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음색을 지닌 바이올린…스트라디바리우스와 델 제수

앤드루 벤슨 브라운 (Andrew Benson Brown)
2024년 03월 30일 오후 12:47 업데이트: 2024년 03월 30일 오후 12:47

4개의 현으로 이뤄진 찰현악기(擦絃樂器)인 바이올린은 약 3옥타브의 소리를 내어 관현악기 중 가장 높은 음역대를 자랑한다. 바이올린은 휴대용 악기 중 가장 권위와 가치가 높은 악기로 수 세기 동안 음악계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풍부한 음색으로 다양한 감정과 의미를 표현해 내는 이 악기는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초의 바이올린

오케스트라(관현악단)가 등장하기 전 악기 연주자들은 소규모 현악기 연주자 그룹으로 조직돼 ‘실내악’으로 알려진 음악을 만들었다. 17세기에서 18세기 중반까지 실내악은 이탈리아 전반을 사로잡으며 많은 사람의 귀를 즐겁게 했다.

‘악기를 살펴보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860년경), 오베른도르퍼, 앤포크너 | 퍼블릭 도메인

이에 따라 현악기의 수요가 늘어났고, 특히 바이올린의 인기가 증가했다. 이에 많은 ‘루시어(luthier)’, 즉 현악기 제작자들이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도시 크레모나에 모여 전문 기술을 나누며 완성도 높은 악기를 탄생시켰다.

현악기 제작자는 극도로 정교한 전문 목공 기술이 필요하다.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뒷면은 단풍나무, 옆과 앞면은 가문비나무 또는 소나무가 쓰인다. 손가락으로 현을 누르는 지판(指板)은 흑단 등 고급 목재로 만들어진다. 현악기 제작자들은 나무를 완벽하게 톱질한 후 모양을 만들고 긁어내는 등의 섬세한 작업을 해야 했다.

당시 많은 직업은 가족 사업으로 대를 이어 발전했다. 현악기 제작 또한 그랬기에 16세기부터 활동한 위대한 장인들은 200년에 걸쳐 스승과 제자 관계로 연을 이어가며 활동했다.

세 개의 위대한 가문

‘쿠르츠’ 바이올린(1560), 안드레아 아마티. 가문비나무, 단풍나무, 흑단 | 퍼블릭 도메인

바이올린 제작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문인 아마티는 안드레아 아마티(1511~1579)에 의해 탄생했다. 그는 16세기에 최초로 현대식 바이올린을 만든 인물이다. 그는 바이올린의 현을 4개로 표준화하고, 진동과 소리를 향상하기 위해 F자형으로 사운드 홀(소리 구멍)을 조각했다. 또한 바이올린의 머리끝에 장식으로 스크롤을 추가해 미학적 완성도를 높였다. 현대식 바이올린의 확립에 혁혁한 업적을 세운 안드레아는 당시 왕실과 귀족의 사랑을 받았고, 많은 현악기 제작자가 그에게 기술을 배우기 위해 크레모나로 모여들었다.

안드레아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 안토니오(1550~1638)와 기로라모(1551~1635)가 가업을 이어갔다. 그들이 만든 많은 훌륭한 악기들은 지금까지 남아 천상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대를 이어가며 아마티 가문의 기술력은 더 깊어졌다. 안드레아의 손자이자 기로라모의 아들 니콜로(1596~1684)는 아마티 가문에서 가장 위대한 제작자로 꼽힌다. 니콜로는 안드레아가 설계한 원래 디자인을 개선해 바이올린을 조금 더 길게 늘이고, 옆으로 넓혀 현재의 디자인을 완성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다음 세대의 제작자들을 가르치며 뛰어난 제자를 다수 양성했다.

니콜로의 많은 제자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은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익히 알려진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와 안드레아 과르네리다.

위대한 스트라디바리 가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890년경), 에드가 번디. 캔버스에 오일 | 퍼블릭 도메인

아마티 가문의 아성을 넘어선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바이올린 제작자 가문은 바로 스트라디바리다. 명성의 시작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는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생애 동안 1100개 이상의 악기를 만들었다. 대부분이 바이올린이지만, 첼로, 비올라, 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제작했다. 그리고 그중 절반 정도가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스트라디바리의 악기는 풍부하고 따뜻한 음색으로 유명하다. 그 이후 수천 명의 현악기 제작자가 그의 악기를 모방하려 했지만, 그 누구도 그만의 독특한 음색을 재현하지 못했다.

그가 남긴 악기들은 현재까지도 매우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적게는 수십억 원을 호가하고, 특히 그의 황금기로 불리는 1700~1725년에 제작된 악기는 수백억 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예수’를 만든 과르네리

스트라디바리와 함께 현악기 제작법을 배운 안드레아 과르네리(1623~1698)는 과르네리 가문의 시초였다. 그러나 안드레아의 세대는 스트라디바리만큼 명성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주세페(1698~1744)는 가문의 인지도와 악기의 완성도를 엄청나게 끌어올렸다.

주세페의 악기는 ‘델 제수(del Gesu)’, 즉 ‘예수’라 불리며 사랑받았다. 그가 만든 악기에 항상 십자가를 새겨넣어 붙여진 별명이다. 주세페는 약 20년 동안 현악기 제작자로 활동했다. 그의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악기는 매우 좋은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만든 바이올린은 200여 점만이 남아있는데, 특유의 거칠고 대담한 음색에 많은 거장들이 그의 악기를 선호한다.

주세페가 남긴 악기는 현대에도 많은 사랑을 받는 동시에 엄청난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그가 제작한 악기 중 하나인 ‘과르네리 발틱’(1731년 제작) 바이올린은 지난 2023년 미국 타리시오 옥션에서 열린 경매에서 944만 달러(약 127억 200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황금시대의 종말

스트라디바리와 주세페는 각각 1737년, 1744년에 사망했다. 그들이 사망한 후 수십 년간 이어진 전쟁으로 이탈리아는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그와 동시에 크레모나 지역의 바이올린 제작 황금기는 막을 내렸다. 그들의 악기는 19세기까지 잊혔다가, 음악가들에 의해 다시 인기를 얻게 됐다.

크레모나산 악기의 특별함

스트라디바리우스 ‘그레플레’ 바이올린, 국립 미국사 박물관 소장 | 퍼블릭 도메인

섬세한 기술과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악기를 만든 현악기 제작자들이 크레모나 지역에서 활동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지역에서 자란 나무와, 마감재로 사용된 화학 물질의 특수성 또한 좋은 악기 제작에 크게 기여했다.

많은 전문가는 이 지역에서 제작된 악기가 다른 악기보다 뛰어난 이유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노력했다. 2003년 발표된 자료는 스트라디바리가 바이올린을 만들 때 사용한, 소빙하기의 영향을 받아 좁은 나이테를 가진 나무가 뛰어난 음색을 내는 데 큰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1년 독일 화학 전문지에서 발표한 논문은 두 전문가가 바이올린을 만들 때 사용한 화학 물질이 나무를 견고하게 보호하고 양질의 소리를 내는 데 도움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바이올린은 사용된 목재의 두께가 미세하게 달라져도 음색이 바뀔 수 있다. 크레모나 지역에서 당시 제작된 바이올린은 현대의 바이올린에 비해 매우 얇고 가볍다. 학자들은 그들이 만든 바이올린의 비밀을 밝히고자 지금까지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크레모나 바이올린의 부활

주세페 과르네리 ‘슈타우퍼’ 바이올린(1734) | 퍼블릭 도메인

크레모나 지역은 근래 들어 현악기 제작의 부흥기를 되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장인이 바이올린 한 대를 만드는 데는 약 250시간이 소요되기에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을 바탕으로 신성한 자세로 악기 제작에 임했던 두 현악기 제작자가 만들어낸 소리는 천상의 경이를 지상으로 옮겨왔다. 현대 음악계는 전자 음악, 전자 악기가 많은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들이 만든 악기의 음색은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앤드루 벤슨 브라운은 미국 미주리주에 거주하는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입니다. 그는 음유시인 부엉이 출판사의 편집자이자 미국 혁명에 관한 서사시인 ‘자유의 전설’의 저자입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