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은행들, 부실채권 비율 급증…“금융권 시한폭탄”

강우찬
2024년 04월 1일 오후 1:59 업데이트: 2024년 04월 1일 오후 5:10

중국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계속 악화하면서 본토 은행의 부실채권이 증가하고 있다.

은행 수백 곳에서 부실채권이 급증하고 있으며, 중국 경제를 강타할 대형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2020년 중국 은행업 상위 54위를 차지한 주장(九江)은행은 2023년 실적 보고서에서 지난해 은행 순익이 전년 대비 3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난달 밝혔다.

기업정보조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주장은행의 부실채권 잔액은 68억 6800만 위안(약 1조2750억원)으로 부실채권 비율은 2.27%, 대손충당금 적립 비율은 133.63%였다.

대손충당금은 회수 불가능한 대출금 등을 비용으로 처리하기 위해 미리 적립해 두는 금액이다. 금융기관의 신용손실 흡수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다.

대손충당금 적립 비율은 일반적으로 100%이면 안정적이라고 본다. 다만, 한국에서는 부동산 PF 부실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지난 2월 상호금융업권( 농·수·신협, 새마을금고 등)을 대상으로 기존 100%에서 130%로 상향 조정했다.

중국의 대손충당금 최소 적립 비율은 상업은행의 경우 120~150%로 한국보다 높은 편이다. 일부 은행들은 200%를 유지하면서 안전성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주장은행의 133%는 당국 기준을 아슬아슬하게 맞추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7일 기사에서 주장은행의 이번 실적 악화 발표를 “이례적”이라고 논평했다. 실적 악화를 감추는 것이 중국 본토 은행들의 관행인데, 주장은행이 오히려 이를 공개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을 더는 감출 수 없을 만큼 궁지에 몰렸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중국 은행들은 주로 자산관리회사(AMC)에 부실자산을 인수하도록 하고 이를 투자자에게 매각하는 방식으로 부실채권을 처리해 왔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 자금을 조달해 파산 위기에 놓인 기업이 중단된 공사를 계속 진행할 수 있도록 해 채무를 상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부실자산을 인수하는 일은 그 자체가 위험성을 포함하고 있다. AMC는 신용 위험도에 따라 부실자산 인수를 결정하도록 제한받고 있다. 문제는 기밀유지 조항으로 인해 거래 세부 사항이 일반인은 물론 지방 법원에도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 은행들은 AMC를 통해 부실채권 위기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 부분을 그대로 숨겨두고 있어 실질적 해결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신다증권의 후자니(胡佳妮) 애널리스트는 현지 경제전문 매체에 “채무 처리 비용과 이익을 따져볼 때, AMC의 채무 처분 규모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AMC는 그 설립 목적 자체가 부실자산 처분이다. 중국 공산당은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1999년  AMC를 4개 설립하고 4대 국영은행이 품고 있던 1조 4천억 위안(약 260조원)의 부실채권을 이들 AMC로 옮겼다.

지난 2020년 말에는 1곳을 추가해 총 5개로 AMC를 늘렸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신규 AMC 설립을 허용한 조치였다. 중국 은행들이 받고 있는 부실채권 압박이 그만큼 늘어났음을 방증한 셈이다.

중국 공산당 당국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중소기업을 돕느라 은행 빚이 늘었다고 주장했지만, 현재 중국 AMC들은 막대한 채무에 짓눌린 지방정부와 관련이 깊다. 지방정부들은 무분별한 인프라·부동산 개발로 발생한 채무를 AMC로 이전하고 있다.

여기에는 법정 채무한도를 넘어서 빌린 채무인 음성 채무들도 포함됐다. 국무원은 지난 2019년 제40호 문건을 통해 AMC 등 금융기관의 음성 채무 대체를 허용한 바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주장은행의 부실채권이 2015년부터 작년 말까지 7배나 증가한 점에 주목했다. 부실채권의 증가로 중국 금융기관들의 대차대조표가 약화돼 중국 정부의 기업 재정 지원을 어렵게 만들 것으로 전망했다.

부실채권 급증은 중국 은행권 전반으로 번지고 있는 리스크다. 홍콩에 본사를 둔 중신은행은 부실채권에 대한 관리 부실 등이 드러나 지난해 12월 중국 금융당국에 의해 2억 2천만 위안(약 408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충칭지점 부행장 등 여러 지점 임원들이 자격 미달인 기업에 대출해 준 것이 적발됐다.

중국 4대 국영은행 중 하나인 중국농업은행도 비슷한 위반으로 2700만 위안(약 50억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액수는 크지 않지만 주요 은행에서도 대출 관리가 허술하다는 점이 노출되면서 금융권 리스크에 관한 시장의 우려를 깊게 했다.

AMC는 부실채권 처분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처분 속도가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2년에는 부실채권 규모가 거의 3조 위안(약 557조원)에 육박했다. 반면 부실자산 매입 규모는 줄어들어 500억 위안(약 9조원)에 머물렀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경영학부 금융학과 교수 겸 조교수인 벤 샤로엔웡과 중국 인민대학교 금융경제학부 부교수인 먀오멍(苗萌)은 “문제가 있는 대출이 시간이 지나도 계속 누적될 것”이라며 “중국 내 수백 개의 은행들에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라고 경고했다.

올해 1월 말, 중국 관영 언론은 AMC 중 3곳이 중국 국부펀드와 합병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AMC들이 설립 목적인 부채 청산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이는 AMC를 부실채권 처분 창구로 이용해 왔지만 여전히 부실채권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한, 주장은행을 비롯한 수백 개 중국은행들을 더 깊은 시름에 빠지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