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국서 ‘역대 최고위급 인사’ 미국 망명 루머…누구일까

2021년 6월 18일
업데이트: 2021년 6월 18일

폭스뉴스 진행자 터커 칼슨이 지난 4일 미 보수매체 보도를 인용해 역대 최고위급 중국 정부 관리가 미국으로 탈출해 미 정보기관에 기밀 자료를 제공했다고 전했다.

이 문제는 아직 확인이 필요하지만, 만약 사실일 경우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해당 관리가 중국의 생물무기를 포함해 무기개발 관련 기밀 정보를 넘긴 것으로 전해져 코로나19(중공 바이러스 감염증) 기원 조사에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코로나19 기원 조사에 있어 ‘실험실 유출’ 가능성을 극히 낮게 평가한 세계보건기구(WHO) 조사팀의 보고서가 나왔는데도 “실험실 유출 가능성을 포함해 추가 조사하라”고 지시한 행보와 맞물려 더욱 관심을 끈다.

독재 시스템에서 내부 고위층의 이탈은 외부의 그 어떤 압력보다 더 큰 파괴력을 가진다.

중국 공산당 내에서 마오쩌둥의 권세는 1970년대에 절정에 달했지만, 린뱌오(林彪) 당시 부총리의 탈출로 전환점을 맞이했다. 린뱌오는 마오쩌둥의 위협을 피해 도주하려 했으나 탈출에 성공하지 못하고 탑승했던 비행기가 내몽골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당 내부에서 마오쩌둥의 위상은 수직 하락하기 시작했다.

국가신문출판서 서장 두다오정(杜導正)의 글을 살펴보면, 그가 문화대혁명 후기 광둥 신화사 지사에서 지사장을 역임할 당시 광둥 지도자 웨이궈칭(韋國淸) 등의 인물들과 광둥에서 반(反)마오쩌둥 반란을 논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많은 당내 관료들과 청년들이 70년대부터 마오쩌둥에 대해 반감을 품었다는 점은 알려졌으나, 마오쩌둥을 상대로 쿠데타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공산권 전제 국가에서는 모두 고위급 관료의 이탈이 발생했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소련의 레프 트로츠키다. 그는 과거 소련 붉은 군대의 지도자였지만 탈출 후 멕시코에서 스탈린이 보낸 암살자에 의해 도끼로 암살당했다.

북한과 베트남에서도 정치국 1급 관리가 중국으로 탈출하곤 한다. 이러한 일들이 전제체제 내부에 미치는 충격, 특히 당 내부에 미치는 충격은 매우 크다.

중국 공산당에서 탈출한 관리 중 고위급 관리들을 정리해봤다.

당연히 역대 최고위급 인사는 린뱌오일 것이다. 린뱌오는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쩌둥 바로 다음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문화대혁명 시기 백성들은 마오 주석의 만세를 외친 후에 ‘린 부주석의 건강 기원’을 외치곤 했다. 1969년 중국 공산당 9대 당 대회에서는 린뱌오가 마오쩌둥의 후계자라고 당장에 명시했지만, 그는 1971년 9월 13일 비행기를 타고 탈출했다.

또 다른 인물은 쉬자툰(徐家屯)이다. 쉬자툰은 장쑤성 위원회 당서기를 역임한 후, 홍콩 신화사 사장직을 맡았다. 사실 중국 공산당의 홍콩·마카오 공작위원회 서기였던 셈이다. 1989년 톈안먼 사태에서 그는 자오쯔양(趙紫陽)을 지지했다. 90년대의 숙청 압박에 미국으로 탈주했다. 쉬자툰은 성급 관료로서 린뱌오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직급의 인물이 될 것이다.

그다음은 위창성(俞強聲)이다. 위창성은 국가안전부 북미정보사 사장으로, 직급은 높은 편이 아니지만 중국 공산당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그가 1985년 미국으로 탈주한 후, 중공의 미국 최고위급 스파이 래리 친(金無怠)이 체포됐다. 위창성이 그를 지목했다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다. 래리 친은 CIA의 고위급 비밀 공작원으로 일하며 중국 공산당의 첩보 활동을 전담했다. 이러한 그가 적출된 것은 중국 공산당에 큰 손실이었다.

또한 해방군 총참 2부 북미정보사 사장 쉬쥔핑(徐俊平) 대령은 2001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다음으로는 총병참부의 장교 2명 류롄쿤(劉連昆) 소장과 사오정종(邵正宗) 대령이다. 90년대, 이들은 탈출하지는 않았지만 대만에 해방군 정보를 제공한 후 총살당했다. 두 사람의 위패는 현재 대만의 국군 충렬사에 있다.

현재 온라인에서는 왕치산(王岐山), 리위안차오(李源潮), 멍젠주(孟建柱) 등의 인물이 중국을 탈출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왕치산은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국가 부주석으로, 한때 중기위를 맡아 시진핑의 정적 제거를 도왔다. 그가 탈출했다고 한다면 아마도 둥훙(董宏)에게 발생한 일 때문일 것이다.

둥훙은 왕치산의 비서로 왕치산의 유능한 조력자였다. 왕치산과 함께 하이난, 광둥 베이징 등에서 비서장으로 일했으며, 왕치산이 중기위를 맡았을 때, 둥훙은 중기위 순시조 조장을 맡았다.

둥훙이 체포된 후 법적 처벌과 재산 몰수 및 공산 당적 박탈이라는 쌍개(雙開) 처분을 받자, 당내에서는 왕치산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추측했다. 적어도 시진핑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리위안차오 역시 국가부주석 겸 정치국위원이다. 그는 몰락한 링지화(令計劃) 전 중국 통일전선공작부장과 가까웠기 때문에, 링지화의 몰락 후 계속 냉대를 받다가 퇴직했으며 자살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리위안차오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작년 상하이 수출입 박람회였다.

멍젠주는 전 정치국 상무위원, 정법위 서기를 역임한 전 시대의 우두머리였다. 최근 멍젠주의 유능한 부하 중 변을 당한 인물이 7명에 달한다.

공안부 부부장 쑨리쥔(孫力軍 ), 충칭시 공안국장 덩후이린(鄧恢林), 상하이 공안국 국장 공다오안(龔道安), 장쑤성 정법위원회 서기 왕리커(王立科), 장시성 정협 부주석 사오이(肖毅), 산시성 공안청장 류신윈(劉新雲), 중앙 610 사무실 부주임 펑보(彭波)다.

작년부터 시진핑은 정치법률위원회(공안·사법 지휘조직) 계통 인물들에 대한 숙청을 시작했고 숙청은 진행 중이다.

정법위를 이끌던 수장 저우융캉(周永康)은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시진핑은 2012년 취임 직후부터 정법위 조직에 대한 불신감을 나타냈다. 집권 1기에 지방의 주요 정법위 서기들은 모두 교체됐고, 공안 조직 출신이 아닌 사람들도 대부분 대체됐다. 시진핑은 집권 2기에도 정법위 숙청을 지속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멍젠주가 받았을 압박은 상상할 만하다. 작년 여름부터 멍젠주가 조사를 받고 있으며, 이후 병세가 심각해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그 이후로는 어떠한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다.

공산당 전제 체제에서의 고위급 관리 탈출은 통상적으로 당내 숙청과 관련이 있다. 중국에서는 2012년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의 반란이 미수에 그친 이후 지금까지 탈출을 시도한 사람이 없기에 이번 ‘역대 최고위급 탈출’ 루머는 더욱 이례적이다.

전제 체제에서 고위급 관리의 탈출이 가져오는 충격이 큰 이유는 체제의 특징과 관련이 있다.

전제 체제의 주요 공직자들은 핵심 권력층의 지지에 의지한다. 문제는 이러한 ‘핵심 인물’들이 너무 많으면 권력이 분산돼 통제되지 않고, 너무 적으면 나라 전체를 통제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중국 공산당 시스템에서 이러한 ‘핵심 인물’들은 수백 명에 달한다. 이들 수백 명의 충성이 최고 권력자의 지위가 확고하게 유지되는지를 결정한다. 거꾸로 말하면 이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이 보장돼야 전체 시스템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핵심 인물’들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게 되고, 정치적 경제적 이익이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면 권력의 피라미드에 흔들림이 발생한다.

과거 7~8년 동안 중국 공산당은 여러 차례 권력 숙청을 진행했다. 상위 수백 명의 핵심 권력층과 그 가족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 고위층 이탈 루머가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숙청으로 권력의 피라미드에 금이 가고 충격에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제 하락의 압박까지 더해진다면 이탈 동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는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이 중국 공산당 고위층을 대상으로 입국 금지 등 제재를 가하는 상황과도 연결돼 있다. 자국의 권력 게임에서 위기감을 느끼면서 해외 탈출로까지 막힌 이들은 ‘정치적 망명’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릴 가능성이 커진다.

내년 중국 공산당은 20차 당대회를 개최해 차기 권력 판도를 결정짓는다. 변혁을 통해 구조적 개혁을 이룰지, 굳어진 문제를 그대로 안고 불안한 정권을 이어갈지 과도기에 놓여 있다.

중국 공산당 내부의 많은 관료는 현재 숙청을 두려워하며 도광양회(韜光養晦) 책략을 취하고 있다. 말을 하지 않고 적게 일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수년간 중국 공산당 정부의 특징이기도 했다.

/스산(石山·필명) 중국문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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