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제도에서 중국 정치전: 전략적 함의

중국의 하이브리드 위협과 정치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⑩

최창근
2024년 02월 2일 오전 11:47 업데이트: 2024년 02월 2일 오전 11:47

공격적 현실주의에 기반하여 팽창주의 전략을 구사하는 중국의 위협에 대한 국내외의 우려와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몽(中國夢)’의 감춰진 이면은 ‘중화제국(中華帝國)’ 부활, 중화 패권주의하의 세계질서 재편이라 하겠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지배하는 중국공산당이 자신들의 이념과 질서하에 세계를 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이를 위하여 새로운 전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무력과 비(非)무력, 군사와 민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종전의 ‘전쟁’ 개념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수단, 방법을 총동원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하이브리드전’을 전개하여 ‘개방성’을 특징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약점을 공격하고 나아가 체제 붕괴를 추구합니다. 이 속에서 국내외 중국 문제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중국의 하이브리드 위협과 정치전에 대응하여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을 논의하였습니다.

에포크타임스는 에포크미디어코리아 중국전략연구소와 공동으로 1월 9~11일 한반도선진화재단, 한국세계지역학회,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한국국가전략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국제자유네트워크 2024 국제회의: 하이브리드 위협과 중국의 정치전에 대응하는 방어적 자유민주주의’ 국제 세미나의 핵심 내용을 지상(紙上) 중계합니다.

발제

태평양 제도에서 중국 정치전: 전략적 함의

클레오 파스칼_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

태평양 제도(諸島)의 전략적 중요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솔로몬제도(Solomon Islands)가 있다. 솔로몬제도는 2019년까지 대만(중화민국)을 공식 정부로 인정하고 공식 외교 관계를 유지했다. 이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흥미로운 사례다. 중국의 영향력 투사가 얼마나 빠르고 효과적으로 결과를 도출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솔로몬제도는 중국과 대만이 벌이는 수교국 쟁탈전의 실례이기도 하다.

이는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아니다. 미국 국방부 인도·태평양 관련 부서가 태평양 제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핵심이다.다. 왜 중국의 영향력 투사 대상이 됐는지도 설명할 것이다.

미국의 태평양 진출 역사는 연원(淵原)이 깊다. 오늘날 태평양의 미국 속령(屬領) 중  일부는 미국 남북전쟁 이전부터 영유해 오고 있다. 아시아 진출 교두보에 기항지, 급유 기지를 확보하는 것은 미국 경제 영토 확장의 필수 요소로 간주된다.

태평양 도서(島嶼)들의 지정학(地政學)적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해당 도서들은 지난 세월 동안 팽창 추구 세력에게  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점이었다.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중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 거주민들은 거대한 지정학적 변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잘 알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 제2차 세계대전(1039~1945년) 전간기(戰間記)기인 1921년 해당 지역 세력 판도를 살펴보면 당시 강대국들의 전략적 영향력 투사가 이뤄진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목할 지역은 당시 일본제국 통치령이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패전국 독일제국 식민지 중 태평양의 일부 도서는 당시 국제연맹(國際聯盟·League of Nations)의 위임 통치를 받았다. 그중 남양군도(南洋群島)라 불리던 미국령 북마리아나제도((Commonwealth of the Northern Mariana Islands), 미크로네시아연방(Federated States of Micronesia), 마셜제도(Marshall Islands), 팔라우 등은 일본제국에 통치권이 위임됐다.

코로르(Koror)는 팔라우 최대 도시로 2006년 10월 이전까지 팔라우공화국(Republic of Palau)의 수도였다. 오늘날 코로르에는 일본식 건축물들이 남아있다. 일본령 시절의 흔적이다. 1920~1930년대 팔라우에는 현지인보다 일본인이 더 많이 거주했다. 일본인과 팔라우, 마셜제도(Marshall Islands), 미크로네시아(Micronesia) 등 현지인의 통혼(通婚)으로 태어나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팔라우인도 다수 존재했다.

팔라우와 그 주변 도서는 남태평양상의 여타 도서와 다른 역사를 지녔다. 해당 도서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제국 태평양 팽창의 핵심 거점이었다. 일본제국 팽창 과정에서 필수적인 곳이었다.

오늘날 미국령인 사이판(Saipan)의 관문 사이판국제공항(Saipan International Airport)은 일본 점령기에 일본인이 야구장 건설을 위해 조성했던 부지에 건립됐다. 1930년대 일본령 태평양 도서에서 벌어진 일을 고찰하면 오늘날 중국이 벌이는 일과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 중국인들은 해당 시기를 집중 연구했다. 태평양전쟁 시기 대표적인 격전지였던 사이판 내 주요 전적지(戰迹地)를 추적하는 것은 물론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지정학적 중요성을 가지는 지역을 분석하여 중국이 활용하고자 한다.

2019년 솔로몬제도가 대만에서 중국으로 외교 관계 전환 후 중국은 툴라기(Tulagi)섬을 주목했다. 오늘날 솔로몬제도 중부주 주도(州都) 툴라기섬은 태평양전쟁 격전 중 하나인 1942년 8월 과달카날전역(Guadalcanal campaign)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었다. 미국 해병대는 툴라기섬에 상륙하여 일본제국 해군, 해병대, 육군을 제압했다. 이곳은 영국령 시절(1886–1978년) 영국의 통치 거점 딥하버(Deep Harbor)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지리적으로 최적의 장소라는 의미다. 중국-솔로몬제도 수교 후 중국공산당과 밀접한 한 중국 기업은 툴라기섬 전체를 임차하여 배타적 개발을 하는 계약을 솔로몬제도 지방정부와 체결했다. 훗날 솔로몬제도 중앙 정부가 계약을 무효화했다.

이 맥락에서 전략적 요충지는 어디이며 왜 이곳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고찰하는 것이 유용하다. 태평양전쟁 종전(終戰) 후 전시(戰時) 일본 점령지들은 유엔 신탁 통치를 거쳐 일부는 미국, 영국의 속령이 됐다. 이후 대부분 독립했다. 전략적 필요성에 의하여 사이판을 포함한 북마리아나제도연방은 미국 속령으로 남아 있다. 사이판은 북마리아나제도연방의 수도이다.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 점령지 중에는 오늘날 ‘자유연합협정(自由聯合協定·Compact of Free Association 약칭 COFA)’에 속하는 도서들도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독립국이지만 미국과 협정 체결 등을 통해서 전략적 협력을 하고 있다. 1980년대 체결한 자유연합협정의 핵심 내용은 미국이 해당국 경제 원조, 안보를 책임지는 대신 미군 주둔 등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미크로네시아연방((Federated States of Micronesia), 팔라우공화국, 마셜제도 등은 역내(域內)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우방(友邦)으로 꼽힌다. 미크로네시아연방은 1979년 미국 자치령을 거쳐 1986년 최종 독립했다. 독립 후에도 경제, 군사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과 외교 관계를 중시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엔 태평양제도 신탁통치령(Trust Territory of the Pacific Islands)의 일원이었던 팔라우는 1994년 독립했다. 1973년 마셜제도는 미크로네시아연방에서 탈퇴하고 독립 운동을 시작했다. 1986년부터 연방 조약을 통해 미국에 외교와 국방 정책을 맡긴 부분 독립 공화국이 되었으며 1990년에 국제적으로 독립을 승인받았다.

미국 연방정부는 마셜제도의 안보, 국방 문제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다른 국가의 접근을 거부할 수 있는 ‘전략적 거부권’도 보유하고 있다. 다만 군사기지 협정은 재협상 중인데 복잡한 문제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이 제시한 도련선(島鏈線·island chain) 전략에서도 이들 지역은 중요하다. 태평양의 자유 연방 국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제1,2도련선을 구축할 수 없다. 제1도련선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제1도련선 내에 한국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중(中)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이른바 항행의 자유 회랑(corridor of freedom of navigation)을 통과하지 않고서 중국은 제1도련선을 구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이판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이판 방문 시 시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거대한 중국계 카지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타푸차우(Tapochau)산 정상에 오르면 왼쪽으로 정박한 미국 해군 함정들을 볼 수 있다. 해군 함정들은 각각 소규모 전투를 치를 수 있을 정도의 병력, 무기, 물자를 탑재하고 있다. 전쟁이나 재난 지역으로 즉시 출항할 수 있는 상태로 대기 중이다. 군수 보급선도 있다. 반면 반대편 육지의 카지노에서는 정치전을 볼 수 있다. 사이판의 대형 카지노는 중국의 정치전에 있어 실제 적진 한복판의 작전 기지였다.

2022년 왕이 중국 국무원 외교부장이 태평양 10개국을 순방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해당 도서들은 국경이 폐쇄됐지만 왕이를 위해 특별히 국경을 개방했다. 이는 중국이 역학선(kinetic line)을 넘어 내부에서 정치전을 전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평양에서의 미국 국방·안보 체제에 대한 다수 가정(假定)은 오늘날 재평가해야 한다. 왕이의 해당 지역 방문 시 ‘중국-태평양 도서 공동 개발 비전’을 제시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일종의 식민지 건설 청사진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제국주의 시절 영국이 이 지역에서 추구했던 목표와 유사하다.

중국이 제안한 이른바 ‘개발 비전’은 중국이 남태평양 도서국들에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그 대가로 ▲중국 공안의 현지 경찰 훈련 ▲지역 내 사이버 안보 관여 ▲정치적 관계 확대 ▲해양지도 작성 ▲천연 자원 접근권 보장 ▲공자학원 설치를 요구하는 협정이다. 즉, ‘차이나머니’ 제공을 약속하고 남태평양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서는 전략적 군사기지로 만들겠다는 포석이다.

중국의 일방적 제안은 당사국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외부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것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당 제안은 왕이의 순방 중 제안한 것으로 당사국은 고려할 시간이 필요한 것은 상식이다. 이는 중국공산당의 피아(彼我) 식별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실제 사법 집행 관련 각료급 회담이 개최됐다. 중국 특사단이 파견됐다. 인민해방군도 파병했다. 병원 등 인프라스트럭처 건설 등도 실제 진행 중이다.

중국의 제안에 공개 반대한 데이비드 파누엘로(David Panuelo) 당시 미크로네시아연방 대통령 같은 정치인은 중국 정치전의 표적이 됐다. 중국은 그를 실각시키려 했다. 반대로 중국이 제안한 협정 체결을 지지하는 지도자들을 재선 캠페인 지원을 받았다.

중국의 협정 추진 계획은 ’계획‘에 불과하지만 이를 공개 발표하는 것은 잠재적인 동맹국과 적성국을 식별하기 위한 하나의 도박이라고 생각한다. 해당 지역 도서국 국가지도자들은 중국이 전개하는 정치전에 각자 기민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들은 지정학적 변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공세적 작전의 실태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으며 이에 나름의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파누엘로 전 대통령은 “태평양 제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너무나 크다. 솔로몬제도와 중국의 안보협정은 단순한 경제 협력 이상의 것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사한 우려를 담은 서한을 인근 도서국 지도자들에게 보냈다. 서한에서 “중국의 제안이 언뜻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남태평양 도서국을 종속시키고 최악의 경우 재3차 세계대전, 적어도 신냉전 시대로 접어들게 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파누엘로 전 대통령은 태평양 도서국의 사회·경제 전반을 중국에 종속시키는 것이 목표라고도 했다.

파누엘로는 ‘대만’ 문제도 지적했다. 중국이 제1도련선상의 대만을 점령할 경우 거기서 멈추지 않고 대만을 중심으로 안보 경계선이 설정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주변 도서에도 영향력을 투사할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로 중국이 대만을 점령해도 주변 완충 지역 확보 없이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꼽았다.

중국의 미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솔로몬제도 사례이다. ‘중국-솔로몬제도 간 안보협정’이 핵심이다. 협정서 초안은 2022년 3월 외부 유출됐다. 실제 체결된 협정서 원문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초안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외교 관계를 회복하기 전까지 솔로몬제도의 사회 치안 등 질서 유지에 필요한 공권력은 대부분 호주의 지원에 의지했다. 2017년 호주와 ‘유사시 파병한다’는 내용을 담은 양자 안보 협정이 체결됐다. 실제 2021년 소요 사태 발생 시 호주 군경(軍警)이 진압에 나섰다. 양자 안보협정 초안에 따르면 중국은 경찰, 인민해방군 등 무장 병력을 솔로몬제도에 파견하여 사회 질서 유지 임무를 수행하고 물류 보급 등 용도로 중국 군함이 솔로몬제도에 정박할 수 있게 된다.

솔로몬제도에서 전개하는 중국의 프로젝트와 그에 따른 영향력 행사는 혼란을 초래했다. 이에 반대하는 솔로몬제도 시민 폭동이 발생했다. 시위대는 차이나타운을 방화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사회 균열을 초래했다. 솔로몬제도의 한 주(州)지사는 화웨이 제조 통신 장비 구축 시 자신의 주에 중국공산당 관련 투자를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화웨이 통신 장비가 설치된 기지국 설치도 막았다. 솔로몬제도의 반중 시위는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은 ‘중국인이 공격받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군 부대 파병을 주장했다.

중국공산당에게 민주주의는 명백하고 심대한 실존 문제이다. 태평양의 다수 지역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일종의 ‘엔트로피 전쟁(entropic warfare)’, 즉 역학(力學)전쟁을 목도하고 있다.

우리는 초한전의 다양한 메커니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경우는 목표 사회를 약화시켜 사회 내부 분열을 초래하여 중국의 지원을 받는 권위주의 통치자(독재자)의 집권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솔로몬제도에서 이를 실제 목격했다. 머내시 소가바레(Manasseh Sogavare) 현 총리는 선거를 연기하고 미국 선박 입항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중국과의 안보협정에 서명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선적 선박의 솔로몬제도 기항이 금지됐다. 유사한 일은 바누아투공화국(Republic of Vanuatu)에서도 발생했다. 소가바레는 현재 시험대에 오른 상태다. 이제까지는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 호주와 미국은 부패를 부추기고 있다. 중국과 똑같은 조건으로 그를 매수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위안왕(遠望·Yuan Wang)급 중국 정보 수집 선박이 팔라우 해역에 진입하는 것을 통제하고 있다. 팔라우공화국은 중국의 활동을 우려한다. 자체 안보위원회를 구성했다. 필리핀 사례처럼 중국의 불법 행위를 공개 비판하고 있다. 팔라우가 언급하는 정치전은 실제 공격 위협이다. 중국이 팔라우를 점령하기까지 상륙을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는 소규모 국가에서 고차원의 정치전 효과를 보고 있다. 가장 최근 사례는 팔라우 상원이 자국 내 미국 미사일 배치를 거부한 것이다. 표면상 명분은 ‘팔라우에 미사일이 배치되면 중국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팔라우 대통령까지 나서서 중국의 표적이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미크로네시아연방도 심각한 공격을 받고 있다. 데이비드 파누엘로 전 대통령에 관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는 대만(중화민국)을 외교적으로 승인하고 싶고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싶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중요한 문제이다. 파누엘로는 미국 국무부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실제 대만은 국무부의 지원 없이는 실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선례를 남겼다. 중국과 단교하고 대만과 수교하려는 국가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해당 국가는 미국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한다면 다른 국가는 중국에서 대만으로 국교 전환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중국공산당에는 승리였다. 결과적으로 파누엘로는 대선에서 패배했다. 파누엘로 전 대통령이 논의했던 또 다른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미국 해안경비대 함정 배치였다. 각료 중 단 두 사람만이 이를 해안경비대 함정 배치를 찬성했다. 그 외 모든 각료가 이를 반대했다. 이들은 모두 실각했다.

태평양상의 도서들을 횡단하며 이야기하는 이유는, 중국에 반대하는 것은 차단되고 변화의 시도는 실패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변화를 위한 가교는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명백한 사건이 마셜제도에서 발생했다. 중국인 남녀가 마셜제도 정치인들을 매수해 마셜제도 내에 ‘초소형 국가’를 세우려 했다. 미국 검찰에 따르면 중국인 남녀 케리 얀과 지나 저우는 마셜군도의 산호초섬을 ‘특별자치구(SAR)’로 지정받기 위해 현지 의원들을 상대로 뇌물 로비를 펼쳤다. 두 사람이 특별자치구 지정을 추진한 대상은 1954년 미국이 수소폭탄 실험 뒤 방치됐던 롱겔라프(Rongelap)환초다. 이들은 마셜제도 의원을 설득해 2018년, 2020년 롱겔라프환초의 특별자치구 지정을 허용하는 법안을 상정하는 데 성공했다. 뇌물을 받은 마셜제도 정치인들은 미국에서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됐고 뉴욕에서 두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중 한 명은 마셜제도 시민권자임을 주장했기 때문에 마셜제도로 추방당했다. 주지할 점은 마셜제도는 대만의 공식 수교국 중 하나라는 점이다.

호주, 뉴질랜드 사례도 이야기하겠다. 냉전 종식 후 호주와 뉴질랜드는 역내 안보 관리를 미국으로부터 위임받았다. 이는 투발루(Tuvalu)와도 관련 있다.

9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진 투발루는 총면적 26㎢에 인구는 1만 1200명 정도이다. 면적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작고 인구는 세 번째로 적다. 2000년 189번째로 유엔에 가입한 독립국이다.

투발루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지속 상승으로 수십 년 뒤에는 국가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2023년 11월, 남태평양 쿡제도(Cook Islands)에서 열린 태평양제도포럼(Pacific Islands Forum) 참석 중 앤서니 앨버니지(Anthony Albanese) 현 호주 총리는 카우세아 나타노(Kausea Natano) 투발루 총리와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양국은 매년 280명의 투발루인을 위한 특별 비자를 발급하기로 조약을 체결했다. 산술적으로 40년 뒤면 투발루의 모든 국민이 호주로 ‘기후 이주’를 할 수 있게 된다.

협정에 따르면 호주는 자연 재해 발생,전염병 확산, 외국의 공격과 같은 비상사태 시 투발루를 돕고, 1100만 달러를 투입해 투발루의 해안선 복원에 나선다. 호주가 투발루의 제1 안보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협정에는 한 개의 ‘단서’가 붙는다. 투발루가 타국과 안보ㆍ방위 조약을 체결하기 전 ‘호주의 효과적인 안보 보장 작전을 위해서’ 반드시 호주 정부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태평양에서 해군력을 확장하는 중국을 막기 위한 조항이다.

협정은 외견상 간단한 합의로 보인다. 차이점은 팔라우, 마셜제도, 미크로네시아연방 등에서 이러한 종류의 협정은 민주적으로 합의되고 표결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투발루에서는 이 과정이 생략됐다.

협정은 투발루의 독립성에 근본 변화를 초래하는 ‘정부 대 정부’ 합의이다. 호주가 약속을 이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외에 중국의 향후 움직임이 우려스럽다. 중국이 투발루나 다른 국가와 유사한 협정을 체결하고 호주보다 우월한 지위를 보장받지 못할 것이라는 장담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나쁜 선례라 생각한다. 중국이 타국에 국가 대 국가 합의로 유사한 협정을 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제도를 신뢰한다면 호주와 투발루 협정 같은 일은 발생할 수 없다. 호주는 기후 변화 맥락에서 투발루의 공포를 이용하여 국민의 동의 없이 협정을 체결하고 투발루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 인민해방군의 태평양에서의 확장을 요약하고자 한다. 도련선 개념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에 옮기는 중국의 궁극적 목표는 하와이를 기점으로 태평양을 동·서로 양분하고 서태평양을 세력권에 넣는 것이다. 중국은 치열한 정치전을 전개하여 이를 달성하고자 한다.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장에서 일본제국이 꿈꾸던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을 정치전 수단을 통해 달성하고 있다.

클레오 파스칼(Cleo Paskal)

클레오 파스칼 | 한기민/에포크타임스

미국 워싱턴D.C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FDD) 비상근 선임연구원으로 인도·태평양 지역, 태평양 제도(諸島) 연구를 수행한다. 2006~2022년 영국 런던 채텀하우스(왕립국제문제연구소) 부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인도·태평양의 전략적 변화 주제 연구책임자로 일했다. 학계, 언론계, 출판계를 넘나들며 단행본, 논문, 칼럼을 쓰고 있다. 미국, 캐나다, 인도, 호주 , 뉴질랜드 등 다국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영국 BBC를 비롯한 방송 출연을 통해 국제 문제를 해설한다. 현재 인도 매체 ‘선데이가디언’ 북미 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