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계 금융질서 재편…‘브레턴우즈 3.0 시대’ 열리나

허칭롄(何淸漣)
2022년 04월 15일 오후 1:23 업데이트: 2022년 04월 15일 오후 2:08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전방위적인 제재와 러시아의 맞제재가 충돌하는 가운데 로이터통신 등 일부 언론이 마침내 하나의 현실, 즉 러시아가 받는 경제적 충격이 예상만큼 크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됐다.

미국 고위 관리들은 3월 하순 전 세계를 향해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월리 아데예모(Wally Adeyemo) 미 재무부 부장관은 3월 29일(현지시각) 영국·프랑스·독일 고위 관리들을 만났고, 달립 싱(Daleep Singh)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같은 날 인도 뉴델리를 방문해 인도 관리들을 압박하고 회유했으며,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중동 및 아프리카의 주요 지도자들에게 달러 주도의 세계 금융 시스템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준비통화인 달러·유로·파운드·엔화가 일제히 약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루블화 환율이 제재 이전 수준을 회복하면서 세계 금융시스템의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IMF와 세계은행, 잇따라 경계경보 발령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한 전방위적인 제재를 선언하자 세계 양대 금융기구가 일제히 경고 메시지를 내보냈다.

IMF는 3월에 두 번이나 경고를 보냈다. IMF 집행이사회는 5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예바 총재 주재로 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제적 영향에 관한 IMF 직원들의 성명(IMF Staff Statement on the Economic Impact of War in Ukraine)’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민적 고통과 인도주의적 위기를 초래한 것 외에도 세계 경제 전반에 걸쳐 성장 둔화와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IMF는 10일 뒤(15일) 홈페이지 글(링크)을 통해 더 세부적인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IMF는 이 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세계 경제·지정학적 질서에 미칠 수 있는 경로는 크게 3가지라고 지적했다.

첫째는 식료품·에너지 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돼 소득과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교역과 공급망 붕괴에 대규모 난민 사태까지 겹친 주변국들의 경제가 전례 없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경기 전망에 대한 기업의 자신감 하락과 투자자들의 불확실성 증가로 자산 가치가 떨어질 수 있고, 이로 인해 금융 시장이 경색되면 신흥국에서 자본 유출이 촉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식량과 에너지 등 주요 대종상품(大宗商品, 벌크스톡) 생산국인데, 전쟁으로 생산과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국제적으로 가격이 오르고 있다.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고 있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세계 수출의 30% 차지하는 밀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식량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말패스 세계은행(WB) 총재는 3월 14일 워싱턴포스트(WP)가 주최한 행사에 화상으로 참여해 제재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전쟁 자체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했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브릭스’, 달러 지위 위협

미국이 주도해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를 배제한 금융 제재는 예상과는 달리 러시아 경제를 파탄내지 못했다. 러시아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비탄력적 수요’인 에너지를 수출하는 국가인 데다 브릭스(BRICS) 5개국을 이용해 ‘브릭스 결제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자본의 속성은 전 세계적으로 시장을 찾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에도 서방은 더 많은 시장을 찾기를 원했다.

브릭스(BRICs)는 브라질(Brazil)·러시아(Russia)·인도(India)·중국(China) 등 4개국의 영문 국가명 머리글자를 조합한 명칭이다. 이 용어는 영국 재무부 차관과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사 회장을 지낸 짐 오닐(Jim O’Neill)이 2001년 ‘더 나은 글로벌 경제 브릭스의 구축(Building Better Global Economic BRICs)’이라는 보고서에서 ‘경제적으로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 국가 연합’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했다.

2003년 오닐은 ‘브릭스와 꿈꾸며: 2050년으로 가는 길(Dreaming with BRICs: The Path to 2050)’이라는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오는 2050년 브릭스 국가들이 독일, 캐나다, 이탈리아, 영국 등을 제치고 미국, 일본과 함께 세계 6대(G6) 경제국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이들 4개국은 신흥시장의 선두주자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 국가는 정치 형태는 다르지만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다소 거리를 두고 있고 서방의 압력을 느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 자연스럽게 뭉치게 됐다. 브릭스는 2010년 12월 남아공이 공식 가입하면서 4개국으로 시작했던 ‘BRICs’가 5개국 연합체인 ‘BRICS’가 됐다.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19년 11월 14일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11차 브릭스 정상회담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Sergio Lima/AFP via Getty Images

이들 국가는 정기적으로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있는데, 2009년부터 2021년까지 13차례 개최했다.

브릭스는 5개국 국토면적을 합치면 약 3940만km²로 세계 전체 육지 면적의 약 26%를 차지해 아프리카 면적보다 크고, 인구는 약 31억6500만 명으로 세계 전체 인구의 약 41.7%를 차지하며, GDP 총량은 약 21억700만 달러로 미국의 GDP 총량과 맞먹으며, 세계 GDP 총량의 약 24%를 차지하는 매우 거대한 경제권이다.

브릭스는 연합체로서의 틀이 잡히자  2019년부터 Apple Pay나 Samsung Pay와 같은 ‘BRICS Pay’ 결제 시스템을 추진해왔다.

보도(링크)에 따르면 이는 브릭스 국가들이 회원국 간의 소매 결제 및 송금 플랫폼의 틀을 통일해서 각국의 결제 시스템을 통합하는 계획의 일환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Apple Pay와 유사한 모바일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불 통화와 관계없이, 즉 어느 나라 화폐든 관계없이 브릭스 5개국 어느 곳에서나 앱을 통해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이 외에도 이들 국가는 독자적인 클라우드 플랫폼을 구축해 5개국의 결제 시스템을 연결하고 또 다른 나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브릭스는 왜 이 플랫폼을 구축하려 할까? 인민망(인민일보 인터넷판)에 따르면 미국이 달러를 ‘무기화’하고 ‘정치화’하는 데 맞서 달러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2018년 3월 하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중국 당국은 2019년부터 그들이 오랫동안 공들여온 ‘판다 허거들(Panda Hugger·공산 중국을 지지하는 서구 정치인)’이 미국 행정부로부터 완전히 소외됐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미중 관계가 지속적으로 악화할 가능성을 예견했다. 베이징 당국은 대안으로 브릭스 국가들 간의 통합된 결제 시스템 구축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러시아가 BRICS Pay를 제안하기 전부터 이미 많은 준비를 해왔다. 중국은 2010년대부터 한국·몽골·러시아와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2018년 10월 26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과 일본은행이 3년 간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한도액은 중국은 2000억 위안, 일본은 34000억 엔이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이 협정은 2024년 10월 25일까지 3년간 연장됐다. 실제로 중국과 동북아·러시아 사이에는 위안화를 주거래 통화로 하는 경제권이 이미 형성됐다.

미·유럽의 전면적인 러시아 제재가 BRICS Pay 출시를 앞당기게 했고, 러시아는 마침 이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우크라 지원 와중에 脫달러화 속도 내는 중·러

브릭스 5개국의 통합 결제 시스템이 운영되면 달러의 지위가 약화할 것이다. 미 싱크탱크 인사들은 러시아·중국 등 브릭스 5개국이 이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할 때부터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3월 7일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는 ‘반(反)달러 축, 러시아·중국의 미국 경제력 탈피 계획(The Anti-Dollar Axis: Russia and China’s Plans to Evade U.S. Economic Power)’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저자는 “활발한 미국 시장과 막강한 군사력으로 뒷받침되는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달러의 패권적 위상은 워싱턴이 부과하는 모든 제재를 무시무시하게 만든다”면서 “유로화와 위안화를 포함한 어떤 통화도 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 시장에서 달러의 패권적 지위를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9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의 회담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Alexander Zemlianichenko/AP Photo

그러나 이번 제재로 중·러가 손을 잡고 ‘탈달러화’를 추진하게 됐고, 인도·브라질·사우디아라비아 등 대국들이 이를 수용하고 있다. 저자는 “악화한 미중 관계가 중국과 러시아가 손잡고 미국을 배척하는, 믿을 수 있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자극했다”며 “그러한 시스템은 미국의 제재를 받는 국가들을 끌어들일 것이고, 심지어 미국에 해가 되더라도 자국 통화를 강화하고 싶은 미국 동맹국들에도 매력적일 것이다”라고 했다.

저자는 러시아 정부가 서방의 금융 제재를 피하고 금융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두 가지 중요한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하나는 비자, 마스터카드 같은 독립적인 국가결제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금융통신시스템(SPFS)이다. SPFS는 러시아 버전의 SWIFT 시스템으로,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합병한 후 SWIFT 퇴출 가능성에 대비해 2015년 개발한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보다 광범위한 배경을 염두에 둬야 한다. 러시아에 대한 더 강력한 제재는 단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지만, 이러한 조치는 더 폭넓은 글로벌 ‘탈달러화’ 운동을 가속화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글로벌 지배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다.

미국이 글로벌 패권을 지키려면 달러 기반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확고히 해야 하고, 글로벌 금융 안정에 필수적인 안정적인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역할도 지켜야 한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는 제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치는 영향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헤아려야 한다.

국제 금융질서, 브레턴우즈 3.0 시대 이미 진입

1944년 7월 미국 주도의 ‘브레턴우즈 협정’이 체결되면서 달러가 금과 직결됐고, 파운드를 대체해 기축통화가 됐다. 이로써 ‘브레턴우즈 체제’ 시대가 시작됐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가 막을 내리고, 달러화 단일 기축통화 시대(브레턴우즈 2.0)가 등장됐다.

달러는 여전히 세계 1위 준비통화이긴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위가 약화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보유고 통화구성(COFER) 데이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인 2021년 4분기 세계 달러 표시 외환보유액은 7조87억 달러로, 비중이 3분기 59.15%에서 58.81%로 떨어져 1996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자국 통화를 강화해 달러화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위안화가 IMF의 특별인출권(SDR) 바스켓에 편입되면서 베이징 당국은 위안화 국제화를 서두르는 등 달러 패권에 도전하려는 야심이 커졌다. 그러나 이 같은 야심은 별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자원 수입 대국이자 완제품 수출 대국인 중국은 대외 자원과 시장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2위 경제대국임에도 대외 의존형 경제 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상황은 다르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공업 시스템은 위축됐지만, 자원이 풍부해 미국과 유럽이 발동한 전방위적인 경제 제재에 맞서 반격할 여력이 있다. 다른 여러 대국과의 경제적 연대와 다년간 계획한 결제 시스템을 이용해 짧은 기간 내에 자원 주권의 우위를 화폐 주권의 우위로 전환할 수도 있다.

화폐를 남발하는 현대 통화 이론을 신봉하는 바이든 정부는 달러 패권의 의미를 달러 발행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 바이든 정부는 러시아 정부 및 관계자들의 자산은 물론 러시아 중앙은행의 보유 외환을 동결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사건은 브레턴우즈 체제 2.0 시대의 종료를 알렸다. 각국 정부는 러시아가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는 모습을 보고 달러화를 기축 자산으로 보유하는 것은 더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달러 패권이 국가 신뢰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듯하다. 미국이 일단 신뢰를 잃으면 세계가 달러를 준비통화와 결제통화로 선택할 가능성이 떨어진다. 

미국이 대러시아 경제 제재를 가한 지 한 달여가 지나면서 루블화의 가치는 제재 전의 상태로 돌아간 반면, 세계 각국의 달러 보유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는 달러 패권 상실의 시작일 뿐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현재 미성년자 트랜스젠더, 비판적 인종이론 등 좌파 어젠다를 추진하느라 세계 경제가 복수 기축통화로 전환되는 브레튼우즈 체제 3.0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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