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 암살 둘러싼 논란…전직 경호원의 ‘당시 현장’ 증언

로만 발마코프(Roman Balmakov)
2023년 10월 5일 오후 6:18 업데이트: 2023년 10월 5일 오후 6:18

존 F. 케네디(JFK) 전 미국 대통령이 사망한 지 60년이 지났지만, 암살 배후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15일(현지 시간) 미국 에포크TV 시사 방송 ‘팩트 매터’는 JFK 암살 현장에 있었던 비밀경호국 요원이 최근 60년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연 것과 관련, JFK 암살 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인 워렌 위원회 보고서에 숨은 몇 가지 결점을 집중 조명했다.

앞서 같은 달 10일에는 당시 JFK 암살 현장에 있었던 폴 랜디스가 뉴욕타임스의 인터뷰에 응했다.

재클린 여사를 경호하는 임무를 배정받은 랜디스는 총격 당시 바로 근처에 있었다. 랜디스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첫 번째 총성을 듣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리무진을 보니, 케네디는 팔을 들고 있었고 분명 총에 맞은 걸로 보였다. 갑자기, 동료요원이 뒤차에서 뛰어내려 리무진으로 달려갔다. 나도 그렇게 하려 했지만 각이 나오지 않았다. 두 번째 총성은 더 크게 들렸고 마지막 세 번째 총격이 치명상으로 케네디의 머리에 맞았다. 나는 살점 파편이 튀는 걸 피하려 머리를 숙여야 했다. 대통령이 사망했음을 직감했다.”

“병원 도착 후 동료요원과 나는 제정신이 아닌 영부인을 설득해 대통령을 병원 안으로 모시게 했다. 차에서 나온 뒤 나는 피가 고인 자리에서 두 개의 총알 파편을 발견했다. 손가락으로 하나를 건드렸지만 그 자리에 두었다. 그때 짙은 색 가죽 쿠션 박음질 부분에서 온전한 총알을 하나 더 발견하고 코트 호주머니에 넣은 뒤 병원으로 향했다. 상관에게 전달해야 했지만 경황 중에 엉겁결에 케네디를 실은 들것 위에 두었다.”

이 같은 랜디스의 증언에 대해 프로그램 진행자 로만 발마코프는 “정부의 주장인 이른바 ‘마법의 탄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라고 진단했다.

60년 전 워렌 위원회에 의해 제시된 미국 정부 측 공식 입장은 “총격범은 리 하비 오스왈드 한 명뿐이었으며 그가 세 발을 발사했다”였다. 세 발 중 하나가 케네디 대통령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계속 날아가 코널리 주지사의 몸 여러 군데에 총상을 입혔다는 입장이다.

발마코프는 “워렌 위원회에 따르면, 오스왈드는 8.6초 만에 세 발을 쐈다. 세 발 중 두 번째 총알이 케네디의 등에 맞고 그의 목구멍을 통과해 당시 텍사스 주지사 존 코널리에게까지 날아갔는데 오른쪽 어깨로 들어가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오른쪽 젖꼭지로 튀어나와 손목을 관통한 후 그의 왼쪽 허벅지에 박혔다”고 위원회의 결론을 요약했다.

이에 대해 발마코프는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총격”이라고 꼬집었다. 정부 발표를 의심하는 이들이 ‘마법의 탄환’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소위 ‘마법의 탄환’ 주장의 핵심 포인트는 총알이 텍사스 주지사 존 코널리를 실은 들것에서 발견됐다는 데 근거하고 있다.

당시 수사관들이 이 같은 결론을 내린 이유는 총알이 파크랜드 메모리얼 병원으로 후송된 코널리 주지사의 들것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코널리 주지사를 옮기고 빈 들것을 이동시키는 도중에 다른 들것과 부딪쳤고, 그 과정에서 총알이 발견됐다. 이에 수사관들은 주지사의 목숨을 구하는 과정에서 그의 몸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경호요원 랜디스는 깨끗한 상태의 총알을 발견한 건 자신이었고 그건 케네디 대통령이 앉아있었던 리무진 뒷좌석에서 발견됐다고 진술했다. 랜디스는 병원에 들어갈 때 총알을 케네디 대통령 들것 곁에 두었다.

랜디스는 “지금 생각해 보면, 이송 과정에서 총알이 다른 들것으로 옮겨진 것 같다”고 추측했다.

랜디스의 증언이 중요한 이유는 운명의 날, 그 자리에 단 한 명의 총격범만 있었다는 사실에 의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마법의 탄환’이 주지사의 들것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 케네디 대통령이 앉아있다 총에 맞은 리무진 뒷자리에서 발견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암살 이후 이뤄진 조사에 따르면, 움직이는 차량에 리 하비 오스왈드가 쐈던 소총의 기종을 바탕으로 미루어 볼 때 대통령을 쏘고 재장전한 뒤 다시 쏘기엔 대단히 힘들거나 불가능할 정도의 시간이었다.

발마코프는 “코널리 주지사가 몇 초 만에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총알에 맞았다면 군중 속 어딘가에, 혹은 언덕 어딘가에 또 다른 사수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흥미로운 점은 60년이 지난 현재 2024년 대선의 주요 후보자들 가운데서 두 명의 선두주자가 당시 일어난 일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JFK 암살 관련 정부 문서는 원래 지금쯤 전부 기밀 해제가 되어야 했다. 실제 1992년 의회에서 통과된 ‘JFK 암살 사건 기록물법’에 의거, 모든 기록물은 2017년 10월까지 공개하도록 돼 있었다.

2017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문서 대부분을 기밀해제 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CIA 국장이었던 마이크 폼페오를 비롯한 정부의 압력에 의해 일부는 공개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 4년이 지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추가로 관련 기록물을 공개했지만, 역시 일부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발마코프는 “현재까지 약 99%의 기록물이 공개됐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미국 정부는 아직 남은 1%의 문서를 손에 꽉 쥐고 있는 걸로 보인다. 그 이유는 불분명하다”라고 지적했다.

몇 달 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차기 미국 대선 유세 현장에서 “60년이 지났고, 미국민들이 진실을 알 때가 됐다”면서 “백악관에 복귀하면, JFK 암살 관련 모든 문서를 기밀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서가 일으킬 파장에 대해 또 다른 2024년 대선 유력 후보이자 JFK의 사촌이기도 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최근 “(JFK 암살에 대해) CIA가 개입했고 은폐하고 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합리적 의심을 넘은 수준이라고 본다”고 발언했다.

최근 기밀해제된 문서에 따르면, 암살이 있기 몇 달 전부터 미국 정보부에서는 리 하비 오스왈드를 계속 도청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소련 대사관에 있는 사진을 찍고 그의 사적인 전화 통화를 녹음하기까지 했다. J. 에드거 후버가 FBI 국장 자격으로 공식적으로 남긴 메모도 있다.

암살 3주 전, 리 하비 오스왈드는 멕시코시티에서 JFK를 암살하겠다고 위협했다. 실제 암살은 3주 뒤 댈러스에서 일어났다.

발마코프는 아래 질문을 던지며 해당 방송을 마무리했다.

“과연 총격범이 한 명뿐이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몇 명이 더 있었을지 모른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CIA가 어떻게든 사건에 연루돼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암살 위협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정보기관의 실패였을까요? 아니면 뒤에서 꼭두각시를 조종하고 있었던 걸까요? CIA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나머지 파일을 공개하지 못하게 압력을 행사한 건 어떻게 보십니까? 현실적으로, 60년이 지난 지금 사건에 관여한 이들  중 대부분은 사망했거나 90대 연령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머지 1%를 숨기고 있을까요?”

*황효정 기자가 이 영상기사의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