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상원, 연방법에 동성혼 권리 성문화 추진

조셉 로드
2022년 11월 18일 오전 10:35 업데이트: 2022년 11월 18일 오전 10:50

미국 상원이 동성결혼을 연방법으로 보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제117대 상원이 처음으로 다루는 주요 입법 사안이다.

지난 16일(현지 시간) 상원은 동성결혼을 보장하는 ‘결혼존중법(The Respect for Marriage Act)’을 찬성 62(민주당 의원 50명, 공화당 의원 12명)대 반대 37로 통과시키고 해당 법안에 대한 토론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결혼존중법은 결혼에 대한 ‘남성과 여성 간의 관계’라는 정의를 폐지하고 동성결혼을 포함하는 언어로 대체한다는 게 주 골자다.

상원의 법안 설명에 의하면, 결혼존중법은 또한 미국의 모든 주가 다른 주의 동성결혼을 연방 차원에서 인정하고 보호하도록 하고, 성별·인종·민족·국적을 이유로 결혼의 효력을 부정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따라 결혼존중법은 동성결혼 외에도 타인종 간 결혼에 대해 연방법으로 보호받을 권한을 부여한다.

결혼존중법은 앞서 올해 6월 하원에서 먼저 통과됐다. 민주당 하원의원 전원 찬성에 더해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47명이 지지했다.

문제는 법안이 실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상원에서 통과돼야 하는데, 상원에서 법안을 표결할 때는 필리버스터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필리버스터 가능성이 차단되려면 상원의원 60명 이상이 법안에 찬성해야 한다. 현재 상원 의석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50대 50으로 양분돼 있다.

이에 하원 통과 이후 상원의원들은 몇 달에 걸쳐 협상을 시도했으나 이렇다할 결론을 내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 공화당 상원의원 10명 이상의 지지표가 나오지 않는다면 공화당은 필리버스터로 해당 법안을 부결시킬 수도 있었다.

수잔 콜린스 미 상원의원. | Chip Somodevilla/Getty Images

공화당의 초당적 지지

하지만 이미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은 결혼존중법을 지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수잔 콜린스, 리사 머카우스키 같은 온건파가 이에 해당됐다.

특히 콜린스의 경우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태미 볼드윈과 함께 결혼존중법의 주요 협상자로 꼽혔다.

이번 제117대 의회를 끝으로 퇴임하는 톰 틸리스, 롭 포트먼 공화당 상원의원 또한 지지 의사를 표했다.

포트먼은 법안 투표 독려를 위한 원내 연설에서 “종교의 자유는 우리 헌법의 핵심 축이며 결혼존중법의 어떤 조항도 수정헌법 제1조에 따른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결혼존중법 제정 찬성을 주저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종교 및 교회가 공격받을 가능성을 우려한 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추측된다. 밋 롬니 공화당 상원의원의 경우 “종교 자유 보장에 관한 조항이 포함된다면 결혼존중법을 지지하겠다”는 조건을 내건 바 있다.

결국 총 12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민주당과 뜻을 같이해 결혼존중법은 상원 통과에 충분한 지지를 얻었다.

결혼존중법에 찬성한 공화당 상원의원은 로이 블런트 (미주리주), 리처드 버 (노스캐롤라이나주), 셸리 무어 카피토 (웨스트버지니아주), 수잔 콜린스 (메인주), 조니 에른스트 (아이오와주), 신시아 럼미스 (와이오밍주), 리사 머카우스키 (알래스카주), 롭 포트만 (오하이오주), 댄 설리번 (알래스카주), 밋 롬니 (유타주), 톰 틸리스 (노스캐롤라이나주), 토드 영 (인디애나주) 등이다.

포트먼을 비롯, 결혼존중법을 지지하는 많은 공화당 의원이 오는 2023년 1월 퇴임한다.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척 슈머 의원. | Anna Moneymaker/Getty Images

수정헌법 제14조에 대해 우려하는 민주당 의원들

연방대법원이 낙태 금지를 합헌 판결한 이후 민주당이 과반인 하원에서 재빨리 통과된 결혼존중법.

지난 6월 연방대법원은 헌법상 낙태권을 보장한 1793년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무효화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수정헌법 제14조의 ‘사생활 보호 권리’에 의존한 바, 민주당에서는 이번 연방대법원의 낙태 금지 합헌 판결이 다른 수정헌법 제14조 관련 판결들을 뒤집는 전조일 수 있다며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피임권을 보장하는 ‘그리스월드 대 코네티컷’ 판결 또한 수정헌법 제14조의 ‘사생활 보호 권리’를 적용, 인정한 판례다. 동성 간 성관계가 합헌이라는 ‘로렌스 대 텍사스’와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오버거펠 대 호지스’ 판결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이번에 낙태 금지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클라렌스 토마스 대법관의 의견에 주목했다. 토마스 대법관은 법원이 사생활 보호 권리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4조를 근거로 그간 보호됐던 낙태권을 폐지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같은 조항을 근거로 한 피임 및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해서도 무효화 판결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태까지 미국은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권리도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실체적 적법절차원리’를 발전시키며 이를 토대로 낙태권도 기본권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를 두고 오랜 기간 논의해왔다.

그러나 재판에서 공개된 다수의견에서 토마스 대법관은 “실체적 적법절차원리는 헌법에 근거가 없는 모순”이라며 “(실제로 수정헌법에 존재하는) 적법절차조항은 이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판사들은 ‘그리스월드(피임권)’, ‘로렌스(동성 간 성관계)’, ‘오버거펠(동성결혼)’ 판례를 포함한 실체적 적법절차원리 관련 판례들을 모두 재고해야 한다. 실체적 적법절차원리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류를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리 네이들러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 같은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민주당의 결혼존중법 추진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네이들러는 “보수 절대 우위인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지함으로써 50년 전으로 거슬러 되돌아갔다”며 “뿐만 아니라 낙태권 외에도 동성결혼 같은 다른 권리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는 신호를 쏘아올렸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네이들러는 보도자료에서 또한 “대법원이 우리의 다른 권리들을 겨냥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가 어렵게 쟁취한 평등권들이 무너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며 “토마스 대법관의 이번 판결이 우리에게 준 유일한 가르침은 ‘경계심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계심을 내려놓으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권리와 자유들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