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나타낸 조각 : 선한 목자

류시화 인턴기자
2022년 12월 6일 오후 7:22 업데이트: 2022년 12월 6일 오후 8:37

기원후 3세기까지 로마제국은 끊임없는 전쟁과 정치적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쾌락과 사치에 눈이 멀어 실존적 문제에 대한 고민과 불안감을 잊고 지내던 로마인들은 정신적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무수한 종교를 탐구했습니다. 로마제국은 정체성을 잃어갔고, 몰락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혼란의 시기에 기독교인들은 로마제국의 산발적이고 잔인한 박해로 고통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빛의 메시지를 널리 선포하며 희망의 아이콘을 만들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가르침에서 가져온 아름다운 희망의 이미지, 바로 ‘선한 목자’입니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다

‘선한 목자’는 성경의 한 주제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입니다. 이 주제를 다룬 동명의 작품은 영국, 스페인 등 세계 각지에서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이 ‘선한 목자’는 미상의 작가에 의해 로마에서 제작되어 현재 바티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대리석에 조각된 이 작품이 제작될 당시 기독교인들은 기존 로마 문화 예술의 표준 양식을 새롭고 즐거운 것으로 변형시켰습니다. 그리스 문화를 바탕으로 한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선한 목자’는 짧은 반소매 튜닉을 입고 양을 어깨에 메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한 목자를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동일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신들의 사랑을 받는 전령이자 영혼을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인으로 알려진 헤르메스는 종종 양을 안은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양을 치는 사람, ‘목자’를 박애주의의 상징으로 삼았던 로마인들은 헤르메스를 타인의 고통과 짐을 기꺼이 자기 어깨에 짊어지는 목자와 동일시해 선한 목자를 종교적 아이콘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자비로운 목자를 묘사할 때 그의 신적인 힘을 강조하기 위해 태양의 신 아폴로의 젊을 적 얼굴을 새겨넣었습니다.

 

박해받는 기독교

역사적 기록이 증명하고 있는 로마의 기독교 박해는 기원후 64년 네로 황제 때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313년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될 때까지 약 250년간 이어졌습니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로마인들은 황제와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기독교인을 배척하며 황제의 국가 통치에 위해를 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들을 박해했습니다.

도미티아누스, 막시미누스 등 많은 황제에 의해 누명을 쓰고 탄압받은 기독교인들은 힘든 상황 속에서 희망의 상징을 만들어 미움보다는 타인의 짐을 짊어지는 목자처럼 타인을 포용하고 아름다움을 찾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진실과 선함, 그리고 아름다움

선한 목자는 욕망이나 죄에 대한 비난을 강조해 보는 이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기독교에 대한 박해에도 묵묵히 견뎌낼 뿐 이교도의 믿음과 관습을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선한 목자는 바르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려는 많은 로마인의 목가적인 삶에 대한 추구 의지를 북돋웠습니다.

고대 로마 최고의 시인인 베르길리우스(Publius Maro Vergilius)는 10편의 시로 이뤄진 ‘목가(Eclogues)’ 시리즈를 통해 선한 목자와 목가적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이 주제는 문학뿐만 아니라 여러 시각적 예술로도 확산하여 많은 예술작품이 남겨졌습니다.

진실함과 선함, 아름다움을 담은 ‘선한 목자’는 비잔틴 제국이 로마 영토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부터 더는 기독교적 상징으로 쓰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후기 로마 제국은 가난과 전쟁, 질병이 만연해 추악한 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기독교인들은 그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선한 목자’를 상징으로 선택했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려 했습니다.

그리스어로 ‘칼로스(Kalos)’는 ‘아름다움’과 ‘진실함’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목자를 ‘칼로스’라 부르며 진정한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삼았고,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혼란한 격동의 시대에 혼탁함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희망, 평화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