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출신 김규민 감독 “북한은 한 번도 식량난을 해결한 적 없어…”

2021년 6월 30일
업데이트: 2021년 6월 30일

지난 25일 북한 인권 영화 ‘사랑의 선물’ 상영회가 서울 ‘갤러리 스튜디오’에서 열렸습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사람은 탈북민 출신의 김규민 감독입니다.

김 감독은 북한에서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김규민 | 영화감독 ] :

“이 땅에서 살아보니까 아! 내가 살았던 저 땅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어쩌면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될 일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김 규민 감독을 만나봤습니다.

영화 ‘사랑의 선물’은 1990년대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  황해도의 한 마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소재로 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상이군인이 된 남편과 사랑하는 딸을 위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한 여인의 고통스러운 삶을 생생히 묘사했습니다.

[김규민 | 영화감독 ] :

“북한의 소위 말하는 ‘고난의 행군’, 식량난때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그랬었는데,

마누라(아내)가 몸을 팔아서 가정을 유지해 가는 그런 가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북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에 결국은 괴멸될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고난의 행군은 북한이 1990년대 극심한 경제난 극복을 위해 내놨던 구호입니다.

그러나 1990년대 북한 주민들에게 고난의 행군은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야만 했던 시기였습니다.

배급에만 의존해 살던 북한 주민들에게 국가 배급 중단은 그야말로 생존의 위기였습니다.

[김규민 | 영화감독 ] : 

“저는 북한에서 열흘도 넘게 굶은 사람이에요. 굶주림이라는 것은 정말로 고통스러운 거예요. 거기다가 대한민국은 자기만 부지런하면 해결할 수 있어요. 거기는 뭐가 없다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내가 뭔가를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1990년대 북한에는 꽃제비라는 용어까지 등장했습니다.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북한 아이들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 시기 10년 동안 48만 명 이상의 북한 주민들이 식량난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김 감독에게 ‘고난의 행군’은 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김규민 | 영화감독 ] :  

“저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용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행군은 존재하지 않았고요. 지들이(북한 당국이) 만들어낸 거고, 그것은 정말로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굶겨 죽인 거예요. 잡아놓고, 살육의 행군이면 행군이지 고난의 행군은 절대 아니었고요.”

“북한이 생겨서 지금까지 북한의 식량난은 한 번도 해결된 적이 없어요. 러시아가 무너지기 시작한 4~5년 전부터 러시아에서 식량 지원이 끊겨요.  그 전까지 북한이 살았던 것은 러시아와 중국에서 들어온 사료용 밀과 옥수수였어요.” 

김 감독은 스물다섯 살이던 1999년 북한을 탈출했습니다. 북한 밖 세상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한국 라디오였습니다.

 그는 “사춘기 때부터 한국 라디오를 많이 듣다 대학에 가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김규민 | 사랑의 선물 영화감독 ] :

“어렸을 때 제가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고, 한국 라디오를. 그러면서 머리가 변하기 시작한 거죠. 그러니까 내가 봤던 세상과 전혀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북한 같은 경우에 (대학은) 아파서 그만둔다든가 이런 사건 아니고 대학을 그만둔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에요.  자필로 ‘나는 대학을 다닐 존재도 아니고  다니고 싶지도 않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고 나온 것이 계기가 돼서 저는 혁명화 조치로 내려갔고, 부모님들은 ‘해임 철칙’되셔서 시골로 쫓겨가셨고..”

“그러면서 극도로 사회에 대한 반감을 가지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딱 그 시기가 식량난이 시작되는 시기였어요.  이 사회는 정말 잘못된 사회다. 이런 사회는 뒤집어엎어야 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1999년 3월, 북한 지방선거가 있던 날 김 감독은 김일성 주석의 사진이 붙어 있던 투표소를 부순 혐의로 체포됩니다.

[김규민 | 사랑의 선물 영화감독 ] :

“4월 27일 공개 처형이 확정됐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그래서 못을 먹었어요. 대못을..

북한 같은 경우에는 구치소에서 아픈 사람을 살릴 수 없어요. 병원이 없어서.. 군 병원으로 나가야되는데, 그때 가끔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있데요. 그래서 죽던가 그 작은 기회도 얻던가..

그래서 못을 먹으니까 못이 위장에 들어가서 박히잖아요.  박히면 썩기 시작하거든요. 10시간도 안 됐을 때 나갔어요. 군 병원으로 기절해서.. 그래서 거기서 수술을 했고, 수술하고 나서 열흘 만에 실밥도 안 풀은  상황에서 기회가 온거죠. 4월 17일이었는데, 그 기회를 이용해서 탈출한 거죠.”

 김 감독은 1999년 첫 탈북 후 한 번의 북송을 겪고 2001년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며 배우의 꿈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조금씩 현실에서 수정됐습니다.

[김규민 | 사랑의 선물 영화감독 ] :

“조영탁 교수님하고 학생과의 상담 시간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왜 배우가 되고 싶냐?’ 

그래서 내가 스타가 돼서 많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북한의 참상에 대해서..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금도 죽고 있는지를 말하고 싶다. 조영탁 교수님이 한참을 보시더니 ‘야 그러면 차라리 감독을 해라.’”

“배우는 쓰여진 시나리오를 읽는 거에 불과하지만 감독은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쓸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 네 영화에 너가 나오게 되면 누구도 뭐라고 안 그런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 시작을 한 거죠. 그런데 이렇게 힘든 일인지는 몰랐고, 그때는 그렇게 사실은 단순하게 시작했습니다.”

 김 감독은 한 탈북민 부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크로싱’의 조감독을 맡은 데 이어, 장편 영화 ‘겨울 나비’로 정식 데뷔했습니다.

‘겨울 나비’는 평안북도에서 실제로 있었던 어느 모자의 이야기인데요.

굶주림 때문에 일어난 슬프고도 공포스러운 상황을 그렸습니다.

김 감독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북한의 상황을 배우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큰 고충이라고 말했습니다.

[김규민 | 영화감독 ] :

“특히 배우분들이 이해를 못 해요.  연기라는 것이 배우가 받아들여서 보여지는 거잖아요. 자기들 입장에서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들이 많다 보니까, 그런 것들을 대화하고 설득시키고 그것을 이해시키고 이런 것들이 힘들다.”

김 감독은 북한에서 듣고 경험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영화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소망했습니다.

[김규민 | 영화감독 ] : 

“많은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서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통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가장 방관하는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통일을 하게 되면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야 되요. 북한 주민이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겠죠. 그 사람들과 통일하자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나요? 북한 주민들에 대해..”

“정말로 통일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이런 것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통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또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김 규민 감독.

고향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걸어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의 빛으로 전해지길 기대해봅니다.

NTD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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