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략적 승리? 미 대법원, ‘대통령 면책특권’ 적용 가능성 시사

샘 도먼
2024년 04월 30일 오후 6:04 업데이트: 2024년 04월 30일 오후 8:38

대법원 “면책특권 없으면 향후 정치적 형사기소 남발 우려”
‘대통령 면책특권 기준’ 마련해 하급심 환송 전망
진보성향 대법관은 “면책특권 안돼 ” 반대 입장
사건 환송시 형사기소 재판 줄연기 불가피…대선 이후로 밀릴 듯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일정 수준의 면책특권은 적용 가능할 수도 있다는 전향적인 해석이 나왔다.

이는 임기 중 적용된 혐의에 관해 “절대적 면책특권”을 요구하던 트럼프 측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던 기존 입장에서 약간 누그러진 것이다.

지난 26일(현지 시각) 연방대법원에서 진행된 면책특권 심리 구두변론에서 보수 성향 대법관들은 사건을 워싱턴 연방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할 준비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면책특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는 상고심에서 심리하는 법률심이 아닌 사실심인 하급심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급심으로 사건이 환송되면서 재판이 지연되면 그 여파로 조지아, 플로리다, 뉴욕주에서 진행되는 다른 소송들까지 지연될 가능성이 커진다. 11월 대선 이후로 소송을 지연시키려는 트럼프 측 전략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이날 쟁점은 전직 대통령이 기소 면제를 받을 수 있는지, 또한 공무 수행과 사적 행위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였다.

트럼프 측 변호인 D. 존 사우어 변호사와 잭 스미스 특검 측 대리인 마이클 드리벤 전 법무부 부차관은 3시간 가까이 변론을 이어가며 팽팽한 대결을 벌였다. 원고와 피고 측은 물론 대법관들 사이, 대법관과 양측 대리인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통상 1시간여 이뤄지는 구두변론이 이렇게 길어진 것은 트럼프의 면책특권이 인정될 경우, 지난 2021년 1월 6일 의사당 난입사건 등 대통령 재임 기간 제기된 특검 기소가 모두 기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성향의 클라렌스 토마스 대법관은 이날 사우어 변호사에게 면책특권의 개념이 헌법의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정확히 짚어달라고 요청하며 심리를 시작했다.

사우어 변호사는 대통령에게 행정권을 부여하는 연방헌법 본문 제2조의 행정권 부여 조항을 언급했다.

이후 대법관들은 대통령이 면책특권을 받을 수 있는 ‘공무 수행’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시간을 들여 논쟁했다.

트럼프 측 변호사 VS 진보·보수성향 대법관들

진보성향 케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대통령이 사적 행위(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의 경우에도 면책특권이 적용되느냐”고 물었다.

또한 그녀는 만약 임기 중 행위에 대한 면책이 전직 대통령에게까지 적용될 경우 워터게이트사건으로 하야한 리처드 닉슨이 왜 대통령 사면을 받아야 했느냐고 따졌다.

사우어 변호사는 “닉슨 대통령이 저지른 행위는 사적 행위이기 때문”이라며 자신이 주장하는 광범위한 대통령 면책특권의 근거로 ‘미시시피주 대 존슨(Mississippi v. Johnson)’과 ‘마버리 대 매디슨(Marbury v. Madison)’ 판결을 근거로 들었다.

두 판례에서는 입법부와 행정부 행위의 합헌성은 연방대법원만이 가릴 수 있으며,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헌법에 따라 사법부가 관여할 수 있는 기속행위와 달리 사법부에서 관여할 수 없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인정했다.

사우어 변호사는 진보성향 엘레나 케이건,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과도 논쟁을 벌였다. 헌법에 대통령의 면책특권이 명시되지 않은 이유가 주된 쟁점이 됐다.

케이건 대법관은 “미국의 건국자들이 군주제에 반대했고 면책특권이 사실상 군주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대통령의 면책특권에 “지나치게 근본적으로 사악한 요소들”이 있다며 대통령이 암살 명령을 내릴 경우를 예로 들어 대통령이 법의 충실한 집행자인 동시에 범법자라는 개념의 불합리성을 언급했다.

이는 앞서 항소심에서도 나온 사례다. CNN 보도에 따르면 항소심에서는 미 해군 특전단 네이비 씰의 6팀(SEAL TEAM 6) 암살작전명령에 관한 법적 공방이 펼쳐졌다.

만약 대통령이 네이비 씰에 자신의 정적 암살 작전을 명령한다면, 현행 제도에 따를 경우 상하 양원에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고 대법원에서 가결 판결까지 받아야만 대통령 형사기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미국 대통령 면책특권은 이를 무력화할 절차가 너무 복잡해,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게 진보성향 판사들의 비판 논리였다.

이 밖에도 대통령이 핵 기밀을 외국에 넘기거나 쿠데타를 일으켜도 면책특권이 유지되는지에 관해서도 대법관들은 질문했다.

트럼프 측 사우어 변호사는 암살작전명령이 공무 수행일 수는 있으나 대통령의 의도를 따져보는 일이 필요하며, 대통령의 의도를 가늠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탄핵에 관련된 문제이며 면책특권 심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반박했다.

사우어 변호사는 또한 핵 기밀, 쿠테타에 관한 대법관 질의에도 “대통령의 공무 수행에 관한 형사소추는 의회의 탄핵소추안 가결과 연방대법원의 탄핵가결 판결로 가릴 문제”라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보수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이러한 반박에 약간의 동의를 나타내면서도 ‘대통령 퇴임 이후에야 임기 중 공무상 범죄 행위가 발각될 가능성’에 대해 염려를 덧붙였다.

이에 사우어 변호사는 “미국의 건국자들 역시 당초 이러한 위험성, 즉 국가가 삼권분립 체제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잘못을 바로잡을 수는 없음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평소 ‘행정국가론'(삼권 중 행정부의 권한이 강한 국가)을 지지해온 보수성향 브랫 캐버노 대법관은 사우어 변호사의 입장을 옹호하는 듯했다.

캐버노 대법관은 면책특권이 대통령을 법 위에 두려는 것은 아니라며 ‘공무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를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또한 스미스 특검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미국을 기만하기 위한 음모’라는 기소 사유가 명확하지 않은 기준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추후 악용될 소지가 있음을 언급했다.

특검 측 대리인 VS 보수성향 대법관들

이어진 구두변론에서는 대통령의 면책특권에 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떻게 확립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이뤄졌다.

트럼프 측은 공무 수행은 물론 사적 행위까지 절대적 면책특권을 주장했다.

반면, 특검 측 드리벤 전 법무부 부차관은 범죄에 연루됐다면 공무 수행에서도 면책특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드리벤 전 부차관은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전직 대통령에 대해 형사 기소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냐”는 보수성향 토마스 대법관의 질문에는 “이전 대통령들은 범죄 연루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보수성향의 대법관인 새뮤얼 알리토는 드리벤 전 부차관의 주장에 관해 “법률 해석의 오인으로 인한 것”이라며 원활한 직무 수행을 보장하기 위해 대통령에게는 일반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드리벤 전 부차관은 동의를 나타내면서도 ‘심각한 헌법적 문제를 피하려면 법원은 대통령에게도 일반적인 법 적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로 응수했다.

앞서 하급심에서 판사들은 재임 중 공무 수행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형사기소를 당했다면 전직 대통령은 면책특권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보수성향 대법관 중에서도 중도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이러한 하급심 판결들에 대해 우려된다”고 말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검사 입장에서는 대배심을 통해 공소를 제기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며 “따라서 면책특권이 없다면 대통령을 겨냥한 정치적 기소가 매우 쉽게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드리벤 전 부차관은 “헌법은 그러한 유형의 사건을 배제하고 있다”며 “정치적 기소는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알리토 대법관은 “법무부 소속 검사 대다수는 윤리적”이라면서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면책특권,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나

면책특권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의원, 정부관리 등 공직자들이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그러나 미국 수정헌법에서는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의 면책특권에 관한 명시적인 조항이 없어 종종 논란이 돼 왔고, 사상 초유의 전직 대통령 형사 기소 사건을 계기로 그에 관한 논쟁이 촉발됐다.

미국 법조계 전문가들은 에포크타임스에 “이번 사건을 통해 대법원이 대통령 면책특권의 범위에 형사책임을 포함할 가능성이 높다”며 “트럼프가 요구한 것보다는 제한적인 범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통령 면책특권 범위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면, 이에 따라 사실심이 다시 심리돼야 한다. 즉 사건은 다시 항소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대선 결과에 관한 트럼프의 문제 제기로 촉발된 이번 사건은 미국의 대통령제와 삼권분립이라는 국가 체제 자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형사 변호사인 키스 존슨은 본지에 “(트럼프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회자되는 판결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학생들은 이 판결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면책특권에 관한 대법원의 가장 최근 주요 판례는 ‘닉슨 대 피츠제럴드’ 사건(1973년)이다. 당시 대법원은 대통령이 임기 중 공무 외적인 영역에 속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민사상 책임으로부터 절대적인 면책을 받는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