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은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사상…이념적 독재정치 도구로 전락

청샤오눙
2020년 9월 16일
업데이트: 2020년 9월 16일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지난 수년간 미국에서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미국 교육의 좌경화를 목격하고 있다.

교단에서는 신입 교사에게 ‘정치적 올바름’을 유지하도록 요구한다.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지 않거나 소극적인 교사는 동료들로부터 비난을 피하기 위해 평소 언행에 조심해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의 유리천장도 존재한다. ‘정치적 올바름’에 따르지 않는 교사는 승진에서 제외되거나 승진 과정에서 해당 주제를 다룬 논문 제출을 요구받는다 .

이는 ‘정치적 올바름’이 하나의 이념에서, 이념적 독재로 더 나아가 사회적 독재로 진화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현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르크스주의와 매우 흡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이념을 따르지 않는 반동 세력을 무자비하게 억압하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는 세력은 인권, 특히 공산주의 국가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며 독재정치를 비판한다. 그러나 공산주의 독재국가의 이념적 뿌리는 마르크스주의에 있다.

민주주의 국가 내부에서 마르크스주의식 이념독재를 휘두르는 사람들이 공산주의 독재정권 비난하는 것은 심각한 자가당착으로 보인다.

또한 이들은 공산주의 정권의 인권 문제를 강력하게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현상 유지만 할 뿐 직접 나서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는 세력은 늘 마르크스주의의 틀 안에서 모든 의견을 검토하고 평가한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은 폭력적이고 독재적이다.

현재 ‘정치적 올바름’은 사회적 정의가 아니라 독재와 통제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퇴보하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인권탄압을 받는 이들은 체제를 거부하거나 정권과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다.

‘정치적 올바름’ 지지 세력은 ‘정치적 올바름’에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을 용인하지 않는다. 반체제 인사들을 억압하는 공산주의 정권과 다를 바 없다.

서방 국가들의 좌파세력은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제도와 문화를 계속 유지하려 하지만, 그 때문에 공산주의 추종자라고 불리는 것은 두려워한다.

그래서 소위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로 자신의 주장이나 행동을 정당화한다. 이 말은 현재 좌파들에게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그럴듯한 포장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적 올바름’을 옹호하는 세력은 ‘전통적 가치’를 적으로 삼는다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는 세력은 미국의 전통적 가치에 대해 적대적이며, 이러한 적대적 가치관에 기반하여 공산주의 정권을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민주적 정치체제의 틀 안에서 그들의 행동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미국 사회의 전통적 가치는 정치 체제 내에서 ‘국민이 자산을 소유할 수 있고, 국민에 의해 국가가 통치되며, 국민의 기본권을 누릴 수 있는’ 것에만 중점을 두고, 경제 및 사회 체제 측면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복지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기반한다.

우리의 이성은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민주 국가의 재정은 끊임없이 돈이 나오는 화수분이 아니라 땀 흘려 노동을 한 납세자들이 국고를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일깨워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필요 때문에 국고를 남용하는 것은 국가를 좀먹는 행위이며, 개인의 근로 의욕을 훼손할 수 있다.

이러한 가치를 지켜나가는 미국인들에게서 일종의 ‘겸손한 자존감’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겸손은 자신을 부양하기 위한 근로 기회만 있으면 된다는 의미이고, 자존감은 정부의 복지에 의존하지 않고 정부가 납세자들이 내는 제한된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를 바라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는 세력은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지닌 사람들을 이념적으로 ‘보수주의’라고 부른다.

이러한 꼬리표 달기는 언론과 여론 조사를 통해 강화된다.

하지만 사실, 전통적인 가치를 지닌 미국인들은 이념적 성향이 강하지 않다. 보수주의 역시 엄밀히 따지면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강렬한 이념적 성향을 드러낸다.

그 개념은 마르크스주의와 그 현대적 변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 좌파 가치의 사상적 토대는 유럽, 즉 전쟁 후 유럽을 지배했던 포스트 모던 및 신마르크스주의 같은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발생한 포스트 모더니즘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1930년대 등장한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대학교의 사회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신마르크스주의 사회 이론가 집단)는 유럽 전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문화적 상대주의와 가치 상대주의는 포스트 모던 이론의 산물이다. 문화 상대주의의 도덕적 토대는 가치 상대주의이고, 가치 상대주의의 본질은 도덕적 허무주의이다.

오늘날 유럽이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는 좌익 사상에서 비롯된 유치함과 우월성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유치함은 유토피아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우월함을 내비치는 것은 사유가 좌익적으로 이뤄진 결과다.

유럽의 많은 지식인과 언론은 유럽 문명을 비판하면서도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따지지도 않고 다른 이데올로기를 냉큼 수용한다.

많은 유럽인은 미국을 싫어하는데, 미국 국민들에게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는 전통적인 가치가 유럽 좌파의 가치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미국 대학 사회과학 계열 과정은 종종 유럽에서 신 마르크스주의적 배경을 바탕으로 주목받는 많은 이론을 강의에 도입했다.

대다수의 미국 문화 엘리트들은 좌파의 가치를 수용하고 전파하면서, 스스로 ‘자유주의’라는 왕관을 썼다.

또한, 정치적 개념에서 인권과 소외 계층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사회 및 경제 시스템에서 큰 정부(사회주의 사상에서 비롯된 국가가 다양한 분야에 참여하는 정부를 지칭)와 여러 복지 제도를 지원했다.

이 좌파 문화 엘리트 중에는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했으며, 그들 중 대다수의 사람은 1960 년대와 1970년대에 마르크스주의의 추종자이기도 했다.

그들은 스탈린의 정치적 모델을 비판하면서 그 사례로 악명 높은 소련의 대규모 정치적 박해를 들었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그에 못지않게 대규모 정치적 박해를 일으켰다. 중국에서는 ‘공산주의’라는 미명 아래 수천만 명이 굶어 죽는 참극이 벌어졌다.

그러나 좌파 문화 엘리트들은 이를 모른 척한다. 마르크스주의 정치의 종말에 대해서는 논의 자체를 꺼린다.

물론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마르크스 사상을 좋아하는 것은 사상의 자유에 속한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절대적 진리’인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는 것, 독재주의의 가치와 본질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도 사상의 자유에 속한다.

‘정치적 올바름’이 정치적 자유라고 주장하려면 그것을 비판하거나 비판을 수용해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 역시 정치적 자유의 한 다른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

‘자유주의자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며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약화할 때, 민주주의 시스템은 위협받을 수 있다.

일단 사회 전반에 ‘정치적 올바름’이 서서히 스며들면, 젊은 세대는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알게 된다. ‘정치적 올바름’은 다른 모든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배척하기 때문이다. 이는 세뇌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민주 국가는 사상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그 자유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 체제는 독재주의의 체제로 전락할 위험에 처한다.

대다수 미국인은 ‘정치적 올바름’ 사상이 본능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이면의 사상적 경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공산당 정권의 사상 개조는 노골적인 방식과 은밀한 방식, 두 측면으로 진행돼 왔다. 은밀한 방식은 교육, 언론, 문화·예술을 통한 침투, 검열, 세뇌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은 소수의 의견을 마치 ‘인류의 보편적인 진리’로 여기게 만들어 다른 모든 사람을 완전히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구호 자체는 사상의 자유에 반한다.

또한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구호는 그 단어와 달리 전혀 올바르지 않다. ‘진보’로 꾸몄지만, 그 본질은 사상의 자유를 폐지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의 진보가 아니다.

미국은 자유 민주주의의 퇴보, 독재 정치로의 몰락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진보의 반대, 일종의 퇴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중공은 좌파 성향을 띄는 서구 국가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 양측 모두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했지만, 두 가지 이유로 양측은 협력할 수 없었다.

하나는 좌파 성향을 가졌던 서구 국가들이 이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기반한 새로운 형태의 마르크스주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서구국가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공산주의 정권을 멀리하고, 공산주의 정권의 인권 문제 상황을 비판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서구 국가들의 좌파 정당은 마르크스주의를 감추기 위해 우파 정당보다 독재 정권을 더 경계하고 비판하며, 인권 문제를 더 의도적으로 강조해야 한다.

그러한 사정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과 유착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청샤오눙(程曉農)은 1985년 중국인민대학 석사 출신으로 중국전인대상무위원회 사무청 연구실과 중국경제체제개혁연구실에서 체제개혁소 종합연구실 주임과 부연구원을 지냈다. 미국에서 프린스턴대학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재미 중국 경제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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