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은 한국전쟁 때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하)

선저우(沈舟)
2021년 11월 10일
업데이트: 2021년 11월 15일

중국 공산당 당국이 한국전쟁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공군의 사상자 수가 미군의 7배인 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38선을 넘는다는 목적을 이루지 못한 점도 창피하게 여기지 않고, 마오쩌둥의 참전 결정이 잘못됐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은 한국전쟁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미국은 수동적으로 참전하고 수만 명이 사망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큰 대가를 치른 결과로 38선을 지킨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미국이 한국전쟁을 언급하지 않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미국이 오늘날에도 감당해야 할 것들, 즉 미국이 한국전쟁 전후에 저지른 실수로 인한 결과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제 더 심각하고 더 큰 중공의 도발에 직면했다. 미국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경우 한국전쟁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안 하고는 전적으로 미 행정부의 역사 안목과 용기에 달려있다.

다섯 번째 실수: 평화회담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착각

1950년 12월 11일 유엔군이 38선으로 퇴각하면서 정전협상을 제안했지만 중공에 거절당했다. 미군은 정전을 위해 38선을 유지했지만 중공은 오히려 미군이 겁을 먹었다고 여겼다.

총사령관을 맡은 펑더화이(彭德懷)는 미군 폭격으로 후방 군수품 보급망이 심각한 타격을 입어 전방에 식량과 탄약이 부족한 데다 혹한으로 인명 손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마오쩌둥에게 보고했다.

펑더화이는 베이징으로 달려가 마오에게 진격을 멈출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마오는 38선을 돌파하라고 끊임 없이 명령해 사상자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그러자 더 많은 부대를 투입해 파상공격을 펼쳤다.

1951년 1월 중공군의 명령은 여전히 “다음 전투부터 우리는 모든 적을 섬멸하고 전(全) 조선을 해방할 것이다. 진군하라!”였다. 마오는 펑더화이에게 보낸 전보에서 “(조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봄철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라”고 했다.

1951년 4월 하순 부사령관인 훙쉐즈(洪學智)가 베이징에 가서 ‘사병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적이 아니라 음식과 탄약, 그리고 부상병들을 후방으로 수송할 트럭이 없는 것’이라고 보고했다.

중공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중공군은 1951년 제5차 공세에서 병력 손실이 10만 2천 명에 이르렀고, 이 중 1만 7천 명이 포로로 잡혔다. 중공군은 보급에 심각한 차질을 빚었고, 식량과 탄약 등의 물자는 저녁에만 수레나 자전거로 압록강 국경에서 전선으로 수송했기에 대규모 공세를 펴기 어려웠다. 하지만 마오는 여전히 정전을 하려 하지 않았고 소모전으로 더 많은 미군 사상자가 나오길 원했다.

1951년 7월부터 1952년 7월까지 양측은 협상을 벌이는 한편, 38선 부근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대치했다. 중공은 진척이 없자 어쩔 수 없이 38선 돌파 목표를 포기해야 했지만 여전히 정전협정에 서명하려 하지 않았다.

1950년 12월, 미국 군부와 정부 관리들이 한국전쟁 전황을 확인하는 장면. | AFP via Getty Images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은 줄곧 화력이 우세했다. 1952년 마지막 3개월 동안 355만 3518발의 야포탄과 256만 9941발의 박격포탄을 발사한 반면 중공군은 야포탄 37만 7782발을 발사하는 데 그쳤다. 이는 9.4 대 1의 비율이다. 미군은 또 공습에서도 압도적인 우세를 보여 중공군의 사상자 수가 유엔군보다 훨씬 많았다.

1953년 6월 중공군은 마지막 대규모 공세에서 사상자가 약 7만2000명 발생했다. 1953년 7월 27일 중공은 어쩔 수 없이 정전협상을 받아들였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수많은 병사가 무의미하게 죽는 상황에서도 정전을 하려 하지 않는 중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오의 논리는 아마 이랬을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목표 달성을 못함에 따라 정책 결정의 중대한 실수가 부각되니 어쩔 수 없이 38선을 거듭 공격하는 것이고, 아무래도 38선을 돌파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비겼다고 속이고 중공이 미국을 몰아붙여 정전을 이끌어냈다고 선전하는 것이다.’

중공의 ‘상감령(上甘嶺)’이란 영화는 가짜 영웅을 만들어 대량의 무의미한 사상자를 낸 사실을 은폐하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정전을 정치적 승리로 포장해 선전했다.

지금 중공군과 미군이 서태평양에서 전면 대치하고 있는 범위는 당시 38선에서 대치한 범위를 훨씬 넘어섰고, 잠재적인 위기와 충돌 가능성 또한 더욱 크다. 지금 중공이 미국에 도전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처구니없지만 매일같이 발생하고 있다

중공은 의도적으로 전염병을 퍼뜨려 미국과 전 세계에 큰 피해를 입혔고, 중국 경제도 심각한 손해를 입어 실업률이 급증하고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중공은 여전히 미국을 도발하고 있고 심지어 대내적으로 “동방이 뜨고 서방이 진다(東升西降)”고 선전하면서 다시 한번 미국에 승리했다고 선전하려 한다.

미국 정부가 여러 차례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지만 중공은 도리어 거듭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로 대응하며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는 과거 한국전쟁에서 38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할 때의 양상과 같다.

미국이 중공과 평화협상을 하려면 반드시 효과적인 지렛대를 가지고 중공이 평화협상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해야 한다. 그래도 중공은 중국 인민의 이익이 훼손되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 승리로 포장해 선전할 수 있을 때까지 도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현재 미국 정부는 평화회담을 할 의지만 있을 뿐 중공을 견제할 지렛대는 없는 듯하다. 따라서 실제로 충돌을 피하기는 어렵다. 미군과 다국적군의 대규모 군사훈련은 중공에 실질적인 피해나 위협을 주지 못한다. 중공은 미군이 선제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오히려 빈번히 맞서고 있다.

여섯 번째 실수, 문제 해결을 미루면서 저절로 해결되기를 기대

미국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로 38선을 지켜내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은 시간이 가면 한반도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문제 해결을 미뤘다. 결과는 문제가 오히려 더 커졌다.

정전협정은 전쟁이 끝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김일성은 중공의 꼭두각시가 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중공군을 몰아낸 뒤 장기간 100만 명에 달하는 군대를 유지해 왔다. 한반도는 줄곧 적대 상태에 처하게 됐고, 미군은 한국의 요청에 따라 한반도에 상시 주둔할 수밖에 없었다.

1966~1969년 북한군은 대규모로 비무장지대를 넘어와 충돌을 유발했는데 이를 제2차 한국전쟁이라고 한다. 1968년 북한의 최정예 특수부대 요원들이 청와대에 침투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1974년 이후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4개 이상 발견됐다.

1975년 4월 베트남 공산당이 남베트남의 수도를 점령하자 김일성은 기회가 왔다고 보고 마오에게 한반도 출병을 다시 요청했다. 당시 중공은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미국의 책동하에 공산 진영을 배신했다. 중공은 마침내 미국과 국교를 수립할 좋은 기회를 맞이했으니 북한의 요구는 당연히 거절했다.

1964년 중공은 최초로 핵실험을 했다. 파키스탄도 인도의 핵실험에 대응해 1998년 첫 핵실험을 했다. 이어 파키스탄 핵 전문가가 북한과 리비아, 이란에 핵무기 기술을 팔았다고 인정했다.

2006년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선언하면서부터 한반도의 핵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대가로 식량 등의 물자를 북한에 여러 차례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2010년에는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고, 승선했던 장병 46명이 사망했다. 같은 해 북한이 한국 연평도에 포격해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2013년 3월 11일 북한은 정전협정이 무효라고 주장했고, 3월 30일 한국과 전쟁 상태에 진입했다고 선포했다.

미국은 정전협정으로 한반도 문제를 미봉한 채 근본적인 해결을 미룸으로써 문제를 키웠다. 미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공이 북핵 위기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까지 하고 있다.

1953년 한국전쟁 기간 판문점에서 평화협상을 하는 장면. | MPI/Getty Images

오늘날에 한반도 정세에 던지는 시사점

미국은 중공에 시장을 개방하고 막대한 자금과 기술을 이전해 중공이 문화대혁명 이후의 어려운 시기를 넘을 수 있게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말을 빌린다면 미국은 중국의 재건을 도와준 동시에 중공군의 발전을 지원한 것이다. 중공의 핵무기와 공격용 재래식 무기는 기본적으로 미국을 겨냥하고 있고, 이제 중공은 미국과 공개적으로 패권을 다투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미국은 사실상 중공 문제 해결을 미뤘다. 미국은 한때 중공이 평화적으로 변화하리라 믿었지만 이제야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중공이다.

미국은 또다시 냉전을 벌여 중공이 구소련처럼 저절로 해체되길 기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현재 중공과의 냉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대결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고 ‘경쟁’만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공은 강하게 반발하며 미중 관계를 “정상궤도로 돌려놓겠다”고 한다. 이는 무언가를 주지 않으면 소란을 피워대는 북한의 수법과 다르지 않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스타워즈 계획 등을 포함한 승리 전략을 내놓아 결국 구소련의 해체를 이끌어냈다. 미국 정부는 아직 중공을 제압할 명확한 승리 전략이 없고, 여전히 중공 문제 해결을 미루려는 것으로 보인다. 바꿔 말하면 어느 정도의 디커플링을 시도했다가 중공이 더욱 미쳐 날뛸까 우려해 ‘재커플링’을 제기한 것이다.

중공의 문제는 사실상 더는 미룰 수 없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이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는데도 충돌을 피하길 기대하고 있다. 만약 준비가 부족하거나 충분히 강경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중공의 오판과 모험을 불러올 수 있다.

미국이 여전히 유혈 충돌을 두려워하고 있지만 또다시 더 많은 피를 흘릴 상황에 직면했다. 미국은 전염병으로 수많은 생명을 잃었는데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거나 대응할 준비가 부족하다면 중공의 모험은 미국을 손쓸 수도 없는 궁지로 몰아넣을 것이다.

중공의 사악함은 변한 적이 없다. 만약 중공의 본성을 간파하지 못하고 공존을 기대한다면 미국은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미국이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수세(守勢)를 취할수록 중공은 더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미국은 중공과의 협상을 원하겠지만 여전히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미국은 중공을 견제할 효과적인 지렛대가 없으니 중공은 대화조차 하려 하지 않는다.

한국전쟁에서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미국은 정부와 국민이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