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콘서트 가이드 김이곤 예술감독, “소리 너머 이야기에 귀기울이면 감동은 배가된다”

이연재
2022년 07월 5일 오후 9:21 업데이트: 2022년 07월 6일 오전 9:30

“어느 날 음악을 들으면서 ‘내가 이거 들으려고 태어났나? 지금 죽어도 상관없겠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때 든 생각이 제가 교회를 다니는 건 아니지만 신이 인간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과 풍경을 준비했는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죽는다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산이나 명예 이런 것을 다 떠나서 희열이 느껴졌어요.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지난 4일 다산신도시 근처 한 카페에서 콘서트 가이드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이곤 예술감독을 만났다. “유명하지도 않은 저를 인터뷰하겠다고 여기까지 오신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자리에 앉으며 그는 이렇게 말문을 뗐다.

말과 다르게 그는 콘서트 가이드계의 스타다. 콘서트 가이드는 공연 해설자라고도 불린다. 김 감독은 현재 광주문화회관 ‘11시의 음악 산책’과 군포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브런치 클래식의 해설을 맡고 있다. 그리고 오는 13일부터 용인문화재단에서 열리는 ‘정오의 음악 산책’ 프로그램의 해설도 진행할 예정이다. 콘서트 가이드로 동시에 3곳의 공연을 맡아 활동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2018년도에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하는 ‘11시 클래식 산책’을 해설을 했는데, 독서클럽 회원들이 제 해설을 듣고 감동받으신 거예요. 그때부터 입소문이 나면서 2018년, 2019년 공연이 매진됐었습니다. 2020년도에는 제가 공연을 못 하게 되었는데 광주 시민들이 저를 애타게 찾았고 올해 3월부터 다시 시작했죠.” 

음악과 동떨어진 가정환경에서 자랐던 그는 친구의 권유로 음악을 시작했다. 고 3을 앞두고 “뭘 하며 살면 행복할지 생각해 봤냐”는 친구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길로 학교 음악 선생님에게 가서 물었죠. 선생님은 너는 목소리가 좋으니 당연히 된다. 내가 가르쳐 줄게’ 그러시더라고요.”

김 감독은 음악 선생님에게 성악을 배우고 원하던 서울대에 합격했다.

“그런데 저는 음악가적인 DNA가 없었던 것 같아요.(하하) 그래서 음악이라는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됐죠. 사람들은 문자로 돼 있는 것만 인문학이라고 생각하는데, 음악도 인문학이 될 수 있어요.”

그의 음악 해설에는 항상 인문학이 연결돼있다. 그는 고정 팬층을 형성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재미있는 인문학에 음악을 함께 풀어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인문예술의 소재이기 때문에 인문학은 당연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기존의 가이드들은 음악만 해설하기 때문에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은 음악이 ‘재미없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저는 역사이야기 그리고 음악가 개인의 삶을 음악과 함께 얘기해 줍니다. 그렇게 하면 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음악이 들리기 시작해요.”

이달 13일부터 용인문화재단이 개최하는 ‘정오의 음악 산책’ 상설프로그램은 베네치아를 시작으로 파리, 비엔나, 안달루시아, 라이프치히, 뉴욕 등 총 6곳의 도시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보이는 것을 더 잘 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보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김 감독이 기획한 여행 콘셉트 시리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것은 인문학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도시의 대표적인 음악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고 거기에 역사와 미술, 문학 그리고 그 도시의 풍경까지 함께 담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도시를 다녀온 사람은 추억이 되고 여행을 계획한 사람들에게는 ‘여행은 이렇게 가야 되는구나’ 하는 팁도 줄 수 있는 공연이죠.”

김 감독은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를 둘러싼 역사와 문학적 이야기를 알고 베네치아를 찾게 되면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무대를 통해 사람들이 타인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고 시각을 확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소리의 아름다움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너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그 감동은 배가됩니다.”

그는 공연 기획뿐만 아니라 음악 관련 콘텐츠인 유튜브 채널 ‘김이곤의 라라장터’도 운영하고 있다.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 감독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에 가면 할아버지가 손자뻘 되는 아이와 ‘축구’라는 화제를 가지고 대화하면서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공통된 화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음악회도 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음악을 듣다 죽어도 좋을 만큼 음악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었다.

콘서트 가이드 김이곤 예술감독 | NTD

다음은 김이곤 예술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 자기소개.

“음악대학을 나왔다. 내가 전공을 잘 살리지 못해서 방송국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자문하는 일을 했다. 음악회 준비부터 캐스팅 등 전반을 내게 맡기겠다는 피디를 두 명 정도 만났다. 그래서 KBS에서 열린 음악회 클래식 코너를 3~4년간 맡아했다. 그리고 CBS의 클래식 방송이 계기가 돼서 콘서트 가이드를 하게 됐다. 나는 음악가로서의 DNA는 없었던 것 같다. (하하)”

그럼 음악대학은 어떻게 가게 됐나.

“고등학생 때 친구가 도서관에서 이런 얘기를 하더라. ‘나는 공부가 정말 재밌어. 그래서 너는 나를 공부로 이기지 못할 거야. 나는 어릴 때부터 클래식을 너무 많이 들어 세계적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데, 네가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해’ 하며 권유했다.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학교 음악 선생님에게 얘기했더니 ‘너는 목소리가 좋으니 당연히 된다. 내가 가르쳐 줄게’ 이렇게 해서 그 음악 선생님은 레슨비도 한 푼 받지 않고 성악을 가르쳐 주었고 원하던 서울대에 합격했다.”

현재 콘서트 가이드로 활동하고 계신다. 콘서트 가이드는 무엇인가.

“용어는 사실 중요하지 않은데 요새 해설자라는 말보다 ‘콘서트 가이드’라는 말을 많이 쓴다. 트랜드인 것 같다.”

콘서트 가이드의 역할은 무엇인가.

“모차르트 시대까지만 해도 음악은 한 사람을 위한 음악이었다. 그 사람이 만족하면 다른 사람이 싫어도 전혀 상관이 없었고 음악가 자신도 자기의 감정이나 생각을 음악에 표현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베토벤 때부터 자기 이야기를 음악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부터 음악가라는 직업도 생겨났다. 그런데 우리는 그 언어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약간의 해석이 필요한데, 그게 가이드의 역할이다. 기존의 가이드들은 음악 자체만 해설하기 때문에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은 음악이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역사이야기, 그리고 그 음악가 개인의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얘기해준다. 그렇게 하면 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 공연을 해설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이 있다면.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신(神)권에서 왕(王)권으로, 인간을 시민(市民)으로 호칭되면서 신의 세계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인문예술의 소재가 됐다. 우리의 삶을 그린 인문학은 당연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래서 인문학을 함께 얘기한다. 우리가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사람들은 음악가이기 이전에 인문학자였다.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작곡한 경우가 굉장히 많더라. 예를 들면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굉장히 존경했는데, 나폴레옹의 자유·평등·박애 사상을 음악적으로 알리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대혁명의 기조인  자유·평등·박애를 구현해줄 영웅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면서 결국 황제로 즉위했다. 그걸 본 베토벤은 분노한 나머지 3번 교향곡의 제목을 ‘Sinfonia Eroica(교향곡 영웅)’으로 바꿔버렸다. 원래 제목은 나폴레옹의 성인 보나파르트였다. 나는 음악에 이런 부분들을 함께 얘기해준다.”

– 추천하고 싶은 명곡이 있다면.

“인터뷰를 하다 보면 추천하고 싶은 음악이 뭔지 항상 묻는다. 음악은 마치 연인을 만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는 예쁜 여자가 좋았지만 나이 들어서는 마음이 따뜻한 여자가 좋아졌는데, 음악도 그런 식으로 변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개인마다 다르다는 거다. 바그너의 음악은 굉장히 좋지만 유태인들에게 그 음악은 고통이다. 히틀러가 바그너의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가스실에도 바그너의 음악을 틀었단다. 다만 음악을 감상할 때 가장 좋은 상태에서 듣기를 추천한다. 예를 들면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음악을 듣는다든지 사랑하는 사람과 음악을 듣는다든지.. 그렇게 하면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하냐? 내가 굉장히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 그 음악을 들으면 나의 상태가 그 음악을 들었을 때의 상태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감각으로 기억하기를 추천한다.”

– ‘사랑한다면 음악공부 절대 시키지 마라책을 쓴 것으로 안다. 음악 공부를 시키지 말라고 한 뜻은.

“음악을 배우는 것은 말을 배우는 과정과 똑같다고 본다. 아이가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엄마’인데, 엄마를 가장 많이 보기 때문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자꾸 듣다 보면 연주를 하고 싶어지는 거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아이가 다섯 살이 되면 무조건 피아노 학원에 보내고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그만두라’고 한다. 아이는 가요만 듣고 살았는데 엄마는 어느 날 아이를 피아노 학원으로 끌고 가서 ‘엘리제를 위하여’를 쳐보라고 하는데 이렇게 무식한 방법이 또 어디 있는가. 음악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들으면서 배워야 한다. 그래서 가장 좋은 음악 교육은 그냥 듣는 거다.”

– 7월 13일부터 용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정오의 음악 산책’은 어떤 공연인가.

“여행 가서 맛집을 찾아가고 사진 찍는 것도 좋지만 ‘보이는 것을 더 잘 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보고 가면 좋겠다’고 해서 기획한 여행 콘셉트 시리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것은 인문학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도시의 대표적인 음악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고 거기에 역사와 미술, 문학 그리고 그 도시의 풍경까지 함께 담았다. 그러니까 그 도시를 다녀온 사람은 추억이 되고 여행을 계획한 사람들에게는 ‘여행은 이렇게 가야 되는구나’라는 팁도 줄 수 있는 공연이다. 예를 들면 공연이 ‘베네치아’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사람들은 베네치아에 가면 곤돌라를 타고 뱃사공이 불러주는 산타루치아를 듣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것처럼 바보 같은 여행이 없다고 본다. 석호에 떠있는 베네치아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베니스의 상인’의 첫 장면이 베네치아에 있는 리알토 다리인데, 베니스의 상인을 여기서 쓸 수밖에 없는지 이런 이야기들을 알고 가면 베네치아가 더 잘 보이지 않을까.”

– 공연을 보러 오는 시민에게 한 마디 한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1위다. 그러니까 제일 살기 어렵다는 얘기다.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본능만 작동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나만 잘살려고 하고 경쟁적으로 상대방의 것을 빼앗으려고만 하는 현상이 만연해 있다.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면 잘 살 수 있는데 그 방법을 택하지 않고 서로 경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다. 옛날에는 ‘보릿고개’라고 먹을 것이 없어 힘들었는데 지금은 잘 먹고사는데, 왜 이럴까? 정신적으로 괴로운 거다. 가르쳐주는 곳이 없기 때문에 그 괴로움을 어떻게 이겨내고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는 거다. 그래서 이 공연을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 꿈이 있다면.

“십여 년 전부터 ‘우리 동네 인문 예술 운동’을 해보고 싶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녔다. 사실 사람들은 예술을 접할 기회도 별로 없고 문화예술회관에서 ‘와라’ 그러지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사람들이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는데, 카페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의 카페들은 대부분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정치인이든 예술인이든 여기에 들어온 사람들은 함께 모여 열띤 토론을 하는데, 우리나라의 카페는 어떤가. 같은 공간에 들어와 있지만 서로 단절돼 있다. 나는 카페가 독서 토론회도 좋고 음악회도 좋고 아니면 미술에 관한 이야기도 좋고 같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탈리아에 가면 할아버지가 손자뻘 되는 사람과 ‘축구’라는 화제를 가지고 대화하면서 친구가 되기도 한다. 난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 공통된 화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음악회도 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이 내 꿈이다.”

☞김이곤 예술감독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이후 라움 마티네 콘서트, 부산금정문화회관 브런치 콘서트, 포천 예술문화예술회관 아침을 여는 음악회 ‘브런치 오페라’ 등에서 콘서트 가이드로 활동한 바 있으며, 윤이상 평화재단 평화사업단 예술 감독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