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규탄 거부한 中, ‘테러’ 언급 없이 “평화”만 강조

강우찬
2023년 10월 12일 오후 8:25 업데이트: 2023년 10월 12일 오후 8:25

中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서 ‘하마스’ 0회 언급
“중국은 언제나 공평과 정의의 편” 회피성 답변만

중국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충돌에 관한 질의응답 중 단 한 차례도 ‘테러’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규탄 거부를 분명히 했다.

미국, 영국 등 서방 여러 국가는 하마스를 무장집단으로 분류하고 이번 공격을 테러 행위로 규정했다. 한국 윤석열 대통령도 11일 하마스의 공격을 규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중국은 뚜렷한 입장 차를 나타내고 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력충돌에 관한 질문에 답변하면서 시종일관 ‘양측의 분쟁’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는 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브리핑에서는 중국 매체와 외신 등 12개 매체가 질문을 던졌고, 이들 매체가 제기한 질문 총 22개 중 16개가 이-팔 무력충돌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첫 3개 질문을 할 기회는 중국 매체에 주어졌다. 마오닝 대변인은 아프가니스탄 지진에 관한 중국의 구호 노력을 물은 첫 번째 질문에 답변한 후,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자로 각각 공산당 관영매체인 CCTV와 그 영어판인 CGTN 기자를 지목했다.

CCTV와 CGTN 기자들은 이-팔 무력충돌에 관련해 질문했다. 각각 “중국의 논평은 무엇인가”, “외교부가 현지 중국인과 중국 사회의 상황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으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느냐”였다.

마오닝 대변인은 먼저 “중국은 민간인 피해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민간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반대하고 규탄한다”며 평화회담과 ‘두 국가 해법’ 이행을 주장했다. 두 국가 해법은 팔레스타인이 원하는 대로 독립 시켜주자는 방안이다.

이어 두 번째 질문에는 “주이스라엘 (중국) 대사관과 팔레스타인 사무소가 긴급 안전 경보를 발령하고 현장에서 중국 국민과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며 “중국 국민과 기관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답했다.

마오닝 대변인과 CCTV 기자는 모두 이번 사건을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무력충돌”이라고 불렀다. 서구권과 한국에서 사용되는 ‘이-팔 무력충돌’과는 선후가 달랐다. 공산주의 중국이 어느 쪽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 매체들의 질문이 끝나고, 시작된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서 마오닝 대변인은 이-팔 무력충돌에 관해 “적대행위 종식”, “평화 회복”을 강조하는 입장을 유지했다.

네 번째 질문자로 나선 브라질 일간 ‘우 글로부(O Globo)’ 기자는 “하마스의 공격으로 7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민간인이 대부분인 수십 명이 가자지구로 납치됐다. 중국은 이를 테러 행위로 간주하느냐”고 물었다.

마오닝 대변인은 “긴장과 폭력이 고조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며, 분쟁으로 인한 민간인 사상자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한다”며 “우리는 민간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반대하고 규탄한다”는 말로 답변을 회피했다. 사실상 하마스의 공격을 테러 행위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한 셈이다.

이어 영국 ‘로이터’,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가 각각 베이징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이 지난 8일 중국에 하마스 비난을 요구한 것과 관련해 재차 입장을 물었다.

마오닝 대변인은 “팔-이 분쟁에서 중국은 언제나 공평과 정의의 편에 섰다”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동의 친구로서 중국이 바라는 것은 두 나라가 평화롭게 함께 사는 것”이라고 같은 답변만 되풀이했다.

또한 ‘로이터’와 ‘파이낸셜 타임스’가 “하마스의 공격과 민간인 납치에 대한 중국의 대응에 대해 실망했다”는 척 슈머 미국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9일 발언을 언급하며 두 차례에 걸쳐 중국의 대응을 물었지만, 마오닝 대변인은 관련 없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이스라엘을 향해 수천 발의 로켓을 발사하고 해상, 육상, 공중에서 침투해 수백 명의 이스라엘인을 학살했다.

하마스는 또한 100명 이상의 인질을 납치해 이스라엘이 예고 없이 민간시설을 공습할 때마다 1명씩 살해하겠다 위협했다. 인질을 인간 방패로 쓰고 있는 상황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시 상태를 선포했고, 8일 보복에 나서면서 이-팔 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11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중국 외교부는 하마스에 대한 언급 없이, 이스라엘에 대한 동정이나 지지 역시 표명하지 않은 채 사태 해결을 위해 ‘두 국가 해법’의 필요성만 강조했다.

같은 날 베이징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은 소셜미디어 엑스(X·구 트위터)를 통해 중국에 하마스의 테러 행위를 규탄할 것을 촉구했으나 중국 외교부는 응하지 않았다.

중국, 국제관계에서 팔레스타인에 확고한 지지

마오닝 대변인은 9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공동의 친구”라며 양측의 평화로운 공존을 강조했다. 그러나 최소한 이스라엘이 중국의 소위 ‘우정’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공산주의 중국은 이스라엘과 1992년 수교 이후 30년간 경제적으로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했으나, 외교·정치적으로는 팔레스타인을 편들어 왔다.

인민일보 온라인판의 작년 12월 9일 보도에 따르면, 전날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가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 총리와의 회담에서 “팔레스타인 민족적 대의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시진핑은 올해 6월에도 팔레스타인 지지를 재차 표명했다. 시진핑은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압바스 총리와 만나 경제·기술협정 등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에 합의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유엔 정회원 가입 지지도 거듭 확인했다.

현재 중국은 이스라엘의 아시아 최대 교역 파트너이지만, 이러한 경제적 관계가 이스라엘의 외교 안보적 입지 강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중국 공산당은 또한 이란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은 미국 정치권에서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자금과 장비를 지원한 배후로도 지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