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 중국공산당의 한국 침투…체제 전복 노린 통일전선전술

에바 푸
2024년 01월 22일 오후 6:48 업데이트: 2024년 01월 22일 오후 11:04

중국 최고 정치 자문기구의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왕하이쥔(왕해군·王海軍)에게는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중국공산당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그는 역사상 최악의 인권 탄압 행위를 저지른 지도자의 죽음을 애도했고, 친중(親中) 정치인들에게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자서전을 선물했다. 또한 해외에서의 중국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꾸준히 선전해 왔다.

한국 경찰이 서울 한복판에 있는 중식당 ‘동방명주’를 중국의 비밀 경찰서로 의심해 수사를 진행하는 중에도, 이 식당의 실소유주인 왕하이쥔은 정치적 인맥을 동원해 중국공산당을 옹호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불과 70여 년 전 공산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른 한국에서 왕하이쥔 같은 이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주한 중국대사관과 밀접한 소식통을 보유하고 있는 한 전직 화교협회장은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총성 없는 전쟁터”라고 말했다. 그는 신변 위협을 우려해 자신의 이름을 ‘해리(Harry)’라고만 소개했다.

이어 그는 “중국공산당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한국 정치 및 사회의 80%에 침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최근 한국의 지도부 교체로 인해 그 침투가 잠시 멈췄다”고 말했다.

에포크타임스가 제작한 삽화

높은 위험

2022년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공산주의 중국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부정적인 견해를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현재 한국이 사회주의 노선과 위험할 정도로 가까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해 3월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에 대해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이 득표율 1% 미만의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의 상대는 당시 득표율 47.83%를 기록한 현 야당 대표 이재명 후보였다.

수잔 숄티 디펜스포럼 대표 | Chung Sung-Jun/Getty Images

미국 버지니아주에 본부를 둔 비영리 단체 디펜스포럼의 수잔 숄티 대표는 에포크타임스에 “역대 최소 득표차를 기록한 선거였다”며 “이는 우리가 인식해야 할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국 정권의 침투 공작에 정통한 한민호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 대표(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공산당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미국을 무너뜨리고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반중 감정이 고조되는 것과 관련해 “중국공산당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단지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 등 중국의 강압적인 전술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우리는 중국공산당이 인류 역사상 최악의 ‘마피아’이며,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온갖 속임수와 전술을 쓴다는 것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2023년 1월 11일, 서울 중구에서 한민호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 대표가 공자학원 폐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중국에 대한 충성심

조현규 전 주중 한국대사관 무관은 “중국공산당이 미국의 핵심적인 동맹국 중 하나인 한국을 공략함으로써 미국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공산당의 한국 침투는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세 가지 측면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한국 경제를 중국에 의존하게 만들고, 정치인과 사회 상류층을 포섭하고, 사회 전반에 친중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는 ‘통일전선공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공산당의 초대 주석인 마오쩌둥이 이를 두고 “마법의 무기”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 대표는 “중국의 통일전선공작이 한국에서 제대로 먹혀들었다”고 말했다.

2017년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지칭하고,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라고 치켜세웠다.

그보다 2년 전인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했다.

2022년에는 리잔수(栗戰書)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한중의원연맹이 창설돼 양국 간 의회 교류가 활발해졌다.

이 같은 소식에 해리는 분노하며 “공산주의 국가와 자유민주주의 국가 간에 의회 교류를 활성화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2019년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이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에게 전달한 선물에는 한국에 만연한 정치적 정서가 잘 담겨 있었다”고 밝혔다.

2022년 9월 16일, 리잔수(栗戰書)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서울 국회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Kim Hong-ji/POOL/AFP via Getty Images

그 선물은 사자성어 ‘만절필동(萬折必東·강물이 만 번 굽이쳐 흘러도 결국 동쪽으로 흘러간다)’을 친필로 쓴 휘호였다.

강 교수는 당시를 떠올리며 “만절필동은 중국에 대한 충성심을 드러내는 말이다. 즉 ‘우리는 미국보다 중국을 더 좋아한다’고 면전에 대고 이야기한 꼴”이라고 꼬집었다.

기반 마련

중국공산당은 한국에서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던 1980년대부터 한국에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주입하려 시도했다.

당시 학생운동에 참여한 민경우 씨는 현재 자신이 ‘보수주의자’임을 고백하며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이들은 여전히 1980년대에 갇혀 있다”고 비판했다.

1991년 5월 11일, 서울에서 열린 정부 규탄 시위에서 시위대가 진압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 Choo Youn-kong/AFP via Getty Images
1993년 5월 18일, 광주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추모 시위에 약 500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 Choo Youn-kong/AFP via Getty Images

이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자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며 “그들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 없이, 현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들은 어떤 이상적인 사회를 믿고 있는 듯하지만, 그런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결국 그들의 사상은 권력을 향한 과정, 권력을 얻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이 10년간 지속된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경제적, 문화적 궁핍에 시달리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한국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기도 했다. 이 역시 1980년대였다.

중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8년 집권 이후 자신의 주치의였던 화교 한의사 한성호에게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교량 역할을 부탁했다.

1995년 12월 18일, 서울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부패 혐의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호송되고 있다. | Choo Youn-kong/AFP via Getty Images

그 뒤 한성호는 밀사로 중국을 방문해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공로로 1993년 2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한성호는 한국을 겨냥한 중국 통일전선공작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후계자’를 양성하고 관리하는 일도 포함된다.

해리는 “한국인들은 중국이 무슨 짓을 해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고 비판했다.

중국의 비밀 경찰서로 의심되는 중식당 ‘동방명주’의 모습 | 에포크타임스
중국 통일전선조직 세 곳의 명패가 ‘동방명주’ 2층에 걸려 있다. | 연합뉴스

양의 탈을 쓴 늑대

1992년 이후 한국과 중국 간 협력은 급속도로 강화됐다. 특히 2004년부터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자 최고의 투자처가 됐다.

중국의 해외 선전부 역할을 수행하는 공자학원은 2004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세계 최초로 문을 열었다. 이후 공자학원은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한때 미국에서만 100개 이상의 공자학원이 운영되기도 했다.

‘국가안보’ 문제로 인해 미국 내 공자학원 90% 이상이 문을 닫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약 40개의 공자학원·공자학당이 운영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공자학원·공자학당 39개가 운영되고 있다. | 에포크타임스가 제작한 삽화

이에 대해 해리는 “공자학원은 끝까지 버텨냈고, 시간이 흐르자 관심이나 비판이 사라져 버렸다”고 말했다.

중국의 침투 공작과 영향력 작전은 한국 사회 전반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도시 간에는 자매결연 또는 우호협정이 700건 가까이 체결돼 있다. 2023년 말까지 중국 공무원 600명이 공무원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서 일하고 훈련받도록 파견됐다. 중국 대사관은 한국 청년들이 중국에서 머물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하고, 출국 전 시 주석의 연설이 담긴 책을 건네며 ‘양국 관계의 주역’이 되기를 희망한다.

2023년 5월 4일 한국의 전북 완주군 우석대학교 앞에서 열린 공자학원 폐쇄 촉구 집회 |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전국에 기사를 배포하는 한국 언론 매체 12개 이상의 도움을 받아 선전을 퍼뜨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을 지낸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광주 출신 음악가인 정율성은 친중·친북 행적으로 논란이 된 인물이다. 한국 정부와 참전용사들은 이 사업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대간첩 관계자는 “경제, 문화, 교육기관 등 중국이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공산당의 행보는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접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언젠가 그 늑대는 본색을 드러내고 목덜미를 물 것”이라고 경고했다.

예술에 대한 방해 공작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션윈예술단은 ‘공산주의 이전의 중국 전통문화를 보여준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중국의 전통문화를 무용과 음악으로 재현하고 있다. 매년 20여 개국에서 공연을 펼치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세계적인 예술공연으로 평가받는다.

중국공산당은 션윈 공연을 자신들의 권력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이에 경제적·외교적 수단을 총동원해 션윈 공연이 열리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2023년 2월 8일, 한국의 경북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2023 션윈 월드투어’ 커튼콜 | 김국환/에포크타임스

이런 방해 공작이 한국에서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주요 극장들이 션윈과의 계약을 갑작스럽게 취소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16년 주한 중국대사관은 서울 KBS홀을 소유한 한국방송공사(KBS) 측에 “션윈예술단과의 대관 계약을 취소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최소 두 차례 보냈다. 이에 응한 KBS는 이미 티켓 수천 장이 판매됐음에도 일방적으로 공연을 취소했다. 공연을 불과 48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션윈 한국 주최사의 김주현 변호사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한국 정부의 분위기가 그랬다. 한국 정부에는 중국 앞에서 어떤 권리를 주장할 여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은 단순한 공연 취소 문제가 아니다. 누구든, 어떤 단체든 중국공산당의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덧붙였다.

한 대표도 이에 동의하며 “중국공산당은 이런 공작을 통해 ‘한국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만약 한국의 관리들이 이를 지적할 경우, 중국공산당은 그들을 직접 꾸짖을 수 있을 만큼 대담하다”고 밝혔다.

‘2023 션윈 월드투어’ 서울 공연을 하루 앞둔 2023년 2월 14일 촬영된 국립극장 전경 | 김국환/에포크타임스

중국에 굴복한 KBS는 결국 아무런 실익을 얻지 못했다. 2016년 8월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반발한 중국은 한국 콘텐츠의 송출을 금지하도록 한 한한령(限韓令)을 내렸다.

김덕영 영화감독은 2020년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에 앞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중국 에이전시 측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성(姓)을 중국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당연히 이를 거절했다. 돈을 벌기 위해 영혼을 팔 수는 없다”며 “이에 응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꼴”이라고 전했다.

또한 “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진실한 이야기로 관객을 만나는 사람”이라며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내 작품과 같은 저예산 영화에서는 쉬운 선택일지 몰라도, 큰돈이 걸려 있는 영화의 경우 중국의 영향력이 더 강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포크타임스의 인터뷰에 응한 많은 사람들은 “중국 정권은 ‘권력 유지’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그들이 션윈 공연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라고 입을 모았다.

김 감독은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를 인용하며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것이 바로 우리가 치르고 있는 전쟁”이라고 덧붙였다.

*김연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원문 보기]
Inside the CCP’s Unconventional War Against South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