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탈북 출신 최성국 웹툰 작가 “자유가 불편해?.. 자유는 사람을 훌륭하게 만들지”

이연재
2022년 06월 7일 오후 4:30 업데이트: 2022년 06월 9일 오전 8:58

“자유는 사람의 인격을 훌륭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기다려주고, 배려해주고, 이해해주고 하는 이런 것들이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밑바탕이 되는 것 같아요. 자유는 사람을 똑똑하고 강하게 만듭니다.”

탈북민 출신 최성국 웹툰 작가(42)가 지난 4일 인터뷰에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서울 마곡동에 위치한 남북통일문화센터에서 ‘자유가 불편해?’ 전시회를 열고 있다. 최 작가 본인과 주변의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이야기를 만화로 표현했다.

“탈북민들이 자유세계로 와서 겪는 경험담을 재미있게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이것도 몰라’ 하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그냥 좋게 받아들였습니다.”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이 자유라는 개념이 어색하고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탈북민들이다.

최 작가도 그랬다. 북한식 사회주의 체계에 익숙한 그는 한국의 자유분방한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한국에 온 직후 아무도 저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아 오히려 불편했어요”라고 말했다.

전시회 작품 중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 불편해’는 최 작가의 그때 심정을 대변한다.

“북한은 누구나 사회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 앉아 있으면 데려다 일을 시키죠. 그런데 한국은 밖에 아무리 앉아 있어도 누구도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제가 뭐 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시켜야 알죠?”

어려서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조선 4.26만화영화촬영소에서  8년간 만화를 그렸다. 만화영화촬영소는 외국의 하청을 받아 외화를 벌어들인다. 그러다 보니 소속 화가들은 굉장한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외국인 화가들과 월급이 500배 이상 차이 난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고, 만화영화촬영소를 나오기로 결심했다.

이후 그는 몇 년간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 CD 등을 암거래하며 돈을 벌다가 보위부의 감시 대상이 됐고 감옥을 세 번째 드나들었을 무렵 탈북을 결심했다.

그는 “한국에서 저에게 훈장을 줘야 해요. 한국 드라마를 엄청 팔았거든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문화가 얼마나 강력한 힘이 있는지 그때 알았다고 말했다.

“제가 그 일을 하며 놀란 것이 사람들이 드라마 속 패션을 따라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고속버스 사업인데, 개인이 돈벌이를 목적으로 운행한다고 해서 ‘벌이차’, 서비스가 좋다고 해서 ‘서비차’라고도 합니다. 자유시장경제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죠. 이게 한국 드라마, 문화의 힘입니다.”

2011년 한국에 정착한 그는 북한의 실상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북 방송에서 기자와 프로듀서로 뛰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그림을 다시 그리기로 결심하고 웹툰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한국에 있으면 있을수록 북한의 상황이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처음엔 ‘돈이나 벌면 그만이다’ 생각하고 그냥 돈벌이에만 매진했어요. 근데 그러면 그럴수록 북한의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탈북자라서 그런가 봐요.”

그는 앞으로도 웹툰을 놓지 않을 예정이다. 북한의 현실과 남북한의 문화적 차이를 더 많은 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영화와 웹드라마도 제작하겠다는 계획이다.

“독재사회는 유리병에 갇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스스로 깨기 힘들고 밖에서 병을 깰 수 있도록 누군가가 도와줘야 합니다. 저는 한국 드라마를 북한에서 팔면서 문화의 힘이 얼마나 큰지 실제로 경험했잖아요. 저는 남북을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이 일에 계속 매진하고 싶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6월 30일까지 개최될 예정이다.

다음은 최성국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 북한에서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조선4.26만화영화촬영소에서 근무한 것으로 안다. 그곳에서 주로 어떤 일을 했나.

“외국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청받아 만화를 그렸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쪽도 있었고 중국, 미국 애니메이션도 있었다.”

– 그럼 내수 제작은 안 하나.

“‘영리한 너구리’, ‘다람이와 고슴도치’ 등이 있지만 극히 일부분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의 80~90%가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한다.”

– 북한 자체 제작 만화의 내용은 어떤가.

“당연히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자본주의에 사는 사람들은 북한 만화를 처음 접하면 한두 편은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치가 있네, 의미가 있네’ 이런 평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 보다 보면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나를 조종하고 강요하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사실 한국에 처음 와서 만화 작업을 그만두려고 했다. 만화 내용에 충성 맹세도 없고 조국을 위해 희생하거나 간첩 잡는 내용도 없고 전쟁도 없었다. ‘노는 게 좋다’, ‘사랑받는 아이가 되겠다’는 등 한국의 만화는 내 기준에 정말 한심한 내용들이었다. 그래서 교육적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북한의 만화는 여기와 다르다.”

– 그럼 만화를 다시 그리기 시작한 이유는 뭔가.

“한국에 있으면 있을수록 북한의 상황이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처음엔 ‘돈이나 벌면 그만이다’ 생각하고 그냥 돈벌이에만 매진했다. 근데 그러면 그럴수록 북한 상황을 외면할 수 없더라. 내가 탈북자라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북한 인권 활동도 하고 기자 생활도 했다. 사명감을 가지고 북한 방송에서 라디오를 송출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때 혼자 글 쓰고 편집하고 모르는 것은 공부도 해가면서 일을 하다 보니 한국 사회가 더 잘 보이기 시작하더라. 말하자면 갑자기 한 단계 올라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만화를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전시회에 대해 설명해달라.

“전시회 주제가 ‘자유가 불편해’ 하고 물음표가 있다. 자유는 준비된 사람이 누리는 혜택이다. 자유가 없는 곳과 있는 곳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자유를 주제로 탈북민들이 자유세계로 와서 겪는 경험담을 재미있게 풀어내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이것도 몰라’ 하는 사람은 없더라. 그냥 좋게 받아들였다.”

– 전시된 작품 중 한두 개만 설명한다면.

최성국 작가 작품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 불편해’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 불편해’

“내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겪은 경험담이다. 북한은 누구나 사회를 위해 일해야 한다. 무직 자체가 불법이다. 그래서 밖에 나가 앉아 있으면 데려다 일을 시킨다. 그런데 한국은 밖에 아무리 앉아 있어도 누구도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는 사람이 없더라. 내가 뭐 할지 어떻게 알겠나? 시켜야 알지 않겠는가. 정말 불편했다.”

최성국 작가 작품 ‘커피숍에서 주문하기가 불편해’

‘커피숍에서 주문하기가 불편해’

“자유 속에서 산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면 탈북민이 외래어가 너무 많아서 주문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 그런데 그것보다 선택할 것이 너무 많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선택할 메뉴가 너무 많다 보니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기억해 놨다가 이것저것 갖다 붙여 주문하는 거다.”

– 본인이 생각하는 ‘자유’는 무엇인가. 

“자유는 사람의 인격을 훌륭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를 모르고 살았던 우리도 자유 속에서 적응할 수 있는 거다. 배려해주고 이해해주고 이것이 자유로운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밑바탕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자유는 사람을 똑똑하게 만든다. 강아지나 동물에게 먹이를 주면 (먹고살기 위해) 머리를 안 쓴다. 먹이를 주는 사람을 우상으로 여기면서 자신의 능력이 뭔지도 모르는 바보가 되는 거다. 북한은 그런 면에서 머리 쓸 일이 없다. 그냥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근데 한국은 누가 배급을 주는가.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똑똑해진다. 힘도 강해지고, 그게 자유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 살다가 자유가 있는 곳에서 사니까 비교할 수 있겠더라. 검은색이 있는 곳에서만 살면 검은색밖에 모르는데 흰색을 경험하니 ‘아, 흰색이 이렇구나’ 그런 거다.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보인다고 해야 할까.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는 없는 소중한 것이다.”

– 북한 주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북한에서는 미국이 대북 제재했다고 죽일 놈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북한 정권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배급을 통해서다. 그 배급을 통해 사람을 통제한다. 그런데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 정권이 그 배급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처음에는 주민들이 많이 굶어 죽었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이 뭐를 했냐? 그냥 굶어 죽을 바에 장사라도 한다고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물건을 가져와 북한에서 팔기 시작했다. 그게 자유시장경제의 기초가 됐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다.

예를 들면 북한에는 ‘벌이차’ 또는 ‘서비차’라는 버스가 있다. 돈벌이 목적으로 운행한다고 해서 ‘벌이차’, 개인이 운행하다 보니 서비스가 좋다고 해서 ‘서비차’라고도 한다. 물론 불법이다. 하지만 기차보다 요금이 비싼데도 사람들은 ‘서비차’를 더 많이 이용한다. 2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북한 정부가 주민들에게 많이 양보했다. 왜냐면 북한 정권이 힘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래서 확실한 건 국제사회 대북제재로 북한 주민들은 예전보다 생활이 조금은 나아졌다는 거다. 북한 주민들이 좀 알았으면 하는 게 있다. 자유경제 활동이 북한에서는 불법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불법이 아니라는 걸 인식했으면 좋겠다.”

– 그럼 주민들을 잘살게 하려면 국제사회가 나서서 대북제제를 해야겠다. 그러면 북한 체제도 바뀔 수 있을 것 같은데.

“독재사회는 유리병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고 본다. 스스로 깨기 힘들고 밖에서 병을 깰 수 있도록 누군가가 도와줘야 한다. 그래서 대북 제제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문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내가 한국 드라마를 북한에서 팔면서 문화의 힘이 얼마나 큰지 경험하지 않았는가.

내가 판 드라마 중에 문근영이 나오는 ‘어린 신부’가 있었다. 그 드라마에 문근영이 세일러복을 입고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드라마를 팔고 얼마 되지 않아 시장에 세일러복이 나오더라. 그리고 좀 전에 얘기한 ‘벌이차’도 마찬가지다. 그때 엄청 놀랐다. 이게 한국 드라마의 힘이고 더 나가서 대북제재의 힘이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예술인으로서 나의 상상을 표현할 수 있는 것 자체로 만족한다. 나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라 남북 간을 연결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앞으로 북한을 알리는 영화나 웹드라마도 도전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