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20 미국 대선은 탈민주화로 가는 본보기

청샤오눙
2021년 1월 15일
업데이트: 2021년 1월 16일

겉으로 드러난 2020년 미국 대선의 결과는 트럼프의 패배지만, 그 배후의 본질은 미국의 탈민주화다. 충격적인 분석이지만, 사실이다.

미국은 줄곧 민주화 국가들의 정치적 진보를 추진해왔지만, 민주화의 보루인 미국에서 민주화의 퇴보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전통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오랫동안 마르크스주의 신봉자들에 대한 경각심을 잃었다. 그들은 오히려 미국의 민주적 제도를 흔드는 세력을 민주적 제도를 존중하는 정치적 라이벌로 보는 등 이들 탈민주화를 좇는 세력의 정치적 야망을 완전히 등한시해 왔다.

1. 미국 민주제도에 대한 우려

미국의 웹 매거진 ‘이슈앤인사이트'(Issues & Insights)는 지난 7일 “민주당원이 미국을 ‘캘리포니아 국가’로 바꿀 수 있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저자는 민주당의 목표가 영구적 다수를 확보해 극좌 어젠다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민주당이 캘리포니아주에서 이미 이룬 성과를 복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원들은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 수를 늘려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고 헌법을 위반하는 데 사용할 허수아비로 만들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푸에르토리코와 워싱턴DC를 미국의 새로운 주로 만들어 상원에서도 유리한 지위를 확보하고, 입법을 통해 앞으로 선거에서 쉽게 이길 수 있도록 할 것이 분명하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민주당의 끈질긴 정부 장악의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공화당원을 비주류로 만드는 데 성공하자 캘리포니아주가 세금 인상과 환경 법규를 끊임 없이 내놓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이 사설은 일당 독재 문제에 주목했지만 일당 독재 정치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필자는 지난달 27일 그리고 지난 8일 두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이번 대선 부정행위는 트럼프의 패배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민주 제도를 떠나 ‘정치적 올바름’ 유(類)의 독재로 들어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새뮤얼 헌팅턴은 ‘제3의 물결-20세기 후반의 민주화’에서 미국 정치학계가 20세기 한 나라의 정치제도가 민주적 제도에 속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밝혔다. 그는 그것은 슘페터의 전통 개념에 따라 강력한 집단 정책 결정권자 다수를 공정하고 성실하며 정기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치학계의 선배인 로버트 다알의 민주 선거에 대한 두 가지 정의를 인용했는데, 바로 경쟁과 대중의 참여다.

‘국가의 지도자가 걸린 전국적인 대선이 민주적 선거의 요건을 충족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선 결과를 바꿀만한 대규모 부정선거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거 부정행위는 선거 결과를 조작하는 악의적 행위로, 후보들의 정상적인 경쟁을 훼손하는 한편 국민의 자유 선거권을 박탈한다. 부정선거로 인한 선거 결과는 당연히 부정직하고 공정하지 못하다. 민주제도의 근간을 가늠하는 이 고전적인 척도로 생각해보면, 우리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리지는 않았는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2. 소리 없이 무너진 민주제도의 장벽

작년 대선 부정행위는 이미 많은 세부 사항이 폭로되었다.

경합주에서 제소한 부정선거 안건 외에도 만 명 이상이 선서 증언을 했으며, 많은 증거를 제시했고, 여러 통계학자들은 바이든 곡선 같은 개표 결과의 이상 현상을 지적했으며, 나바로 백악관 무역국장의 몇몇 보고서 역시 부정 선거를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지난 7일 론 존슨 연방상원 국토안보 및 정부사무위원장은 성명을 내 “미국인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편 투표를 확대하기 위해 이용되는 것을 봤으며, 선거 당일 투표 감독관들은 쫓겨나거나 방해받았고, 죽은 사람이 투표했다거나, 투표를 한 사람이 이미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거나, 등록된 거주지엔 아무도 살지 않고, 두 번 투표한 사람도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선거 관리들은 위법 행위를 조사하는 사람에게 증거를 넘기는 것을 거부하고, 법원은 확보한 증거 정취를 거부하거나 절차적 이유로 선거 의혹을 기각했다.

어떻게 이런 대규모 부정행위가 성공할 수 있었을까? 왜 이번 선거와 관련된 소송은 전부 형사소송이 아닌 민사소송일까?

사실 배후에 있는 진짜 이유는 민주주의 제도의 장벽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고, 트럼프와 그의 7천500만 유권자는 피해자가 됐기 때문이다.

민주제도는 원래 국민의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벽을 구축해 선거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국민이 반대한 개인과 정치 세력이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장벽에는 ▲첫째, 입법부는 반드시 대선의 안전성과 공정성을 보호하는 입법을 해야 한다 ▲둘째, 조직적인 부정 선거와 같은 정치 범죄가 발생하면 규모와 관계없이 사법 시스템의 각급 검사들이 위법성을 반드시 규명해야 하며, 집행 부서의 수사를 지휘해야 하고, 피의자를 형사 고소해야 한다 ▲셋째, 각급 법원의 판사는 위법하면 반드시 판결을 내려야 하고 법에 따라 모든 피의자가 법률의 제재를 받게 해야 한다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올해 상황의 경우, 입법적 측면에서는 많은 주 의회가 선거의 안정성과 공정성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 책임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했고, 심지어 이를 해치는 법을 통과시킨 주도 있었다.

또한 사법적 측면에서 각급 검사들은 거의 주동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수수방관하며 부정 선거의 존재 자체를 모른 체하고 있으며, 일부 판사들은 ‘위법하면 반드시 판결을 내린다’가 아니라 ‘위법해도 캐지 않는다’로 일관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민주적 제도의 보호 장벽을 구성하는 이들은 하나의 정치 세력에 순응해 민주적 제도를 수호할 정치적 책무를 포기했다.

이런 정치적, 민주적 제도의 부재 외에도 민주적 제도의 기반이 되는 또 다른 부분인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와 교육의 자유 등은 이미 훼손된 지 오래다.

일부 언론은 정당의 대변인이 되어 자신들이 편애하는 정당에 불리한 소식은 보도를 거부하는 동시에 상대를 흠집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주요 SNS는 언론 검열을 시행하고, 경고와 차단 등의 방법으로 국민의 충분한 의견 표명을 금지했다. 대학과 초중고교 시스템 안의 학교 상당수는 이미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에 따라 교내 자유로운 정보 전달을 금하고 ‘정치적 올바름’만 주입하고 있다.

3. 민주주의의 퇴보인가, 탈민주화인가?

연방 대법원에서 각급 주 법원에 이르기까지, 이번 부정선거에 대한 방종은 미국 사법사에 매우 깊은 흔적을 남겼다. 미국은 사법판정에 판례법을 시행하고 있으며, 이번 각급 법원의 부정선거에 대한 태도는 향후 부정선거에 대한 사법판정의 근거가 될 것이다.

이러다간 앞으로의 선거에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기존 선거 목표가 달성되지 않으면 부정 선거가 다시 등장할 것이고, 이를 사법적으로 저지할 가능성을 사법부 스스로 배제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적 올바름’의 장기적 삼권 합일이 이루어질 것이고,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그리고 교육에 대한 통제까지 더해질 것이다. 이런 정치제도는 민주 제도의 형식만 남아 있는, 사실상 일당독재에 가깝다.

필자가 프린스턴대에서 연구한 것은 공산당 국가의 사회, 정치, 경제 변형으로,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화두에 굉장히 익숙하다. 한 국가의 민주화 과정에서 민주적 제도 동요 현상의 발생은 통상 민주주의의 퇴보(Democratic backsliding)로 알려져 있다.

이는 보통 민주화 길을 걷던 옛 공산당 국가나 비공산당 정권에 해당하는 말로, 과거 전제 혹은 권위주의 제도였던 국가에서 민주적 제도가 흔들려 대개 권위적 제도가 부활하는 법이라 민주제도의 퇴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퇴보라는 말은 미국에 적용되지 않는다. 수백 년에 걸쳐 굳건한 민주제도를 수립한 미국의 동요는 사실상 일종의 ‘탈민주화’(de-democratization) 현상이다.

프린스턴 대학의 정치학자 낸시 버메오(Nancy Bermeo)는 냉전 종식 이후 공공연한 민주주의 퇴보의 양상, 예를 들어 쿠데타와 선거 사기는 줄었지만, 더 미묘하고 역겨운 퇴보 양상이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민주주의 퇴보 현상은 흔히 민주적 구조의 쇠퇴로 나타나는데, 사람들이 민주적 가치관을 보호하기를 기대하는 기구가 오히려 민주주의 퇴보를 합법화한다는 것이다.

버메오는 좌파적 가치관이 미국에서 점점 더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경우 선거 사기와 함께 각종 ‘미묘’하고 ‘역겨운’ 민주주의의 퇴보적 양상이 민주화 국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보루인 미국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이미 벌어졌다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미국 정치학계 전체가 민주주의의 보루인 내부에서 탈민주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가능성을 간과하고 있다. 전 세계적 민주 정치 체제로 말할 것 같으면 탈민주화는 충격적인 상황이고 각자의 민주 제도의 안위와도 관련 있다.

4. ‘민주주의 스승’의 고민

미국은 지난 세기부터 국제사회의 민주적 스승 노릇을 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미국 대학의 정치학과 모두 두 가지 과목을 개설했는데, 하나는 ‘미국 정치’로, 미국 민주제도의 변천과 원칙을 가르치고, ‘비교 정치’는 민주화 국가의 정치 과정과 규칙성을 다룬다. 이 때문에 세대를 걸쳐 미국 학생들은 민주화 국가의 각종 길과 민주주의 퇴보의 각종 폐단을 미국 민주제도의 우월성 관점에서 비교 분석하는 데 익숙하다.

미국이 민주화 국가의 정치적 진보를 끌어낸다는 말로 줄곧 이들 국가 사람들에게 미국식 민주제도의 패러다임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

앞으로 ‘민주주의 스승’은 내재된 고민이 불가피하다. 그들은 여전히 민주화 국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민주적 제도를 보완해야 하는지, 민주적 퇴보를 피해야 하는지를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학생’은 곤혹스러운 듯 질문을 던질 것이다. “선생님, 당신들이 말하는 민주주의 퇴보는 미국의 현 상황이 아닌가요? 우리가 미국의 ‘진보주의’의 길을 배워야 하나요? 미국의 현재 방법에 따르면 민주주의 퇴보가 민주주의의 목표인 것 아닌가요?”라고 말이다.

미국이라는 ‘민주주의 스승’이 가르쳐 주는 민주주의 퇴보의 흔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하나, 민주 선거의 지도자가 점진적 전략으로 민주제도를 눈에 띄지 않는 속도로 천천히 와해시키고, 더 이상 민주적이지 않은 정부를 탄생시키며, 합법적으로 보이는 반민주적 법체계를 이용해 반민주적 행위를 법의 가림막 아래 숨기는 것이다.

둘, 선거 기간에 전략적인 방해와 조작을 통해 언론에 정치 상대를 보도하지 못하게 하고 모함하기까지 한다.

셋, 선거 과정에 불법적으로 개입하거나, 승리한 후보의 투표수는 높이고 상대의 투표수는 낮추거나 둘 다 한다.

넷,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그리고 집회의 자유를 약하게 만들어 정치적 반대파가 정부에 도전하거나 책임을 묻거나 대신할 수 없게 한다.

다섯, 사법의 독립성을 파괴한다.

여섯, 정치적 반대파를 공격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에 휘둘리는 들러리 정당을 지지한다.

사실 지난 수년간 미국 사회에서 나타났던 현상으로, 지난해 미국 대선 이후 전개된 일들은 미국이 줄곧 비판해 온 민주화 국가들의 민주적 퇴보와 매우 흡사하다. 유일한 다른 점은 민주화 국가에서 이런 현상은 민주적 퇴보에 속하지만, 미국에서 이런 탈민주화 현상은 ‘정치적 올바름’ 부류에 의해 ‘민주적 진보’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앞으로 미국 대학 정치학과의 수업은 대폭 수정되어 ‘비교 정치’ 수업은 민주적 퇴보를 이야기하고, ‘미국 정치’ 수업은 탈민주화를 진보주의의 성과로 해석할 것이다. 이 부분은 어려운 말로 잘난 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스승’의 말로 ‘정치적 올바름’ 부류의 얼굴을 때리는 것이다.

5. 민주 제도의 숙적인 마르크스주의

현재 일부 중국인들은 공산주의 정권의 관행에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미국의 탈민주화 현상에 매우 실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사한 현상이 ‘정치적 올바름’ 부류에 의해 만들어진 후 이들 중국인들의 마음속 미국이라는 민주주의 등대가 꺼지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중국인들은 중공이 미국의 민주주의와 트럼프를 비난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춰 미국을 비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문제의 초점은 중공이 아니고 중공의 입장도 미국 정치의 변천을 판가름할 기준은 아니다. 중공은 영원히 미국을 비난할 것이다. 중공의 눈에는, 또 그들 언론의 입에서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폐단이다.

민주 제도는 전 세계 많은 나라가 인정하고 지키는 정치적 제도로, 이는 트위터가 이 기회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을 차단해버린 데 유럽과 호주 등 여러 나라의 정상들이 공개적으로 질책하는 이유다.

이같은 질책은 표면적 현상을 단편적으로 논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정치적 올바름’ 부류의 탈민주화 행보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 전 세계 민주주의 제도의 빛은 미국이라는 ‘등대’가 꺼졌다고 해서 가려지지 않을 것이고, 미국의 탈민주화는 그저 민주주의 국가가 내부로부터의 전복을 경계하게 할 뿐이다.

왜 탈민주화가 유럽의 다른 민주국가가 아닌 미국에서 일어났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민주주의가 퇴보한 국가에서 같은 현상이 나타났을 때 서방 국가의 많은 사람들은 사회의 불공평과 경제적 어려움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미국에서 이런 문제는 사실상 탈민주화의 진정한 동기가 아닌 탈민주화 선동의 핑계 혹은 수단이다.

사실 민주화를 주도하는 정치와 지식 엘리트들은 신·구 마르크스주의적 가치관을 선호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필자는 지난해 8월 에포크타임스에 보낸 ‘정치적 올바름의 정체성을 복원하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이 중요한 배경을 소개한 적 있다. 일부 마르크스주의 신자들은 천하통일과 자기 멋대로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민주 제도를 정치적 야망의 걸림돌이나 밧줄로 봐 민주 제도의 핵심인 자유 선거를 계획적이고 단계적으로 무력화시키면서 민주 제도의 사법, 입법, 집행 장벽을 갉아 먹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전통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오랫동안 마르크스주의 신자들에 대한 경각심을 잃었고 오히려 미국의 민주적 제도를 흔드는 세력을 민주적 제도를 존중하는 정치적 라이벌로 보는 등 이들 탈민주화를 좇는 세력의 정치적 야망을 완전히 등한시해 왔다.

여기에서 작년 대선 이후 트럼프는 자신이 지킨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과정에서 탈민주화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지만, 그중 다수는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그들이 지지해야 할 것은 사실 미국을 지키는 민주적 제도이며, 막아야 하는 것은 미국의 민주 제도가 텅 빈 껍데기만 남는 공동화 현상이다.

이번 미국 대선 부정행위가 발생한 전후에 드러난 문제는 사람 마음의 부패뿐만 아니라, 이 정치 세력이 미국을 독재 국가로 만들려 시도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 세력이 독재를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정치, 사회, 경제적 목표로, 진정한 민주를 소멸시키고 자본주의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민주 제도의 숙적으로, 이들이 ‘정치적 올바름’ 세력의 인식과 계획을 미국 민주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련의 행동으로 바꾼 것이야말로 역변한 미국 현 정치제도의 가장 큰 교훈이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내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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