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은행 물려받을 것” 초등학생 발언에 中 국유은행 화들짝

강우찬
2024년 04월 6일 오후 12:33 업데이트: 2024년 04월 6일 오후 12:33

초등학생 “중국농업발전은행은 우리 가문의 자산”
은행 측 공식 입장 없이 전 지점에 ‘긴급 조사’ 지시
SNS에선 “완전 틀린 말 아냐” 특혜채용 비난 여론

“나도 은행장이 돼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고 싶다”는 한 초등학생의 장래희망이 중국 사회에서 격렬한 논란을 일으켰다.

소년이 ‘가문의 재산’이라고 밝힌 은행이 중국 국유 정책은행인 ‘중국농업발전은행’으로 알려지면서, 중국 은행권의 자녀 특혜 채용과 공기업 세습 등의 관행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 3일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는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촬영된 학생들의 장래희망 발표 영상이 인기 순위 상위에 오르며 관심을 끌었다.

이 영상에서 한 소년은 “나는 커서 중국농업발전은행 행장이 돼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며 “할아버지는 중국농업발전은행 행장, 엄마는 중국농업발전은행 부행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겠다”고 말했다.

중국농업발전은행은 중국의 유일한 농업 분야 정책은행으로 국무원 산하 중앙 금융기관이다. 농업· 농촌·농민 발전을 목표로 하며, 농업 분야 중소기업 대출 등을 취급한다. 글로벌 투자자를 대상으로 채권을 발행해 정책 자금을 조달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국유은행을 ‘가문의 자산’이라고 한 소년의 발언은 소셜미디어는 물론 다수의 현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관심을 끌었다.

파문이 확산하는 가운데 해당 은행은 아직 이 사건에 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은행 관계자들이 현지 언론들에 밝힌 바에 따르면 소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은행장, 엄마는 부행장이라며 장래희망을 ‘은행 승계’로 밝힌 중국의 한 초등학생 발언 영상 | 화면 캡처

‘중국증권저널’은 이 은행 관계자를 인터뷰해 “은행 자체 조사 결과 아이의 할아버지는 한 지점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퇴직한 전 직원이며, 어머니 역시 평범한 간부로 드러났다”라고 보도했다.

경제전문지 ‘금융일선’은 회사 관계자를 통해 “본사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을 확인했다”며 “현재 은행 측이 전 지점을 대상으로 관련 내용을 긴급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현지 법조계에서는 소년의 발언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만약 소년의 할아버지와 엄마가 같은 금융기관에 근무하고 있다면 문제 소지가 크다는 입장이다.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주단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소년의 할아버지와 엄마가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다면 중국 공직기관의 인사발령 친족회피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내부 제재 대상”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의 양잉차오 변호사는 “가족 두 세대가 중국 국유은행의 고위직으로 근무한다면, 공적인 영역에 친족관계라는 사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인사발령 친족회피원칙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은행 측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는 반응과 함께 해당 소식을 전한 기사에 비판적인 댓글이 이어졌다.

한 네티즌은 “이 아이는 꾸밈없이 진심을 말한 것”이라며 “우리집 재산인데 어찌 남에게 줄 수 있겠냐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이게 지금 은행권 연고주의의 현실”이라며 “(인맥 채용이) 다른 지점으로 분산됐을 뿐 아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이 말이 맞다. 이 아이도 커서 은행에 취직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일이 없다? 아이를 믿어야 하나 은행을 믿어야 하나”, “3대에 걸친 담배공사 세습, 3대에 걸친 조세기관 세습, 3대에 걸친 철도공사 세습이 모두 뉴스에 보도됐다”고 쓴 이들도 있었다.

실제 청년실업률 46.5%로 추정되는 심각한 취업난과 연결 지어 꼬집은 댓글도 포착됐다. “출발선에서부터 승리했네”, “농민 자녀는 대학에 진학해도 여전히 최하급 이주 노동자가 될 뿐”, “가족이 다 은행 간부라는 게 말이 되나” 등 성토가 쏟아졌다.

중국에서는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가계저축이 증가하고 있다. 미래가 지금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 보고 소비를 아껴 더 심한 경제난에 대비하는 상황에서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몰린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신규 가계저축은 16조6700억 위안(약 3112조원)으로 2021년 9조9천억 위안(1848조원) 대비 약 70% 증가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의 지방정부 부채 리스크가 계속되면, 중국 공산당 당국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지방정부 부채 탕감에 유용할 가능성도 크다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