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법원, 中 헝다 청산 명령…본토 집행 가능성에 주목

정향매
2024년 01월 30일 오후 8:47 업데이트: 2024년 01월 30일 오후 8:47

부채 440조원, 자회사 미완공 주택 162만 가구

홍콩 고등법원이 29일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恆大·에버그란데)에 대해 청산 명령을 내렸다. 헝다는 90%의 자산을 중국 본토에 두고 있기 때문에 국제 투자자들은 홍콩 법원의 청산 명령이 중국에서도 집행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헝다 그룹은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부동산 개발업체다. 2022년 초 채무 위기에 빠진 후 해외 채권자와 채무 구조조정 협상을 시도해 왔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앞서 채권자들은 홍콩 고등법원에 헝다를 청산해달라고 청원했지만 관련 재판은 여러 차례 연기된 바 있다.

린다 챈 홍콩 고등법원 판사는 29일 오후 청문회에서 알바레즈앤마살 전무이사 에디미들턴과 티파니 웡(중국 이름 흉융스·黃詠詩)을 헝다 사건 임시 청산인으로 지명했다. 청산 대상은 헝다 그룹에만 한하며 자회사는 해당하지 않는다. 헝다는 법원의 결정에 대해 항소할 수 있지만 청산 절차를 중단할 수는 없다.

홍콩 밍바오(明報)에 따르면 헝다의 자산은 1조7400억 위안(약 322조 원)이지만 부채가 2조 위안(약 370조 원) 이상이다. 부채 규모가 자산 규모를 초과한 헝다는 파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

헝다의 자산은 대부분 중국에 있기 때문에 홍콩 법원의 파산 및 청산 명령이 중국에서 집행하는 것에 중국 당국이 동의할지 여부가 국제 투자자들의 관심사이다.

중국 당국은 선전, 상하이, 샤먼 등의 도시에서 홍콩 법원이 내린 청산 명령을 집행하는 것에 동의한 바 있다. 그럼에도 중국 법체계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청산인들은 청산 명령을 집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중국 법원이 홍콩 고등법원의 청산 명령을 인정하면 청산인은 헝다에 대한 관리 권한을 이어받게 된다. 헝다가 해외 채권자에게 새로운 채무 재조정 계획을 제안하는 데 필요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청산인은 헝다의 기업 운영 문제를 조사하고 위법 행위가 의심될 경우 홍콩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수도 있다.

우미(吳宓) 홍콩 쯔퉁(致同)회계사무소 구조조정 서비스 담당 상무이사는 홍콩 매체에 “중국 당국이 중국 내 헝다 자산 청산을 허락한다 해도 국경을 넘나드는 청산은 어렵다”며 “게다가 중국에도 헝다의 채권자가 존재하며 그들의 문제를 해결한 후에야 자산을 홍콩 주식회사로 반환할 수 있다. 이는 최소 5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헝다 청산이 중국 부동산 부문에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부채 문제로 구조조정에 직면한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위축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데릭 라이(Derek Lai) 딜로이트 중국법인 부회장은 홍콩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몇 년 기업 청산 사건이 증가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집행이 지연되고 있다. 채무 재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서도 “채무 재조정이 진전 없이 지연되는 것을 홍콩 법원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경제가 회복되지 않아 좋은 구조조정 계획을 세우기도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헝다가 청산되면 시장이 개선되기를 희망하며 채무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부동산 개발업체의 의욕이 꺾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은 중국 부동산 부문을 넘어 건설업계, 금융 부문, 심지어 소매업에도 악영향을 끼쳐 더 많은 업체의 청산을 일으킬 것이며 결국 중국 경제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건설 중인 헝다 자회사 분양보증 주택의 시공이 이번 사건의 영향으로 중단되거나 완공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다수 분양권 구매자가 투자금을 잃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

홍콩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헝다는 중국에서 최소 162만 가구가 입주 예정인 1300여 개의 ‘난미루(爛尾樓·공사가 중단돼 완공되지 못한 건물)’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헝다가 파산하고 청산에 들어가면 난미루 피해자들의 대규모 항의 사건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매체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