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진핑과 그의 최대 정적 쩡칭훙의 투쟁 가열…그 유래와 승부수

리정콴(李正寬)
2023년 10월 13일 오후 10:02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05

시진핑 당국이 지난 9월 말 대형 부동산개발업체 헝다그룹의 쉬자인(許家印) 회장을 구금했다. 중국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게 된 헝다그룹이 자구책으로 미국에서 파산보호를 신청한 지 한 달여 만이다.

호주에서 활동하는 위안훙빙(袁紅冰) 법학교수는 에포크타임스에 쉬자인은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 가문의 대리인이며 쩡칭훙의 동생 쩡칭화이(曾慶淮)와도 각별한 사이라고 밝힌 바 있다.

쩡칭훙은 시진핑의 최대 정적이다. 따라서 시진핑 당국이 쉬자인을 체포한 것은 시진핑과 쩡칭훙의 대결이 본격화하고 중난하이에 새로운 피바람이 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시진핑과 쩡칭훙의 대결은 오래전부터 시작됐고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에도 멈춘 적이 없지만, 헝다가 미국에서 파산 신청을 한 후 양자의 대결은 더 격렬해지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두 건의 사건을 통해 이런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하나는 닛케이가 전한 사건이다. 지난달 닛케이 소속 나카자와 가쓰지(中澤克二) 편집위원은 올여름 베이다이허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나카자와 위원에 따르면, 이번 베이다이허회의에서 중국 공산당 원로 쩡칭훙이 시진핑 면전에서 ‘시진핑이 국정을 망쳤다’고 질책했고, 그 자리에 츠하오톈(遲浩田·94세)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과 장더장(張德江) 전 정치국 상무위원도 있었다. 나카자와 의원은 이 두 원로는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시진핑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하나는 리창(李強) 전 총리의 비리를 폭로한 사건이다. 리창의 부인과 딸이 권력을 이용해 마윈(馬雲)의 앤트그룹에서만 500여억 위안 상당의 지분을 갖고 있고 보유 자산 총액이 800억~900억 위안에 이른다는 것이다. 리창은 시자쥔(習家軍·시진핑의 측근그룹)의 2인자이다. 따라서 리창의 비리를 폭로한 것은 시진핑을 공격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이 폭로는 쩡칭훙을 필두로 하는 반시진핑 집단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시진핑은 이처럼 자신을 겨냥한 공격이 이어지자 반격에 나섰고 쉬자인을 체포한 것이다.

그렇다면 시진핑과 쩡칭훙 사이의 대결은 어떻게 끝날까? 양측의 최종 승부를 예측하려면 두 사람의 성격, 양측의 투쟁의 유래, 그리고 양측의 실력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쩡칭훙은 어릴 때부터 명나(明)라 때의 궁중 내 권력투쟁에 관심을 보였고, 권력투쟁에서 정적을 물리치고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배웠다.

음흉하고 권모술수에 능한 쩡칭훙은 그런 빼어난 간계로 장쩌민을 도와 여러 차례 당내 정적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두고 쩡칭훙은 장쩌민에게 덩샤오핑과 양상쿤(楊尚昆)·양바이빙(楊白冰) 형제를 이간하는 간계를 바쳤다.

장쩌민 집권 초기 중앙군사위는 양상쿤·양바이빙 형제가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지지한 군부 세력이었다. 결국 양씨 형제는 군권을 잃었고, 양상쿤은 쩡칭훙에게 독살(毒殺)당했다.

당 고위 간부 ‘나이 제한’이란 간계를 내놓은 것도 쩡칭훙이었다. 장쩌민이 질투하는 차오스(喬石) 당시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밀어내기 위해 15차 당대회를 앞두고 ‘정치국 상무위원 70세 은퇴’를 제안했고, 리루이환(李瑞環) 당시 정협 주석을 몰아내기 위해 16차 당대회에서 ‘칠상팔하(67세 유임, 68세 퇴임)’라는 불문율을 만들었다.

그동안 시진핑과 쩡칭훙은 몇 차례 격렬한 교전을 벌였다.

1 라운드 ‘정권 쟁탈전’…시진핑 완승

시진핑이 집권하게 된 것은 사실상 장쩌민파와 공청단파가 타협한 결과였다. 시진핑은 태자당 출신이지만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고 계파색도 뚜렷하지 않았다. 시진핑의 이러한 ‘무던함’과 평범함이 양 계파의 기대치를 충족했다.

공청단파는 꼬투리를 잡을 수 없었고, 장쩌민파는 보시라이(薄熙來) 당시 충칭시 서기를 후계자로 키우기 위한 시간을 벌기에 좋았다. 장쩌민파는 일단 어리숙한 시진핑을 권좌에 올려 놓은 다음 시기가 성숙되면 쿠데타를 일으켜 보시라이를 그 자리에 올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장쩌민·쩡칭훙이 설정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왕리쥔(王立軍) 당시 충칭시 공안국장이 미국 영사관으로 뛰어들어가 망명을 요청하면서 쿠데타 음모를 폭로하는 바람에 장쩌민파의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시진핑은 곧바로 ‘호랑이(고위 부패관리) 사냥’으로 응수했다. 시진핑은 왕치산(王岐山) 당시 중앙기율위 서기를 앞세워 불과 수년 만에 장쩌민파의 거물급 호랑이들을 대거 축출했다. 낙마한 장쩌민파의 부패 관리들은 대부분 인권을 유린하고 민중을 억압하는 데 앞장섰던, ‘손에 피를 묻힌 자’들이었다.

시진핑은 이 과정에서 최대 정적의 예봉을 꺾고 정국 주도권을 잡는 동시에 민심까지 얻는 데 성공했다.

시진핑 첫 임기 동안에 이뤄진 1라운드 결전에서는 시진핑이 완승했다.

2라운드 ‘금융전’…시진핑 판정승

‘호랑이 사냥’ 캠페인을 통해 더 많은 권력을 손에 넣은 시진핑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금융 분야에서도 ‘강세장’을 만들어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장쩌민파 가문들의 악의적인 공매도로 2015년 증시 폭락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시진핑의 생일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협약을 맺은 날 중대한 증시 폭락 사태가 연달아 발생했다.

역습을 당한 시진핑은 칼을 갈기 시작했고 금융 분야에서 강력한 반격에 나섰다.

먼저 시진핑은 2015년 증시 폭락 사태를 일으킨 ‘사모펀드 악어(大鰐)’ ‘사모펀드 황제’로 통하는 쉬샹(徐翔) 쩌시(澤熙)투자관리 대표를 체포하고 2017년 초 징역 5년 6개월과 함께 총 110억위안(약 1조840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그는 쩡칭훙의 하수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또 시진핑은 쩡칭훙의 대리인인 샤오젠화(肖建華) 밍톈(明天)그룹 회장을 홍콩에서 체포해 본토로 데려왔고, 쩡칭훙의 돈주머니인 밍톈그룹 산하 9개 금융기관을 인수했다.

이어 쩡칭훙의 심복인 라이샤오민(賴小民) 화융(華融)그룹 회장을 재판에 회부하고 사형이 선고되자 20여 일 만에 형을 집행했다.

시진핑은 쩡칭훙의 조카딸인 쩡바오바오(曾寶寶)의 부동산개발업체 화양녠(花樣年)도 가만두지 않았다. 최근 몇 년 동안 시진핑 당국의 강력한 규제로 화양녠은 재정난에 빠졌고, 채권은 이미 씨티은행과 서신은행에 의해 거절당했다. 쩡바오바오는 ‘다키이스트 아워(Darkest Hour)’가 도래했다고 했다.

최근 시진핑은 쩡칭훙의 거물급 대리인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을 체포했다.

이번 격전은 주로 시진핑의 두 번째 임기 중 발생했고 세 번째 임기까지 이어졌다. 이 라운드에서는 시진핑은 약간의 손해를 보았지만 전반적으로 우위를 차지했다.

3라운드 ‘여론전’… 쩡칭훙 승리

시진핑 당국의 호랑이 사냥 운동으로 장쩌민·쩡칭훙은 수세에 몰렸다. 쩡칭훙은 쿠데타가 실패하고 자기편 사람들이 일망타진될 위기에 처하자 잠시 꼬리를 내리고 전략을 바꾸었다.

먼저 장쩌민·쩡칭훙은 2017년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시진핑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시진핑의 ‘핵심’ 지위를 인정해주고, ‘시진핑 사상’을 당장(黨章·당헌)과 헌법에 삽입하고, 국가주석 연임 제한을 폐지하고, 시진핑의 ‘일존(一尊)’ 권위를 인정할 테니 자기네 사람을 체포하지 말고 함께 당을 지키자는 것이었다.

이어 그들은 시진핑 곁에 ‘무른 칼(軟刀子·음험하게 사람을 슬그머니 해치는 수단)’ 왕후닝(王滬寧)을 심어 놓았다. 시진핑의 실책을 유도하는 일종의 함정이었다. 왕후닝은 시진핑을 우상화하고 떠받듦으로써 이성을 흐리게 하고,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을 펴게 하고,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게 하고, 늑대외교를 대대적으로 벌이게 하는 등 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와 동시에 쩡칭훙은 해외의 대리인과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매체를 앞세워 끊임없이 각종 정치 루머를 만들어냈다. 예를 들면 “쩡칭훙이 쿠데타를 일으켜 시진핑을 끌어내려 했다”, “시진핑이 쩡칭훙을 제거하려 한다”, “쩡칭훙이 베이다이허회의 때 공개적으로 시진핑을 질책했다” 등이다.

이는 ‘쩡칭훙이 시진핑의 반대편에 서 있다’, ‘시진핑이 강력한 견제에도 건재하다’는 것을 대내외에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여론전’이다.

왕후닝이라는 ‘무른 칼’을 이용해 시진핑을 혼군(昏君)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각종 정책 실패를 유도하고 시진핑이 대내외적으로 곤경에 처하게 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또 여론전을 통해 끊임없이 시진핑을 흔들고, 실책을 부각하고, 시진핑 반대 세력으로서 장쩌민파가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기를 목적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3라운드는 쩡칭훙이 승리했다고 볼 수 있다.

4라운드 ‘이간계’… 쩡칭훙 우세

‘이간질’과 ‘차도살인(借刀殺人)’은 쩡칭훙의 특기라고 할 수 있다. 쩡칭훙의 별명 중 하나가 ‘음모가’이다. 차도살인은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적과 싸울 때 관계없는 제3자를 이간질해 자신의 적을 공격하게끔 유도해,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적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쩡칭훙은 1990년대 14차 당대회를 앞두고 덩샤오핑과 양상쿤·양바이빙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계책을 장쩌민에게 바쳤다.

19차 당대회를 앞두고는 시진핑과 그의 오른팔 왕치산 사이를 이간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시진핑은 오른팔을 잃었고, 장쩌민·쩡칭훙이 뼛속까지 증오하는 왕치산은 19차 당대회 이후 실세에서 밀려났다.

20차 당대회를 앞두고는 “리잔수(栗戰書·당시 전인대 상무위원장)는 쩡칭훙의 사람이다”라고 소문을 퍼뜨려 시진핑과 리잔수 사이를 이간했다. 홍콩 명보(明報)를 앞세워 유포한 이 소식은 훗날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최근에는 X(옛 트위터)에 리창 총리 집안의 부패와, 리창과 마윈(馬雲)의 관계를 폭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는 시자쥔의 역량을 약화시키고 시진핑과 리창 사이를 이간하기 위한 음모로, 쩡칭훙이 또다시 그의 특기인 차도살인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라운드는 쩡칭훙은 간계를 능숙하게 구사했고 시진핑은 상대적으로 열세에 처했다고 볼 수 있다.

시진핑이 첫 임기 때 ‘호랑이 사냥’에 성공한 이유

시진핑과 쩡칭훙이 몇 차례 격전을 치렀지만, 시진핑이 이긴 가장 멋진 싸움은 집권 1기 때의 ‘호랑이 사냥’이었다.

시진핑 집권 초기에는 ‘총대(槍桿子·군대)’, ‘칼자루(刀把子·사법계통)’, ‘붓대(筆桿子·문화선전)’가 모두 장쩌민·쩡칭훙의 손에 장악돼 있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이러한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쉬차이허우(徐才厚), 궈보슝(郭伯雄), 저우융캉(周永康), 보시라이(薄熙來), 왕리쥔(王立軍) 등 정·부 총리급 및 정·부 성장급 고위 관리들을 척결했다.

시진핑이 승리한 원인은 무엇일까.

시진핑이 하늘의 뜻에 순응했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척결한 부패 관리들은 모두 민중을 억압하고 파룬궁 수련자들을 잔혹하게 박해한 자들이었다. 그래서 민중의 지지를 얻었다.

시진핑은 2013년 파룬궁 박해에 이용됐던 노동교양제도를 폐지했다. 또 ‘안건이 있으면 반드시 입건하고, 소송이 있으면 반드시 처리한다(有案必立 有訴必理)’는 슬로건을 내걸고 사법제도도 개혁했다. 이에 따라 수십만 명의 파룬궁 수련자와 그 가족이 최고법원·최고검찰원에 장쩌민을 실명으로 고소했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시진핑이 신의 도움을 받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시진핑이 실책을 연발하고 민심을 잃은 이유

시진핑의 가장 큰 패배는 ‘무른 칼’에 급소가 찔린 것이다. 왕후닝의 간계에 빠져 실책을 연발함으로써 민심이 이반하고, 국내외에서 시진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진핑은 대권을 잡고도 암살과 쿠데타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호랑이 사냥’ 때 시진핑을 띄웠던 배가 왜 뒤집혔을까.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뜻은 무엇인가? ‘공산당을 멸하라’는 것이다. 바로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홍콩인들이 외쳤던 그 ‘천멸중공(天滅中共·하늘이 중국 공산당을 멸함)’을 지상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은 이 엄중한 하늘의 뜻에 역행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이 2019년 5월 24일 ‘천멸중공(天滅中共)’이라고 쓴 표지를 들고 중국의 홍콩안보법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2017년 10월 31일, 시진핑은 19차 당대회가 끝난 직후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 6명을 이끌고 상하이에 있는 1차 당대회 개최지를 찾아 마르크스가 고취한 공산주의를 위해 평생 분투할 것을 주먹을 쥐고 맹세했다. 이 아이디어는 왕후닝이 냈을 가능성이 높다.

시진핑 집권 2기를 이끌 7인의 상무위원이 2017년 10월 31일 상하이의 1차 당대회 개최지역을 찾아 주먹을 꼭 쥐고 공산당 입당 선서를 되뇌며 공산당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 신화통신/연합

그 후 왕후닝이 주입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공산당 세계관’에 빠진 시진핑은 ‘당을 지켜야 권력을 지킬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는 장쩌민·쩡칭훙 세력을 척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기어이 당을 보전하려 함으로써 하늘의 뜻을 거역했다.

시진핑은 쥐고 있던 ‘좋은 패’를 나쁜 패로 바꾸는 자충수를 둠으로써 총체적 위기에 직면했다.

그렇다면 시진핑-쩡칭훙 대결의 최종 결말은 어떻게 될까.

결국 시진핑은 쩡칭훙과 함께 죽거나 중국 공산당과 함께 매장될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이 살 길은 쩡칭훙을 체포하고 하늘의 뜻에 순응해 공산당을 해체하는 길밖에 없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