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 환경보호청 탄소배출 규제에 제동…“과도한 권한”

한동훈
2022년 07월 1일 오후 8:53 업데이트: 2022년 07월 1일 오후 8:53

미국 연방대법원이 버락 오바마 시절 추진된 탄소배출 감축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30일 6대 3으로 <청정대기법(Clean Air Act)>이 연방환경보호청(EPA)에 탄소배출을 광범위하게 규제할 권한을 주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다수의견’에서 “미국 내 전력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석탄이 사용되지 않는 수준까지 제한하는 것은 현재의 (기후) 위기에 대한 현명한 해결책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회가 환경보호청에 그러한 규제 계획을 자체 결정할 권한을 부여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며 “이 정도로 파급력이 있는 결정은 의회나 의회로부터 명확한 임무를 받은 기관에 맡겨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석탄 사용을 줄이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현명한 해결책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석탄 사용을 극도로 제한하는 조치는 국민 생활과 관련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국민의 대표인 의회 소관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 등 6명의 보수성향 대법관이 다수의견에 참여했고, 민주당에서 임명한 3명의 대법관은 전원 불참했다.

일부 주류 매체들은 보수 우위 대법원이 보수적 판결로 미국 사회를 분열시킨다고 비판했다. ‘미국 사회 분열’, ‘분열된 미국’은 최근 대법원 판결을 전하는 일부 뉴스에 되풀이되는 표현이다.

이번 판결은 웨스트버지니아 등 19개 주 정부가 석탄화력 발전소의 탄소 배출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환경보호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따른 것이다.

환경보호청의 권한은 행정부에 따라 커졌다 작아졌다 해왔다.

2013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기후행동계획(CAP)’을 발표해 탄소 배출량 감축, 기후변화 대응 준비 방침을 수립하고 환경보호청을 주된 집행기관으로 키웠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5년 ‘청정전력계획(CPP)’을 가동했다. 2030년까지 석탄화력 비중을 크게 줄이고 풍력·태양광 비중을 28%까지 대폭 상향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각 주 정부는 환경보호청에 발전소 탄소 배출 감축 계획을 제출해야 했다.

그러자 웨스트버지니아 등 27개 주는 환경보호청에 그럴 권한이 없다고 항소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은 상급심인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대법원은 2016년 소송이 마무리될 때까지 ‘청정전력계획’을 중단하라고 판결하며 주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규제 철폐에 앞장섰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청정전력계획’을 백지화하고 규제가 덜한 <적정 청정에너지법(ACE Rule)>으로 대체했다. 청정에너지를 더 저렴하고 더 많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적정 청정에너지법>은 트럼프 행정부 말기,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전 파기됐다. 지난 2021년 1월 19일 워싱턴 항소법원은 미국 내 폐질환 추방단체인 ‘미국폐협회’와 환경보호청이 맞붙은 소송에서 이 법을 파기하고 환경보호청의 권한 일부를 회복시켰다.

그렇게 회복됐던 환경보호청의 권한이 이번에는 행정부 교체와 무관하게 재차 축소됐다.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반대의견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긴급한 환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환경보호청에 부여된 권한을 철회한 결정은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케이건 대법관은 “기후 변화의 원인과 그 위험은 더는 의심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현대 과학은 인간의 영향, 특히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 배출이 대기, 해양, 육지를 온난화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원이 의회나 전문기구 대신 자신을 기후 정책 결정자로 임명했다.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송을 주도했던 웨스트버지니아주 법무장관 패트릭 모리시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환영했다.

모리시 법무장관은 “이렇게 파급력 있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권한을 가진다면 그것은 특별한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선출되지 않은 관료가 아니라 의회가 개입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지난 1년 반 동안 바이든 행정부가 에너지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경제를 거칠게 다루려고 시도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환경보호청이 규제 기관에서 에너지 분야 권력 기관으로 변질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