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홍콩 증시 올 들어 1300조원 증발…“폭락장의 악몽”

정향매
2024년 02월 13일 오후 7:38 업데이트: 2024년 02월 13일 오후 7:38

“자국 투자자 분노, 해외 투자자 이탈…시진핑 골머리 앓을 것”

지난 7일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증감위)가 몇 주간의 증시 불안 끝에 수장을 교체했다. 이후이만(易會滿) CSRC 전 위원장을 해임하고 그의 후임으로 상하이시정부에서 부국장을 지낸 증권 감독관 우칭(吳清)을 임명했다.

이후이만 전 위원장은 증시 폭락으로 인해 경질된 첫 번째 중국 관료는 아니다. 그의 전임자 리우스위(劉士余)는 2019년 해고됐고 이후 부패 혐의로 조사받았다. 리우스위의 전임자 샤오강(肖鋼)은 2015년 증시 폭락의 희생양이었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7일 중국 증감위의 이러한 인사 조정 사례를 언급하며 “이 전 위원장은 해고되기 전 자신의 처지를 감지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초부터 2월 5일까지 중국·홍콩 증시 시가총액 총 1조 달러(약 1300조 원)가 증발했고, 상하이종합지수는 이날  최근 5년래 최저치로 급락했다”며 “현재의 중국 증시 침체는 성과가 대부분 비참했던 지난 30년간의 중국 증시 침체와는 달리 느껴진다. 중국 증시 급락의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현재 중국 경제 전망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어둡다. 이코노미스트에 의하면 부동산 경기 침체가 가장 큰 문제다. 중국 부동산 가격과 판매량이 1년 넘게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이러한 추세를 막지 못했다.

지난 2015년에도 중국 증시 폭락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개인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고 부동산을 사자”는 슬로건을 외쳤다. 요즘은 아무도 이 같은 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지금까지 중국 당국의 다수 경기 부양책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코노미스트에 의하면 다수 중국인은 지금도 제로코로나 방역 시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2023년 경제가 회복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해 상반기 경제 기반이 흔들리면서 국가 전체는 물가 수준이 전반적으로 장기간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경제 비관론이 시장에 만연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중국 고객 중 자산 운용사, 보험사, 사모펀드 관계자 10여 명에게 중국 경제 약세에 대한 전망을 조사했다. 최저 0, 최고 10점으로 평가하도록 한 결과 절반이 0점을 줬고 나머지 절반도 3점에 그쳤다. 0점은 지난 2022년 제로코로나 시기 중국 경제 전망에 해당하는 정도다.

이코노미스트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이러한 상황 때문에 우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에는 2억 명의 주식 투자자가 있다. 주가 하락이 정권의 안정에 직결될 수 있는 이유다. 증시 폭락이 이어지면서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정부 기관의 일상적 거동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대하는 네티즌 반응이 넘쳐난다.

상하이증권거래소가 택배나 배달 음식 등 외래 물품에 대한 보안 검사를 강화했다는 뉴스에는 “나쁜 짓을 하고 나서 독극물이나 폭탄 테러를 당할까 봐 두려워서 그런다”는 식의 댓글이 달렸다.

한 중국인 투자자는 미국 대사관의 웨이보 공식 계정에는 “상하이증권거래소를 폭파할 미사일을 줄 수 있느냐?”는 댓글을 쓰기도 했다.

중국 증시의 성과는 중국과 시진핑의 리더십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인식도 반영한다.

지난날 전 세계 투자자는 중국 증시에 큰 관심을 보였다. 2018년 중국 A주가 신흥시장 국가를 대표하는 대형주와 중형주로 구성된 MSCI 신흥국 지수에 편입될 때 금융 업계는 “중국 증시가 전 세계와 보조를 맞추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갔다”며 환영했다.

현재 중국 증시에 대한 해외 투자자의 흥분은 사라졌다. 제로코로나 방역 정책,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시진핑의 지지는 중국에 대한 인식을 손상했다. 시진핑 정권이 부동산 시장 위기를 방치함으로써 다수 투자자가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여전히 투자 유치를 원하고 있지만 외국 투자자들은 수개월째 빠른 속도로 투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올해 1월에만 20억 달러(2조6570억 원) 상당의 주식이 매도했다.

경험이 풍부한 외국인 투자자가 중국에서의 거래를 중단하는 사례도 있다. 싱가포르 헤지펀드 ‘아시아 제네시스(Asia Genesis) 자산운용’은 지난달 “회사의 매크로 펀드를 청산하고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반환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6일 중국 대표 주가지수 상하이·선전 지수(CSI 300)는 3% 이상 상승하며 1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다수 외국인 투자자는 중국 경제가 조만간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상하이에 본사를 둔 외국계 은행의 한 투자 매니저는 이코노미스트에 “앞으로 몇 주 안에 중국 증시가 안정될 것”이라면서도 “현재 상황을 개선하는 데 몇 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당국이 부동산 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계획을 내놓을 때까지 투자자의 신뢰도는 계속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