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원, 反낙태 체포하고 BLM 방관한 워싱턴市에 패소 판결

한동훈
2023년 08월 21일 오후 4:18 업데이트: 2023년 08월 21일 오후 4:18

워싱턴DC, 분필로 구호 쓴 낙태반대 활동가 체포
같은 기간 도시 곳곳 페인트칠한 BLM 단체는 나둬

미국 항소법원이 워싱턴DC 지방당국의 차별적 법 집행을 문제 없다고 판단한 하급심 판결을 뒤집고 낙태반대 단체 승소 판결을 내렸다.

워싱턴DC를 관할하는 콜럼비아 특별구 연방항소법원은 15일, 보도 블럭에 분필로 생명 존중 메시지를 전한 친생명(낙태 반대) 활동가 2명을 체포한 워싱턴DC 경찰 당국의 조치를 재판부 전원(3명) 의견일치로 “차별적”이라고 판단했다.

이들 2명은 지난 2020년 8월 워싱턴DC 북동부의 가족계획 클리닉(낙태 지원 시설) 인근 보도블럭에 분필로 ‘흑인 태아 생명도 소중하다(Black Pre-Born Lives Matter)’는 글귀를 써 공공기물을 파손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러나 같은 해 페인트 등으로 거리에 구호를 낙서한 ‘BLM(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대는 시 공무원이나 경찰로부터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이에 친생명 활동가 2명은 보수성향의 법조단체의 지원을 받아 2020년 관할 연방지방법원(1심 법원)에 워싱턴DC 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소송에서 원고 측은 “시 정부의 선택적 법 집행이 수정헌법 제1조와 제5조에서 보장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했다”며 “같은 해 수많은 BLM 시위대가 도시 전역에서 비슷한 행동을 했지만 아무도 체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분필로 보도블럭에 글씨를 쓰는 것은 공공기물을 파손하는 것이 아니며, 페인트와 같은 수준의 파손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법원(1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담당 판사인 제임스 보스버그 판사는 소송 14개월 만인 이듬해 10월 소송 기각 판결을 내렸다. 워싱턴포스트(WP)는 보스버그 판사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다는 점을 명시했다.

기각 판결이 나오자 원고 측은 항소했다. 원고 측 변호사들은 시 정부의 차별이 “행위가 아닌 메시지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똑같은 BLM 시위대와 원고 모두 비슷한 행동을 했지만, 워싱턴DC 당국이 인종 차별 반대 시위는 놔두고 낙태 반대 목소리만 억압했다는 것이다.

항소법원(2심)은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여, 워싱턴DC 당국의 법 집행이 편파적이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 네오미 라오 판사는 “수정헌법 1조에 따르면, 정부는 특정한 발언자만 선호하는 행위가 금지된다”며 “공적인 토론의 장은 모든 사람과 모든 메시지에 동일한 조건으로 개방돼야 한다”고 밝혔다.

라오 판사는 또한 판결문에서 BLM 운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워싱턴DC의 뮤리얼 바우저 시장이 시내 도로에 노란색 페인트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라는 메시지를 칠하도록 시청 직원들에게 지시한 것도 거론했다.

민주당 소속인 바우저 시장은 워싱턴DC의 두 번째 여성 시장이자, 연임에 성공한 첫 여성 시장이다. 그녀가 그리도록 한 이 메시지는 추후 BLM 운동가들에 의해 변경이 가해졌으며, ‘경찰 예산을 끊어라(Defund the Police)’라는 슬로건이 더해졌으나 역시 이 과정에서 경찰의 제지는 없었다.

무리엘 바우저 콜럼비아 특별구(워싱턴DC) 시장이 백악관 근처 한 호텔 옥상에서 시청 직원들과 활동가들이 도로에 칠한 대형 ‘흑인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구호를 바라보고 있다. 2020.6.5 | Executive Office of the Mayor / Khalid Naji-Allah via AP/연합

라오 판사는 “경찰관들은 (BLM 운동가들이) 낙서하는 것을 지켜만 볼 뿐, 전혀 제지하지 않았으며 BLM 운동가들 역시 어떤 허가나 승인을 요구하지 않았으나 체포되거나 기소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라오 판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다.

한편, 친생명단체는 이번 항소법원 판결이 재판부 판사 3명 만장일치로 내려졌음을 근거로, 판사의 정치적 입장이 아닌 미국의 헌법 원칙에 입각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는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워싱턴DC 지역신문인 ‘디씨스트(DCist)’에 따르면 항소법원 재판부 판사 라오 판사, 로버트 윌킨스 판사, 미셸 차일즈 판사 등 3명은 모두 다른 대통령에 의해 지명됐다. 라오 판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 윌킨스 판사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차일즈 판사는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지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