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한 고택에서 버려진 ‘라면 박스’를 열었더니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김연진
2021년 01월 22일 오전 9:58 업데이트: 2022년 12월 13일 오전 11:51

경주 양동마을에 있는 경주손씨(慶州孫氏) 종가 건물이 보물로 지정돼 문화재청 주관으로 건물을 수리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문서들이 발견됐고, 종손 손성훈씨는 모든 고문서를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기탁하기로 했다.

이때,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나온 안승준 연구원은 헌 라면 박스를 보게 됐다. 남다른 촉이 발동했다.

안 연구원은 물었다. “저기 저 박스는 뭔가요?”

문화재청

손씨는 “아, 저거요? 종이 부스러기인데요. 아마도 중국책 같아요”

“어떤 내용인데요?”. 안 연구원은 재차 물었다.

손씨는 “몰라요. 우리 아버지가 남 보기 부끄럽다고 내버리려고 치운 거로 보이는데… 좀 있다가 버릴 거예요”라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안 연구원은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저희가 가져가서 확인하고 정 쓸모없으면 그때 버릴게요”라고 말했다. 손씨는 “그러세요”라고 답했다.

이후 몇 개월이 지났다. 안 연구원이 헌 라면 박스를 열기 전까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연합뉴스

그 라면 박스에서 나온 것은,

지정조격(至正條格).

현존하는 세계 유일 원나라 법전이자, 원나라 최후의 법전이다. 중국에서도 사라진 ‘지정조격’이 라면 박스에서 나왔다. 하마터면 쓰레기 뭉치로 버려질 뻔했다.

지정조격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학계가 들썩였다. 지정조격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기까지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려 때는 형사법의 근간이 됐으며, 조선 때는 중국 제도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밑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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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연구원은 “지정조격의 보존 상태는 거의 원형에 가깝다. 사실상 미라 상태로 600년을 버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정조격은 중국에도 전하지 않은 유일본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제도, 어학을 연구하는 중요 자료”라고 평가했다.

당시 지정조격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남바린 엥흐바야르 전 몽골 대통령까지 방한해 이를 관람했다.

남바린 엥흐바야르 전 몽골 대통령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