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왕가의 진정한 계승자였던 여인, 마리 드 메디치

류시화
2023년 11월 29일 오후 10:01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8

유럽 플랑드르의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감각적이며 화려한 색채와 장면을 웅장하게 묘사하는 구도로 당대 예술계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17세기 유럽 대표 화가인 루벤스의 가장 큰 후원자이자 뮤즈였던 인물, 마리 드 메디치(1573~1642)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최초 왕 앙리 4세의 두 번째 아내이자 루이 13세의 어머니이다. 마리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자신의 빛나는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었던 루벤스의 작품은 종교화, 역사화, 인물화 등 다양한 것들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중 마리의 삶을 모델로 한 작품 24점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의 한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마리 드 메디치 연작’

‘마리 드 메디치와 앙리 4세 왕의 결혼식’(1622), 페테르 파울 루벤스. 캔버스에 오일. 루브르 박물관 | 공개 도메인

루벤스의 작품 ‘마리 드 메디치’ 연작 시리즈는 당대 최고의 예술적 성취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루이 13세의 통치 기간 프랑스는 유럽 최고의 강대국이 되는 토대를 마련했고, 아들을 도와 나라를 이끈 마리를 기념하는 의미로 이 작품 시리즈가 탄생했다.

‘자화상’(1623), 페테르 파울 루벤스. 패널에 유채. 영국 로얄 컬렉션 | 공개 도메인

메디치 가문은 대대로 예술계에 많은 관심을 쏟고 지속적인 후원을 해왔다. 마리의 선조인 조반니 데 메디치는 15세기 예술가 도나텔로 등을 후원해 르네상스기의 서막을 열었다. 또한 르네상스 시기의 거장 미켈란젤로 또한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예술 활동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었고, 16세기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조르조 바사리 또한 후원을 받았다. 이처럼 메디치 가문의 후손인 마리가 예술계에 도움을 준 것은 전통을 계승하는 일 중 하나였다.

루벤스와 메디치 가문

마리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25세까지 생활했다.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는 위대한 선조들의 유산이 도시 전역에 남아 있었다. 마리는 어릴 때부터 이러한 전통 유산의 영향을 받으며 진정한 전통문화의 계승자로 성장했다. 특히 그녀는 수학과 철학, 과학에 관심이 많았고 여러 악기를 즐겨 연주했다.

1600년 초, 마리는 루벤스를 만나게 된다. 당시 루벤스는 궁정 화가로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도유망한 예술가였다. 그리고 그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본 마리는 루벤스에게 거대하고 기념비적인 예술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비극이 닥쳤을 때

‘앙리 4세의 신격화와 마리 드 메디치의 섭정 선포’(1622), 페테르 파울 루벤스

마리가 루벤스에게 그림을 의뢰한 것은 지난 10년간 프랑스 왕실에 닥친 비극적인 역사의 종말을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1610년, 마리의 남편 앙리 4세는 30년이 걸린 내전 끝에 승리를 거뒀지만, 한 가톨릭 광신도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 후 마리는 당시 9세에 불과했던 아들 루이 13세의 섭정을 맡아 7년간 프랑스를 통치했고, 권좌에서 물러난 후 2년가량 포로 생활을 견뎠다. 이후 마리는 반란과 왕권 다툼에 시달리다 다시 파리로 돌아가 아들 루이 왕과 극적인 화해를 이룬 후 왕실 참모로 임명되었다.

다시 궁전에서 생활하게 된 그녀는 이 모든 과정과 가족의 삶과 행복을 기념하기 위한 24점의 연작 그림을 루벤스에게 의뢰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루벤스 방’(1904), 루이 베루. 캔버스에 오일. 루브르 박물관 | 공개 도메인

작품 속 이야기

‘마리 드 메디치와 앙리 4세의 만남’(1625년 경), 페테르 파울 루벤스. 캔버스에 오일. 루브르 박물관 | 공개 도메인

루벤스가 탄생시킨 24점의 작품들은 마리의 승리, 투쟁과 가문의 인물들을 담고 있다. 그중 20점은 우화적이거나 상징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마리 드 메디치와 앙리 4세의 만남’은 왕과 왕비를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다른 작품인 ‘앙리 4세의 신격화와 마리 드 메디치의 섭정 선포’에서는 고대 로마 황제가 신격화되는 과정인 ‘아포테오시스’를 차용해 앙리 4세가 천사들의 인도하에 하늘로 올라가고,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마리에게 섭정권을 바치는 장면을 그렸다.

메디치 가문의 유산을 계승하다

‘섭정의 위탁’의 세부(1622), 페테르 파울 루벤스. 캔버스에 오일. 루브르 박물관 | 공개 도메인

마리는 딸 헨리에타 마리아와 영국 국왕 찰스 1세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이 작품들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그리고 전통을 계승해온 마리의 딸이 머물게 된 영국은 피렌체처럼 예술계에 큰 부흥을 불러일으키는 문화 중심지로 성장하게 되었다.

당시 영국은 젊고 재능 있는 군주들의 지도 아래 문화적 발달이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거장들의 작품이 영국으로 대규모로 수입되었고, 피렌체 최고의 화가 3인방이 영국 예술계에 기여하기 시작했다. 메디치 가문의 전통을 바탕으로 헨리에타와 찰스 1세는 피렌체 예술가들의 재능을 인정해 루벤스에게 많은 작품을 의뢰했다. 또한 루벤스의 제자이자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인 안토니 반 다이크를 궁정화가로 고용해 영국 현지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불어넣도록 했다.

이렇듯 2세기 반에 걸친 메디치 가문의 예술에 대한 애정과 아낌없는 후원은 유럽 전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그 전통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계속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