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배치로 구현된 예수의 고난…‘이 사람을 보라’

밥 커치먼(Bob Kirchman)
2024년 04월 8일 오후 10:18 업데이트: 2024년 04월 8일 오후 10:46

오늘날 ‘성금요일(聖金曜日·수난일)’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둔 날로, 기독교에서는 세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는 날이다. 성경 속 이날의 이야기는 숱한 예술작품 속 단골 주제로 등장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성금요일로 기념되는 날 아침, 예수는 유대인들에 의해 체포, 연행됐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며 기독교의 올바른 가르침을 전파하는 예수를 유대인들은 못마땅해하며 그에게 누명을 씌웠다. 그들은 예수를 유대인 통치자이자 로마 제5대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 앞에 끌고 갔다. 빌라도는 예수가 로마법을 어기지 않았기에 무죄라며 그를 석방하려 했다. 그러나 유대인 지도자들은 그의 사형을 요구했고, 빌라도는 결국 아우성치는 군중에게 선택권을 제시했다.

‘이 사람을 보라’

‘이 사람을 보라’(1871~1891), 안토니오 치세리. 캔버스에 유채 | 퍼블릭 도메인

19세기 화가 안토니오 치세리(1821~1891)의 걸작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는 성금요일 절체절명의 순간을 사실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빌라도는 군중에게 예수와 잔혹한 범죄자 바라바 둘 중 누구를 구할 것인지 물었다. 바라바는 민란과 살인을 자행한 범죄자로 감옥에 구금돼 있었다. 거짓 선동에 속아 이성을 잃은 군중은 바라바의 죄를 사해주고, 대신 예수를 처형할 것을 요구했다. 빌라도는 성난 군중을 잠재우기 위해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로 했다.

성경 속 이 장면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많은 예술가에 의해 그림으로 재현된 상징적인 장면이다. 수많은 작품 중 치세리의 작품은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장면 속에 많은 내용을 내포하고 있어 희대의 걸작으로 꼽힌다.

탁월한 예술성으로 구현된 장면

안토니오 치세리의 자화상(1885) | 퍼블릭 도메인

치세리는 스위스에서 태어나 1833년 이탈리아 피렌체로 이주해 그림을 공부했다. 그는 신고전주의 예술가를 스승으로 둬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탁월한 예술성은 전통 예술을 꽃피운 많은 예술가 못지않았다. 그의 작품은 사진에 가까울 정도로 정밀하고 사실적이며 아름다운 묘사가 돋보였다. 그는 특히 종교화에서 눈부신 예술성을 보이며 라파엘로에 버금간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의 천재성은 ‘이 사람을 보라’에 구현된 원근법과 조명 및 구도의 완성도에서 집약되어 나타난다.

이 작품의 원제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는 빌라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 가시관을 쓴 예수를 군중에게 소개하며 외친 말에서 유래했다. 치세리는 이 장면을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봤고, 그 덕에 우리는 작품 속 인물의 배치를 뒤쪽에서 관찰할 수 있다. 화면 가운데 흰색 옷을 입은 빌라도는 역광으로 인해 희미하게 보인다. 그는 군중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다. 원근법으로 부드럽게 그려진 군중은 난간 틈새로 보인다.

‘이 사람을 보라’(1871~1891)의 세부, 안토니오 치세리. 캔버스에 유채 | 퍼블릭 도메인

빌라도는 극적인 손짓을 취하며 예수를 가리킨다. 예수의 꼿꼿한 뒷모습에서는 그의 의지와 힘이 느껴진다. 몸 뒤로 손이 결박되고 모진 채찍질에 상처 입었음에도 그는 허리를 곧게 펴고 서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혐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왕입니까?”라는 질문에 예수는 “나의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이 작품에 대해 피렌체 우치피 미술관은 “진정한 미장센(무대 위 등장인물의 배치나 역할, 무대 장치, 조명 등에 관한 계획)이다”라고 평했다. 미장센이 돋보이는 작품으로는 이 작품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은 완벽한 구도와 사물 배치, 사실적인 원근법으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이 사람을 보라’(1871~1891)의 세부, 안토니오 치세리. 캔버스에 유채 | 퍼블릭 도메인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빌라도의 아내를 제외한 모두는 뒷모습 또는 옆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그녀는 전날 밤 꿈에서 예수를 만났고, 그가 진정한 신의 자식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남편 빌라도에게 예수는 죄가 없다며 사실을 알렸지만, 빌라도는 여론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예수를 처벌하게 됐다. 빌라도의 아내는 실의에 빠진 표정으로 차마 그 현장을 직시하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그녀는 곁에 서있는 하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며 슬퍼한다.

예수의 안장(安葬)

‘예수의 안장’(1883), 안토니오 치세리 | 퍼블릭 도메인

치세리의 또 다른 작품 ‘예수의 안장’(1883년) 또한 그의 탁월한 구도 감각과 섬세함을 잘 나타낸다. 이 작품은 예수의 시신이 무덤으로 운반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슬픔에 잠겨 실의에 빠진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그 옆의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여인은 막달라 마리아(예수의 여제자이자 성녀)로 추정된다. 막달라 마리아의 외양은 치세리가 1864년에 그렸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녀는 애도와 참회를 담아 흐트러진 머리와 맨발로 장지를 향해 걸어간다.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1864), 안토니오 치세리 | 퍼블릭 도메인

19세기의 르네상스 예술가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와 베르나데트’(1879), 안토니오 치세리 | 퍼블릭 도메인

치세리는 19세기에 활동했지만, 르네상스 거장들의 구도와 색채를 능숙하게 표현했다. 그는 정지된 화면에 깊은 관찰력을 투영해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화폭 속 인물들은 완벽한 구도로 배치됐고, 미묘한 표정과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치세리는 1891년 사망하기 전까지 예술가이자 교사로서 당시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피사체의 영혼과 감정을 꿰뚫어 본 뒤 그를 세심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치세리는 신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를 잇는 대표 예술가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가르친 많은 예술가는 이후 낭만주의 시대 최고의 화가로 성장했다.

밥 커치먼은 미국 버지니아주에 거주 중인 건축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그는 오거스타 기독교 교육자 홈스쿨에서 스튜디오 미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