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대 도난에 사라진 명화…렘브란트 ‘갈릴리 바다의 폭풍’

미셸 플라스트릭(Michelle Plastrik)
2024년 04월 18일 오전 11:40 업데이트: 2024년 04월 18일 오전 11:40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 판 레인(1606~1669)의 ‘갈릴리 바다의 폭풍’은 성경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격렬한 움직임과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 이 작품은 그의 그림 중 유일하게 바다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 대륙이 보유 중인 렘브란트의 주요 작품이자 보스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의 소장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1990년 12점의 다른 작품과 함께 도난당한 후 아직 회수되지 않아 그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예술 후원자

(왼쪽)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의 초상’(1889), 데니스 밀러 벙커. (오른쪽)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내부 중정과 건물 내부 | mark joo/Shutterstock

이 박물관은 미국 최초의 사립 박물관으로, 영국 왕가 혈통을 이어받은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수집한 티치아노, 보티첼리, 렘브란트 등 많은 예술가의 걸작을 전시하기 위해 설립했다. 이곳은 수많은 명작을 소장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베네치아풍의 아름다운 중정(中庭)과 로마, 비잔틴, 고딕 등 유럽의 여러 건축 양식을 차용해 내부를 꾸민 것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내부 | Sintakso/CC-BY-SA-4.0

도난 사건

1990년 3월 18일 새벽, 현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미술품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로 위장한 두 명의 도둑이 경비원을 제압하고 총 13점의 미술품을 훔쳐갔다.

렘브란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베르메르), 드가, 마네의 걸작품과 고대 청동기 유물 등이 도난당했고, 도난품은 34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부 행방이 묘연하다.

렘브란트의 유일한 바다 풍경화

‘베레모와 칼라를 세운 자화상’(1659), 렘브란트 | 퍼블릭 도메인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레이덴에서 태어나 20대 중반에 항구 도시인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다. 그의 그림은 빛과 그림자의 극적인 사용, 조각 같은 질감으로 예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후기에는 역사화, 초상화, 자화상 등으로 큰 명성을 얻었다.

‘갈릴리 바다의 폭풍’(1633), 렘브란트 | 퍼블릭 도메인

1633년작 ‘갈릴리 바다의 폭풍’은 렘브란트 초기 작품의 특징인 밝은 색채, 섬세한 묘사, 세련된 작화 기법, 다양한 표정을 지닌 인물 군상이 두드러진다.

‘갈릴리 바다’는 성경의 여러 주요 사건의 배경이 된 곳으로 사실 이스라엘 북부에 있는 담수호지만 성경에서는 이를 바다로 지칭했다.

이 작품은 마태복음 8장 24~27절에 나오는 갈릴리 바다 장면을 담고 있다. 폭풍에 요동치는 호수를 예수가 잔잔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많은 극적인 순간이 묘사되어 있다.

세로 160cm, 가로 127cm의 이 대형 작품에는 부서지는 파도, 끊임없는 기류와 물살의 움직임, 불길하게 검게 물든 하늘이 강렬하게 묘사돼 있다.

‘갈릴리 바다의 폭풍’(1633)의 세부, 렘브란트 | 퍼블릭 도메인

거센 폭풍에 당황한 선원들은 화면 왼쪽 아래의 바위에 배가 부딪히는 것을 피하고자 거센 파도와 싸우고 있다. 찢어져 바람에 나부끼는 돛이 불길한 기운을 더한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는 위태로운 배를 지탱해 주고 있는 밧줄을 붙잡고 행여 모자가 바람에 날아갈까 봐 손으로 붙잡고 있는 남성이 있다. 렘브란트는 그 남성이 자신임을 암시하기 위해 자기 얼굴의 특징을 그려 넣었다. 당시 많은 예술가는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에 자기 얼굴을 입히기도 했다.

‘갈릴리 바다의 폭풍’(1633)의 세부, 렘브란트 | 퍼블릭 도메인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은 바로 예수다. 예수의 머리 주위는 조명이 비추는 듯 밝게 빛난다. 그는 폭풍을 잠재우고 난파를 막으려 준비한다.

렘브란트의 혁신적이며 감성적인 이 작품은 당대 젊은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여러 의미와 아름다움을 담은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을, 수집가들에겐 탐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긴 여정 끝에 사라지다

이 작품은 18세기 후반까지는 암스테르담의 많은 수집가에게 사랑받으며 여러 번 소유주가 바뀌었다. 1898년, 영국의 한 수집가가 작품을 구매해 바다를 건너가게 되었고, 19세기 후반 이 작품의 가격은 약 120만 달러(한화 약 16억6천만 원)로 추정됐다.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도난품 중 하나인 ‘검은 옷을 입은 신사와 숙녀’(1633), 렘브란트 | 퍼블릭 도메인

작품이 도난당한 후, 미 연방수사국(FBI)은 2013년 절도범이 사건 발생 1년 이내에 사망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범죄를 사주한 이는 보스턴의 마피아일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범죄 사주자로 추정된 인물은 2021년 사망했고, 이후 작품의 정확한 행방을 찾지 못했다.

빈 채 걸려있는 액자

박물관 설립자 가드너는 사망 당시 유언장에 박물관 건물, 전시품을 포함해 어떤 것도 변경할 수 없도록 명시했다. 그녀는 만약 어떤 영구적인 변화가 생길 경우 모든 작품을 파리로 운송해 경매에 부친 후 그 수익금을 전액 하버드에 기부해야 한다는 조항을 명시했다.

‘갈릴리 바다의 폭풍’이 전시됐던 빈 액자, 미 연방수사국 | 퍼블릭 도메인

그녀의 유언에 의해 박물관은 현재 도난당한 작품의 액자를 계속 그 자리에 걸어두고 있다. 박물관을 찾는 관객들은 빈 액자를 보며 도난당한 작품의 가치를 상기하고 작품을 되찾길 기원한다. ‘갈릴리 바다의 폭풍’에서 예수가 행한 기적이 일어났던 것처럼 이 작품이 제자리로 돌아오려면 기적이 필요할 것이다.

미셸 플라스트릭은 뉴욕에 거주하며 미술사, 미술 시장, 박물관, 미술 박람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