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시진핑 ‘고별’ 화상회담…中 관영매체 보도서 빠진 두 가지

피터 장(Peter Zhang)
2021년 10월 14일 오후 4:59 업데이트: 2021년 10월 14일 오후 5:22

은퇴를 앞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3일(현지시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으로 ‘고별’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 정상은 기후, 코로나19, 중단된 EU-중국 투자 협정, 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논의했지만, 이 소식을 전한 중국 관영 신화통신 기사에는 두 가지 주제만 빠졌다. EU-중국 투자 협정과 인권 문제다.

독일 정부 부대변인 마르티나 피테즈는 이 회담이 메르켈 총리와 시진핑 주석 간의 ‘고별 회담’이라고 밝혔다. 피테즈 부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양국 정상은 화상 회담에서 독일-중국 양국 관계 발전과 현재 중요한 국제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G20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 업무, 기후변화 대응, 글로벌 전염병, 인권, EU-중국 투자 협정 등 주제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신화통신은 이 회담에 대해 “시진핑 주석은 메르켈 총리 임기 내 중국-독일, 중국-EU 관계 발전을 위한 공헌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메르켈 총리가 중국-독일, 중국-EU 관계 발전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지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는 짤막한 기사로 전하는 데 그쳤다.

기사에서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밝힌 바에 의하면, 현재 국제사회는 코로나19 대응과 세계 경제 회복 추진의 중요한 시기에 있으며, 중국과 유럽은 협력해야 한다. 양측은 더욱 광범위한 시각으로 중국-유럽 관계를 바라보고 객관적이고 전면적으로 상호 인지하며, 이성적·건설적으로 이견을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지만, 두 정상이 중단된 EU-중국 투자 협정과 인권에 대해서도 대화했다는 사실은 쏙 빼놓고 전했다.

2020년 말 EU와 중국이 체결한 ‘포괄적 투자 협정’은 EU 리더로서 메르켈 총리의 업적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EU가 중국의 인권 탄압을 눈감아줬다는 이유였다.

미국의 목소리는 당시 큰 반향을 얻지 못했지만, 2021년 접어들어 신장 위구르지역과 홍콩에서 일어난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EU 회원국과 중국 간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중국의 인권탄압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EU는 인권탄압에 연루된 중국 정부 관리에 대해 제재했고, 중국은 이에 반발해 유럽 외교관과 유럽의회, 싱크탱크 관계자에 대해 보복 조치를 가했다. 중국 내 민족주의를 부추겨 유럽 기업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일으켰다.

EU 회원국들과 지식인들은 중국이 정치인이 아닌 싱크탱크에서 순수하게 연구목적으로 활동하는 민간 학자들까지 보복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에 경악했다.

중국의 보복은 더 큰 화로 돌아왔다. 지난 5월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제재 이후 EU-중국 간 외교 관계가 악화됨에 따라 EU는 중국과 달성한 EU-중국 투자협정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럽의회도 9월 압도적인 표차로 ‘중국에 대한 EU의 전략 보고서’를 통과시키고 중국의 인권탄압과 가짜뉴스 유포에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EU가 대만과 투자 협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건의도 제기했다.

EU는 이번 기회에 중국에 대한 외교적 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10일 EU 외교·안보 고위대표 조셉 보렐은 중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데 각국 지도부가 동의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는 기후 정책 등 일부 분야에서의 (중국과) 대화와 협력을 장려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의 결정이 우리의 관점과 다를 때 우리는 반격할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인권과 내정에 관련된 문제는 더욱 그렇다”고 강조했다.

한편, 재임 기간 친중 논란을 일으켰던 메르켈 총리가 퇴임하면서 새로 들어설 독일 내각의 정치적 방향성도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달 26일 연방의회 선거에 따라, 메르켈 총리는 한 달 후인 10월 26일 새 연방의회 전체회의까지만 총리직을 맡게 된다. 사회민주당, 녹색당, 자유민주당이 연립 내각 구성을 위해 협의 중이다.

독일 매체 디 벨트가 보도한 바에 의하면, 전통적으로 연맹의 제2당이 외교부를 주재하는 만큼 독일 새 정부의 외무장관은 녹색당 소속일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외교부를 수년간 이끌어 온 자유민주당 측 인사가 계속 외교부 사령탑을 맡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녹색당과 자유민주당은 독일의 외교정책 개혁을 주장해왔으며 기존 대중 정책 노선을 변경해야 한다는 게 공통된 입장이다.

특히 녹색당은 총선 과정에서 중국의 강압적인 외교에 대한 강경 대응을 선거 공약에 포함시킨 바 있다.

오미드 누리푸어 녹색당 외교정책 대변인은 새 정부의 대중 정책을 언급하면서 “확실한 것은 대중 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이며 이전처럼 이런저런 작은 걱정으로 소극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