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재정에도 국가채무 급증…文 정부 확장재정·세수 감소 영향

이윤정
2023년 09월 3일 오후 4:27 업데이트: 2023년 09월 3일 오후 5:04

올해 세수 40조 원 줄어
나라 곳간 비는데도 野 “추경 독촉”
추경호 “선거에 지더라도 책임 있는 재정운용 해야”

나랏빚이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총지출 증가율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추는 등 2년 연속 건전 재정 기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세수 감소’로 인해 재정수지는 더욱 악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울러 전 정부의 무분별한 국채 발행으로 나랏빚이 급증하면서 현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 적자채무 내년 800조 육박

9월 3일 정부가 발표한 ‘2023~2027년 국가채무관리계획’에 따르면 2024년 ‘적자 채무’는 올해 예산(721조3천억 원)보다 9.9% 늘어난 792조4천억 원에 달한다.

적자 채무는 별다른 대응 자산이 없거나 부족해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채무로, 국채가 대표적이다. 전체 국가채무 가운데 적자 채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국가 채무가 늘면서 의무적으로 갚아야 하는 이자 지출도 올해 22조9천억 원에서 2027년 34조8천억 원으로 5년간 연평균 11.0% 증가할 전망이다.

정부 “건전 재정 기조 견지할 것”

윤석열 정부는 재정 건전성 확보를 최대 과제로 삼고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 등 재정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는 건전재정 운영을 위해 2023~2027년 재정 지출(예산 증가율)을 연평균 3.6% 증가하는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의결했다.

이에 따르면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656조9000억 원으로 올해(638조7000억 원)보다 2.8%(18조2000억 원) 증가한 규모다. 이는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의 증가율이다. 국채 발행으로 지출 규모를 늘리기보다 강도 높은 긴축을 통한 재정 정상화에 집중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25년 이후에는 건전재정 기조를 이어가기 위해 재정 지출 증가율을 단계적으로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올해 5.1%(638조7000억 원)인 총지출 증가율은 2024년 2.8%(656조9000억 원)로 대폭 줄어든다. 이후 2025년 684조4000억 원(3.9%)으로 상향하고 △2026년 711조1000억 원(3.9%) △2027년 736조9000억 원(3.6%)으로 점차 낮춰서 연평균 3.6% 수준으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인해 총지출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연평균 5.0%의 증가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의무지출은 법률에 명시된 연금·건강보험 등 법정부담금, 사회보장 지출, 이자 지출 등 정부가 임의로 삭감할 수 없는 예산이다.

세수 감소…올해 40조 원 덜 걷힌다

기획재정부 | 기획재정부 제공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도 국가채무가 1200조 원에 육박하는 등 각종 재정 지표 개선세에 제동이 걸린 것은 ‘세수 감소’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내년도 총수입(재정 수입)은 올해 625조7000억 원보다 13조6000억 원 줄어든 612조1000억 원으로 추산됐다. 재정수입이 전년 대비 줄어드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내년 재정수입이 줄어드는 건 대외 여건 악화 등의 영향으로 국세 수입이 대폭 줄어든 영향으로 분석된다. 국세 수입은 올해 400조5000억 원에서 내년 367조4000억 원으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올해 세금이 40조 원 덜 걷힌다는 의미다. 정부는 2024년 이후에는 경기회복에 따라 점차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尹 “재정만능주의 배격…적자 국채 안 늘린다”

정부의 긴축예산 편성에도 불구하고 세수 부진에다 고령화로 인한 복지 예산 수요 증가 등으로 국가채무는 당분간 계속 불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당장 내년 국가채무는 올해 1134조4000억 원에서 1196조2000억 원(+61조8000억 원)으로 늘어 1200조 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정부는 이에 대응해 국가 채무비율을 2027년 기준 50%대 중반 수준으로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23년 50.4% △2024년 51% △2025년 51.9% △2026년 52.5% △2027년 53%로 예상됐다.

이 같은 GDP 대비 국가채무의 증가 폭은 전 정부에 비해선 낮은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36%였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22년 49.6%로 대폭 증가한 바 있다.

세입보다 세출이 많을 때 발행하는 일반회계 적자 보전용 국채인 적자국채 발행도 문재인 정부 때 크게 늘어 문 정부 임기 동안 발행한 적자국채 규모는 316조원에 달했다.

당시 정부는 코로나19 대응과 경기 부양을 내세워 국고채 순발행을 크게 늘렸다. 2019년 44조5000억 원이던 순발행 규모는 2020년 115조3000억 원, 2021년 120조6000억 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29일 내년도 예산안 의결을 위한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지난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국가채무가 400조 원 증가했고 지난해 처음으로 1천조 원을 돌파했다”며 “우리 정부는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히 배격하고 건전재정 기조로 확실히 전환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발행한 국고채를 갚기 위해 순발행 규모를 줄이고 차환 발행 규모를 늘리고 있다. 차환 발행은 만기가 돌아오는 국고채를 갚기 위해 새 국고채를 발행하는 것으로, 국가채무 액수를 증가시키지는 않는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국가 신용등급 하락 우려에도 野 “추경 독촉”

국제신용평가사 피치 | 로이터/연합뉴스

세수 감소로 인해 올해 재정 적자는 상반기에만 벌써 83조 원을 기록하는 등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지난달 10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재정동향 8월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83조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 적자를 기록했던 지난해의 70%에 육박하는 액수로, 정부의 올해 전망치를 웃도는 수치다. 실질적인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지표인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뺀 수치다.

국가채무가 1000조 원을 넘어서면서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재정 악화를 이유로 미국의 신용등급이 약 30년 만에 처음으로 강등되면서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8 1,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AAA’에서 ‘AA+’로 낮췄다.

블룸버그는 “국가 신용등급을 매길 때 한 국가가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한다”며 고금리 기조 속에서 주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도 신용등급이 강등될 위험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피치는 9월 중 한국에 대한 국가 신용등급을 재평가한다.

한편, 야당은 계속 추경 편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6월 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35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을 정부·여당에 제안한 데 이어 7월에도 “민생경제 회복과 취약계층 지원 등을 위해 35조 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중요한 정치 일정을 앞두고 있는데 대규모 재정을 쓰고 빚 좀 늘어나면 어떠냐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는데 이것이 윤석열 정부가 기존 정부와 다른 것”이라며 “선거에 지더라도 책임 있는 재정 운용을 해야 한다. 이렇게 나랏빚이 많은데 더 방만하게 하면 특히 미래 청년 세대들한테 빚더미를 넘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 부총리는 3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예산 증액 요구가 커지는 것과 관련해 이같이 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