차가 등장하고 주요 시설과 정부 기관 등에는 보안 조처가 강화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모스크바강을 가로지르는 선박 운항도 일시 중단됐으며, 모스크바 외곽에서 군인들이 기관총 포대를 설치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정부가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하면서 처음 존재가 확인된 준군사조직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특수 군사 작전’을 개시한 이후 돈바스 지역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를 주도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러시아 군 지도부를 향한 프리고진의 날 선 발언이 점차 잦아졌다. 그는 특히 바흐무트 전투에서 상당한 규모의 병력 손실 피해를 입자 러시아 군 지도부가 제때 충분한 탄약을 공급하지 않았다고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프리고진은 이번 반란을 통해 정의를 회복한 후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복귀할 것을 다짐했으나 벨로루시로 떠나게 되면서 약속을 지키지는 못하게 됐다.

국제 정세 분석가들은 프리고진의 이주로 이번 사건이 완전히 마무리되는 것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외교 분야 싱크탱크인 민주주의수호재단의 이바나 스트래드너 연구원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일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라며 “푸틴은 무엇보다 불충성을 혐오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스트래드너 연구원은 “(프리고진이) 벨로루시로 이주한다고 해서 ‘창문’이나 ‘홍차’를 경험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덧붙였다.

‘창문’과 ‘홍차’는 각각 창문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의문의 실족사와 방사능이 든 홍차를 마셔서 숨지는 사건을 가리킨다. 푸틴의 지시로 실행되는 암살 공작을 꼬집는 표현으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