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필리핀 경제전

중국의 하이브리드 위협과 정치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⑭

최창근
2024년 02월 13일 오후 2:42 업데이트: 2024년 02월 13일 오후 2:42

공격적 현실주의에 기반하여 팽창주의 전략을 구사하는 중국의 위협에 대한 국내외의 우려와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몽(中國夢)’의 감춰진 이면은 ‘중화제국(中華帝國)’ 부활, 중화 패권주의하의 세계질서 재편이라 하겠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지배하는 중국공산당이 자신들의 이념과 질서하에 세계를 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이를 위하여 새로운 전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무력과 비(非)무력, 군사와 민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종전의 ‘전쟁’ 개념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수단, 방법을 총동원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하이브리드전’을 전개하여 ‘개방성’을 특징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약점을 공격하고 나아가 체제 붕괴를 추구합니다. 이 속에서 국내외 중국 문제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중국의 하이브리드 위협과 정치전에 대응하여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을 논의하였습니다.

에포크타임스는 에포크미디어코리아 중국전략연구소와 공동으로 1월 9~11일 한반도선진화재단, 한국세계지역학회,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한국국가전략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국제자유네트워크 2024 국제회의: 하이브리드 위협과 중국의 정치전에 대응하는 방어적 자유민주주의’ 국제 세미나의 핵심 내용을 지상(紙上) 중계합니다.

발제

중국의 대필리핀 경제전

엘리자베스 찬_글로벌위기경감재단 대표

사업 파트너가 자주 방문하는 미국 하와이의 집이 얼마 전 갑자기 무너졌다. 흰개미가 집의 기초를 갉아먹어 건물 전체가 저절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흰개미의 존재를 알고서도 제때 퇴치하지 않으면 이런 사건이 발생한다. 대중국 관계에서 필리핀이 직면한 문제도 ‘흰개미 퇴치’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초한전(超限戰)의 갈래인 경제전은 호전적 국가가 다른 국가 경제 약화를 목적으로 시행하는 종합 경제전략을 의미한다. 중국공산당은 보이콧, 지적재산권 절도, 산업 스파이 활동, 강제 기술 이전, 제품 덤핑 판매, 환율 조작을 비롯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 경제전을 펼치고 있다.

중국 당국이 필리핀을 겨냥해 벌이는 경제전을 소개하기에 앞서 중국의 글로벌 야욕을 이해해야 한다.

필리핀 서쪽 해역(海域)의 명칭은 무엇일까? 해당 해역을 필리핀은 ‘서필리핀해((West Philippine Sea)’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남중국해(South China Sea)’라고 부른다. 같은 바다를 서필리핀해라고 부르면 필리핀의 소유로 인정하는 것이고 남중국해라고 부르면 중국의 소유라고 인정하는 것일까?

중국은 태평양 도서(島嶼)로 진출하기 위해 해당 수역을 점유하고 싶어 한다.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함정들에 빠짐없이 걸려 있는 해역도(海域圖)가 이를 상기시킨다.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청사진을 그린 ‘해상 실크로드’는 실제 필리핀을 거쳐 태평양 제도(諸島)까지 이어져 있다.

필리핀은 중국의 정치전 대응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1999년 필리핀 당국은 자국 해안에서 160km 떨어진 세컨드토마스암초(Second Thomas Shoal)에 퇴역 군함 시에라 마드레호(BRP Sierra Madre)를 의도적으로 정박시켰다. 원래 미국 군함이던 시에라 마드레호는 1976년 필리핀 해군에 양도되어 영해 수호 임무를 수행하다 퇴역했다. 함정을 암초에 정박시킨 목적은 필리핀 영해, 영토 수호이다. 필리핀 해군은 지속적으로 시에라 마드레호에 해병대, 해군 수병을 배치하고 있다. 이들은 필리핀 해안경비대를 지원한다.

최근 필리핀 해군이 시에라 마드레호 물자 보급 임무 수행 중 중국 해안경비대가 발사한 물대포를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속에서도 필리핀 군 지휘관들은 크리스마스 맞이 위문·사기진작 일환으로 시에라 마드레호를 방문하여 근무자들을 격려했다.

필리핀에서는 “중국 영토 지도에 ‘남중국해’로 표기된 수역의 정확한 명칭은 ‘서필리핀해’이다.”라고 주장하는 시위가 여러 차례 벌어졌다. 필리핀 주권 수호에 관한 사안이기 때문에 시민들이 일어섰다.

필리핀 해안경비대도 중국 해안경비대에 맞대응해 왔다. 중국 측에 비해 필리핀 해안경비대는 규모가 작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상황이지만 해당 지역에서 국가 주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

중국 해안경비대가 물대포를 발사할 때 해당 필리핀 선박에는 녹화 장비가 있었다. 필리핀은 중국의 공격 과정을 영상 촬영해 대중에게 공개할 수 있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보통 필리핀 해안경비대가 분쟁 수역 순찰 임무를 수행할 때 필리핀 해군 항공기는 순찰선 위에서 비행하면서 감찰한다.

필리핀 해안경비대에는 경비, 보급 등 일상 임무 수행 부대 외에도 ‘바다의 천사(Angels of the Sea)’ 명칭의 부대도 존재한다. 현 필리핀 해안경비대 사령관 로니 길 가반(Ronnie Gil Gavan) 제독이 창설했다. 중국어에 능통한 여성 해안경비대원 81명으로 구성됐다. 가반 제독은 바다의 천사 부대를 창설할 때 “중국 선원 어머니가 호통치는 것처럼 들리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실현했다. 실제 부대 운영 효과가 있다고 알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팔라완(Palawan)주에서 서쪽으로 48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파가사(Pag-asa)섬을 포함한 서부 영토 관광 산업 촉진을 위해 ‘그레이트 칼라 원정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언론인, 일반인, 외국인 대상 관광 프로그램이다. 파가사섬에는 약 200명의 필리핀 주민이 거주 중이다.

중국에 대항하고 있다면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해야 한다. 필리핀에는 무력 분쟁 문제를 전문 취재하는 기자들이 있다. 필리핀 당국은 일부 기자를 전초 기지에 배치하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어렵지만 문제를 조금 가시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국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중국 국유 기업 96개 중 다수 기업이 필리핀 카지노 건설에 관여하고 있다. 필리핀 핵심 항만 수도 마닐라만(灣)에도 중국 카지노가 다수 있다. 섬 가장자리에도 다수 카지노가 있다. 중국 소유 카지노는 대만과 인접한 필리핀 루손(Luzon)섬 북부 카가얀(Cagayan) 지역 해안에 밀집해 있는 경향이 있다. 지역 주(州)지사는 중국 당국에 상당히 호의적이다. 필리핀군은 해당 지역에서 카지노 건설, 중국인 토지 취득을 막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한 가지 예가 마닐라만 매립이다. 필리핀 정부가 매립지 건설을 막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마닐라만 매립 건설 사업에 입찰한 중국 국유기업 중 일부는 필리핀 해군 본부, 해안경비대 본부 입구를 가로 막았다. 주필리핀 중국대사관 바로 앞 토지 매입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의외의 부처가 해당 문제를 해결했다. 환경·천연자원부 장관이 환경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를 들어 매립 사업을 중단시켰다.

필리핀 ‘외국인투자조례’에 의하면 필리핀 국적자가 외자기업 소유권 절반 이상을 소유해야 한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필리핀 전 대통령의 첫 집권기 필리핀 국가전력망공사(National Grid Corporation)는 민영화됐다. 중국 국가전망공사(国家电网有限公司)는 해당 기업 지분을 대량 매입했다. 일반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번 사례의 경우 필리핀 국가전력망공사에는 중국인 이사, 엔지니어가 근무하고 장비를 반입했다. 2019년, 2020년 관련 보고서에 의하면 해당 업체는 이른바 ‘킬 스위치(kill switch)’, 즉 비상정지 시스템을 중국에 두고 있다. 중국 손에 필리핀의 전력망이 넘어간 셈이다.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 후 필리핀 정부는 미국과 원자력 발전 방향을 공동 모색하고 있다. 사실 필리핀 국가전력망공사가 잠시 운영이 중단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수도 마닐라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는 전력 공급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정전이 자주 발생하고 벽지(僻地)에는 전기 자체가 공급되지 않는다.

중국 이동통신사 차이나텔레콤(中國電信)은 필리핀 통신 인프라의 40%를 소유하고 있다. 2018년에는 필리핀 육군에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파가사섬에 도착한 방문객은 “중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

필리핀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의 경제전 문제를 식별하고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 필리핀의 바나나 노동자가 한 예이다.

2012년, 2016년 필리핀-중국 간 스카버러암초(Scarborough Shoal) 분쟁 발생 직후 중국은 필리핀 바나나 생산 노동자를 겨냥한 경제전을 펼쳤다. 세계 2위 바나나 수출국으로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었던 필리핀은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현재 필리핀산 바나나 최대 수입국은 중국이 아닌 일본이다. 다바오(Davao)섬은 필리핀의 대중국 바나나 수출 지역 중 하나였다. 중국은 필리핀산 바나나에서 해충이 발생됐다는 이유로 금수(禁輸) 조치를 취했다. 중국 측 조사관도 필리핀 바나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2016년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이 필리핀산 바나나 수입을 금지한 것은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영토 문제로 돌아와서 필리핀은 서필리핀해에서 광범위하게 시행하고 있는 조치 외에는 중국에 맞서기 위한 확실한 권고 사항이 없다. 필리핀은 고유의 문제를 안고 있다. 필리핀 내에서 새로 구성된 위원회는 외국인 투자 관련 법률 개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법에는 늘 허점이 있다.

엘리자베스 찬(Elizabeth Chan)

엘리자베스 찬 | 한기민/에포크타임스

국제변호사로서 미국 하와이 글로벌위기경감재단(Global Risk Mitigation Foundation) 설립자 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조지타운대를 거쳐 하와이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단기 법무박사(LLM) 학위 과정을 이수했다. 홍콩대에서 법학 석사,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각지에서 근무했고 중국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파급력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