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단통법 전면 폐지…“통신사 비용 증가 크지 않을 것” 증권가 전망

황효정
2024년 01월 23일 오후 3:56 업데이트: 2024년 01월 23일 오후 10:58

정부가 일명 ‘단통법’을 전면 폐지하기로 하면서 앞으로 휴대전화 단말기 지원금 상한 제도가 없어질 예정인 가운데, 증권가가 “단통법 전면 폐지가 추진돼도 이동통신사들의 비용 부담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진행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 생활 규제 개혁’에 관한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말기유통법·단통법)’ 폐지 계획이 발표됐다.

이날 정부는 “통신사, 유통점 간 자유로운 지원금 경쟁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국민들이 저렴하게 휴대전화 단말을 구입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단통법을 폐지한다”며 가계 통신비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단말기 유통법은 앞서 지난 2014년 서비스·요금 경쟁을 유도하는 목적으로 제정됐다. 그러나 법 시행 후 오히려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보조금 경쟁이 위축되면서 국민이 단말기를 저렴하게 살 기회가 제한됐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상인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은 단통법 시행 직후인 2014년 1조6000억 원이었던 이통 3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2020년 3조5000억 원을 넘었다는 점을 들어 “(단통법이) 서비스 증진이나 요금 인하에 반영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로써 단통법은 10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그동안 유통점에서 단말기 공시지원금의 최대 15%를 지원하던 기존 상한선이 없어지면 소비자들이 저렴하게 휴대전화기를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또 단통법을 폐지하더라도 통신비 절감 혜택을 주는 선택약정 할인제도는 유지하기로 했다.

앞으로 정부는 단통법 폐지를 위해 국회와 논의하는 동시에 소비자, 관련 업계, 전문가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구체적인 내용을 정할 방침이다. 이 부위원장은 “오늘 토론회에서 학생, 주부, 휴대전화 판매업자 등 각계각층의 참석자들이 문제점을 토로하며 제도 개선에 기대감을 보였다”고 귀띔했다.

지난 22일 서울 시내 전자상가 휴대폰 판매점에 붙은 이동통신 3사 로고|연합뉴스

증권가는 단통법이 전면 폐지된다 하더라도 이동통신사들의 마케팅 비용 부담이 커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23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NH투자증권 안재민 연구원은 “이번 정책으로 통신사의 마케팅 비용이 일부 증가할 수는 있겠지만 그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근거로 안 연구원은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휴대전화를 통신사의 대리점이 아닌 삼성스토어, 애플스토어 같은 가두점이나 네이버, 쿠팡, 11번가와 같은 이(e)커머스 사이트에서 구매하는 비중이 늘었다”며 “아울러 스마트폰 사양의 상향 평준화로 단말기 교체 수요가 줄어 통신사의 마케팅 비용이 상당히 안정화됐다”고 분석했다.

안 연구원은 “단말 시장의 경쟁이 안정화됐고 5G 보급률도 70%에 육박했으며 통신 3사 간의 경쟁보다는 알뜰폰 사업자(MVNO) 가입자로의 이탈이 더 많아진 상황이라 통신 3사 간의 경쟁이 벌어질 확률은 낮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일부 플래그십 단말기 출시 시점을 전후로 마케팅 비용이 상승할 수는 있어도 전체 마케팅 비용은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며 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했다.

KB투자증권 김준섭 연구원 또한 “스마트폰 시장이 고가의 프리미엄 모델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통신사의 보조금 집행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단통법 폐지에 따른 통신사들의 부담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 연구원은 “(일례로) 단통법 도입 직전인 2014년 출시됐던 갤럭시S5의 출고가는 당시 86만8000원으로, 현재 플래그십 단말기는 당시보다 약 42~78% 비싼 수준”이라며 “통신사들이 예전처럼 공짜 단말기 프로모션 전략을 집행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통신사들이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및 빅데이터 솔루션을 공격적으로 도입하면서 과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집행하던 보조금 전략이 아니라, 수익성 높은 일부 고객에게 보조금 및 프로모션을 적용하는 전략으로 고도화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정부는 지원금 공시 의무 폐지로 인해 통신 시장이 다시 혼탁해질 여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안도 모색 중에 있다. 이 부위원장은 “과도한 출혈 경쟁, 이용자 차별 행위는 전기통신사업법으로 규제가 가능하다. 정부는 시장 모니터링을 더욱 강화하고 불공정 행위에 대해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다만 21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정확히 어느 시일 안에 단통법 폐지를 처리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 실장은 “지금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언제라고 말씀드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