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밀레이 아르헨 대통령 “사회주의로 인한 서구 몰락” 연설

한동훈
2024년 01월 24일 오후 6:37 업데이트: 2024년 01월 24일 오후 6:37

파격적인 개혁안을 추진해 논란 속에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고 있는 아르헨티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다보스 포럼 연설에 대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스페인어로 이뤄진 밀레이 대통령의 연설을 실시간 영어로 통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개된 후 5일째인 현재까지 그의 연설 영상은 3600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다수 언론이 ‘극우’,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는 프레임에 갇힌 채, 과거 아르헨티나를 괴롭혀 온 포퓰리즘 정책의 멍에를 벗어던지려는 밀레이 대통령의 생각과 국정 방향을 정확히 알리는 일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다보스 회의에 참석한 밀레이 대통령은 최근 “서방 국가에서 사회주의가 만연해 사람들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며 정부 권한의 확대에 위기감을 드러내며 “독재 체제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경제학자 출신답게 숫자와 팩트를 조목조목 근거로 제시했다. 다보스 포럼 참석을 위해 단단히 준비하고 나온 모양새였다.

19세기 말 자유롭고 부강한 국가였던 아르헨티나의 몰락과 재기의 몸부림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없을까? 그동안 밀레이 대통령의 연설을 부분적으로 소개하는 보도들이 이어졌지만, 에포크타임스는 더 심도 있는 통찰을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밀레이 대통령의 연설 전문을 지면으로 소개한다.

이하 밀레이 대통령의 지난 17일(현지 시각) 다보스 포럼 연설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 저는 서방세계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서구의 가치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 사회주의, 나아가 빈곤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세계관에 동조하면서 위험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서방세계의 주요 지도자들은 ‘자유의 모델(the model of freedom)’을 포기하고 집단주의로 통칭되는 다른 버전의 자유를 추구해 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선의가 동기가 됐고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특권층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움직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집단주의적 실험이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여러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여러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 두 가지에 관한 증인으로서 우리 아르헨티나인들보다 더 나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1860년 아르헨티나에 자유의 모델을 도입한 이후 우리는 35년 만에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 됐습니다. 그리고 지난 100년 동안 집단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시민들은 구조적으로 빈곤해졌고 아르헨티나는 세계 140위까지 떨어졌습니다.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자유 기업 자본주의가 세계 빈곤을 종식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유일한 체제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이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경제가 발전해 온 역사를 살펴보면, 대략 서기 1세기부터 서기 1800년까지 전 세계 1인당 GDP는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경제 성장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하키스틱 그래프(하키스틱을 눕혀 놓은 것처럼 후반부에 급상승하는 그래프)를 볼 수 있습니다. 시간 축을 기준으로 보면 그래프의 90%는 거의 변화가 없다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체된 역사에서 유일한 예외는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15세기 후반입니다. 이 예외를 제외하면 서기 1년에서 서기 1800년까지 전 세계 1인당 GDP는 정체돼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자본주의가 경제체제로 채택된 순간부터 부(富)의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보면 해당 기간에 전반적으로 성장 속도가 계속 빨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기 1년에서 서기 1800년까지 1인당 GDP 성장률은 매년 0.02% 안팎으로 안정적이었습니다. 거의 성장하지 않은 셈이죠. 산업혁명이 시작된 19세기 이후 연평균 성장률은 0.66%이었는데, 이는 1인당 GDP를 두 배로 늘리는 데에 약 107년이 걸린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1900년부터 1950년 사이 (경제) 성장률이 연 1.66%로 가속화됐습니다. 따라서 1인당 GDP를 두 배로 늘리는 데 필요한 기간은 107년이 아니라 66년이 됐습니다. 그리고 1950년부터 2000년 사이의 성장률은 2.1%였는데, 전 세계 1인당 GDP가 두 배로 늘어나는 기간이 33년으로 단축됐다는 뜻입니다.

이 추세는 멈추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00년부터 2023년 사이 성장률은 연 3%로 빨라져, 23년 만에 세계 1인당 GDP의 두 배로 늘릴 수 있게 됐습니다.

즉, 1800년부터 오늘날까지, 즉 산업혁명 이후 세계 1인당 GDP는 15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세계 인구의 90%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호황을 맞게 된 겁니다.

1800년까지만 해도 전 세계 인구의 약 95%가 극빈층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 수치는 팬데믹 이전인 2020년에는 5%까지 감소했습니다.

이 모든 것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경제 시스템으로서의 자유무역 자본주의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기아, 빈곤, 극빈을 종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실증적 증거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자유기업 자본주의가 생산성 측면에서 우수하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렇다 보니 좌파는 자본주의에 ‘도덕적 문제가 있다’며 공격해 왔으며, 비방하는 측의 주장대로 ‘자본주의가 불공정하다’는 겁니다. 자본주의는 개인주의이기 때문에 악이고, 집단주의는 이타적이기 때문에 선이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물론 남의 돈으로 말이죠.

그래서 그들은 사회정의(social justice)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선진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이 개념은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미 80여 년 전부터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정의가 정의롭지 않으며, 일반적 행복(general well-being, 일반 사람들의 삶의 질)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그것은 폭력적입니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불공정한 사고방식입니다. 국가는 세금으로 운영되고, 세금은 강제로 징수되기 때문에 불공평합니다. 우리 중 누가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국가는 강제력에 의해 운영되는 것입니다. 세금 부담이 높을수록 강제력이 커지고 자유가 줄어든다는 의미입니다.

사회정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제 전체가 하나의 파이이며, 이를 각각 나눠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그 파이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예를 들어 경제학자 이스라엘 카즈너가 시장 발견 과정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만들어지는 부(富)입니다.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의 수요에 맞지 않는다면, 시장의 수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실패할 것입니다. 반면,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매력적인 가격에 제공할 수 있다면 기업은 잘될 것이고 생산량도 늘어날 겁니다. 시장은 자본가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올바른 길을 찾는 발견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자본가가 성공했을 때, 국가가 징벌을 가하고 발견의 과정을 방해한다면 자본가의 인센티브는 사라지고 그 결과 생산량은 줄어들게 됩니다.

파이가 작아지고 이는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겁니다. 집단주의는 이러한 발견의 과정을 방해하고 발견의 활용을 방해함으로써, 결국 기업가의 손발을 묶어 더 나은 상품과 서비스를 더 좋은 가격에 제공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세계 인구의 90%를 극빈층에서 벗어나고 하고, 나아가 더 빨리 빈곤을 퇴치한 경제 시스템을 왜 학계와 국제기구, 경제 이론가들과 정치인들은 악마화하는 것일까요?

자유 무역 자본주의 덕분에 세계는 지금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오늘날처럼 번영한 시대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더 자유롭고 더 풍요롭고 더 평화롭고 더 번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 자유가 확대되고 개인의 재산권이 존중되는 국가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자유도가 높은 국가들의 부유함은 (자유가) 억압된 국가들의 12배에 달합니다. 자유 국가의 최하위 백분위수(에 있는 사람들)는 억압된 국가의 90% 사람들보다 더 부유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빈곤은 25배 낮고, 극빈은 50배 낮습니다. 또한 자유 국가의 국민들은 억압받는 국가의 국민들보다 25%나 더 오래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자유에 관한 한 아르헨티나의 최고 권위자인 알베르토 베네가스 린치 주니어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 “자유지상주의는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권리를 옹호하고, 비침략의 원칙에 따라 타인의 삶의 프로젝트를 제한 없이 존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유지상주의의 기본 제도는 사유재산, 국가의 개입이 없는 시장, 자유경쟁, 분업과 사회적 협력이며, 이 제도하에서는 성공하려면 타인에게 더 좋은 품질의 상품을 더 좋은 가격으로 제공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에서 성공한 기업인은 남의 부를 가로채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삶의 질에 기여하는 사회적 후원자입니다. 궁극적 의미에서, 성공한 기업가는 영웅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미래의 아르헨티나를 위해 제안하는 모델이며, 자유지상주의 기본 원칙에 기반한 모델입니다.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산의 수호입니다.

이제 자유로운 기업과 자본주의, 경제적 자유가 세계 빈곤을 없애기 위한 탁월한 수단임이 입증됐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서구 사회가 위기에 처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유시장, 사유재산, 그 밖의 자유지상주의 제도 등과 같은 가치가 지켜져야 할 국가들에서 일부 정치-경제 엘리트들이 자유지상주의의 기반을 훼손하고 사회주의의 문을 열어 우리를 빈곤, 비참함, 침체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는 항상 빈곤을 가져오고, 사회주의를 도입한 나라들은 모두 실패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1억 명 이상의 인명을 앗아갔습니다.

오늘날 서구의 본질적인 문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압도적인 경험적 증거가 제시된 이후에도 여전히 빈곤을 초래하는 사회주의 사상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부와 번영을 가져다 준 체제의 근간을 훼손하려는 지도자, 사상가, 학자들까지 있습니다. 잘못된 이론적 틀(framework)에 의존한 채 말입니다.

제가 말하는 이론적 틀이란 신고전파 경제학인데, 의도적으로 혹은 의도치 않게 결국 국가의 개입, 사회주의, 사회 악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수단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신고전파의 문제점은 그들이 애착을 가진 모델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모델의 전제를 재검토하는 대신 ‘시장의 실패’로 보이는 것에 자신들의 잘못을 뒤집어씌웁니다.

시장의 실패를 핑계로 규제를 도입하고, 이러한 규제는 가격 시스템을 왜곡시키고 경제 계산을 방해해 저축, 투자, 성장을 방해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유지상주의 경제학자들조차도 시장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들이 시장을 이해한다면 시장의 실패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시장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곡선을 그린 그래프가 아닙니다. 시장은 자발적으로 소유권을 교환하는 사회적 협력의 메커니즘입니다. 따라서 이 정의에 따르면 시장의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시장의 실패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래가 자발적이라면 시장의 실패가 발생할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은 강제성이 있는 때뿐인데, 일반적으로 강제성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은 폭력(공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뿐입니다.

시장의 실패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국가의 개입이 있는지 확인해 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만약 국가의 개입이 없었다면 분명히 실수가 있었을 것이므로 재차 확인해 볼 것을 권합니다. 시장의 실패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고전파가 말하는 소위 시장의 실패 사례로 경제의 집중화 구조를 들 수 있습니다. 1800년 이후 인구가 8~9배 증가하면서 1인당 GDP가 15배 이상 성장했고, 이에 따라 극빈층이 95%에서 5%로 감소하는 등 수익률이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수익률의 증가에는 이른바 독과점이라는 집중화 구조가 수반합니다. 그렇다면 신고전학파 이론에서는 그토록 많은 행복(well-being)을 가져다 준 것이 왜 시장의 실패일까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상식을 벗어난 사고를 하기 때문입니다. 모델이 실패하면 현실에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모델을 바꿔야 하는 게 순리이지만, 신고전학파 모델이 직면한 딜레마는 자신들이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현실)을 공격함으로써 시장의 기능을 완전하게 만들고자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사회주의로 가는 문을 열게 될 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에도 역행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독과점 기업을 규제하고 그 이윤을 파괴하고 수익률 증가를 파괴하면 경제 성장은 자동적으로 파괴됩니다.

그러나 국가 개입이 해롭다는 이론적 증명과 실패했다는 경험적 증거가 명백한 상황에서 집단주의자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더 큰 자유가 아니라 더 큰 규제였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더 가난해지고 고급 사무실에 앉은 관료들에게 의지하는 삶이 될 때까지 규제의 하향 소용돌이를 일으킬 것입니다.

집단주의 모델의 처참한 실패와 자유세계의 부인할 수 없는 발전을 목격하면서,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의 의제를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경제체제에 기반한 계급투쟁을 버리고, 생활과 경제 성장에 해롭기는 마찬가지인 다른 사회적 갈등으로 대체했습니다.

이 새로운 투쟁의 첫 번째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우스꽝스럽고 부자연스러운 투쟁이었습니다. 자유지상주의는 이미 남녀 평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념의 초석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됐으며 생명, 자유, 소유권을 포함해 창조주가 부여한 동일한 불가침의 권리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급진적 페미니즘 의제가 가져온 결과는 국가 개입의 확대입니다. 그것은 경제 과정을 방해하고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관료들에게 일자리를 줄 뿐입니다. 이 의제를 추진하는 데 전념하는 여성부나 국제기구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이 내밀고 있는 또 다른 갈등은 인간과 자연의 대립입니다. 그들은 인류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보호해야 할 지구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인구 통제 메커니즘과 낙태 의제를 옹호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해로운 사상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은 서구 세계의 상식을 끌어들이고 이를 이용해 언론, 문화, 대학, 국제기구 등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국제기구에 대한 침투가 가장 심각한데, 아마도 이 기관들이 회원국의 정치-경제적 결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담하게 맞서서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고방식에 단호히 맞서지 않으면 국가의 규제가 강화되고, 사회주의가 진행되고, 빈곤과 자유가 줄어들고, 그 결과 생활 수준이 점점 더 악화되는 운명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서방 국가들은 안타깝게도 이미 이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서방 국가들이 사회주의로 기울어졌다는 말이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 있겠지만,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한다는 전통적인 경제학의 사회주의 정의를 고수한다면, 이 이야기는 확실히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대한 정의는 현재 상황에 비춰 업데이트돼야 합니다.

오늘날 국가는 생산수단을 직접 통제하지 않고도 개인의 삶의 모든 측면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화폐 발행, 부채, 보조금, 금리 조정, 가격 통제, 그리고 소위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기 위한 규제 같은 도구들을 통해 국가는 수백만 명의 개인의 삶과 운명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서구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데올로기 중 상당수는 다른 이름이나 간판을 사용합니다. 공산주의, 파시스트,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국가사회주의, 기독교민주주의, 신케인즈주의, 진보주의, 포퓰리스트, 민족주의 또는 세계주의를 공개적으로 표방하는데 모두 집단주의 변종에 해당합니다.

결국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국가가 개인의 삶의 모든 측면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모두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발전을 가져온 모델을 외면하고, 정반대의 것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방 국가들에게 번영의 길을 되찾을 것을 촉구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경제적 자유, 제한된 정부, 사유재산에 대한 무한한 존중은 경제 성장에 필수 요소입니다. 집단주의가 만들어내는 빈곤화는 환상도 아니고, 피할 수 없는 운명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현실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우리를 풍요롭게 해준 자유의 모델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날부터 우리는 나날이 더 가난해지고 가난해지는 하향의 나선형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겪은 일입니다. 자유의 모델로 부자가 된 서방 국가들이 노예의 길을 계속 걷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경고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아무리 부유하든, 천연자원이 풍부하든, 교육받은 숙련된 국민이 있든, 중앙은행에 아무리 많은 금괴가 있든, 시장과 경쟁, 가격 시스템, 무역, 사유재산 소유의 자유와 같은 기능을 방해하는 조치가 취해지면 결국은 빈곤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아르헨티나의 사례는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자리에 모인 모든 기업가와 이 자리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전 세계에서 지켜보고 계신 분들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싶습니다.

정치적 카스트 계급들, 국가에 달라붙은 기생충들 따위의 위협을 받지 마십시오. 권력과 특권 유지만을 원하는 정치 계급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사회에 혜택을 주는 사람들이며 영웅입니다. 여러분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번영의 시대를 창조한 사람들입니다.

누구도 당신의 야망이 부도덕하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당신이 큰돈을 벌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더 좋은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그로 인해 일반 사람들의 삶의 질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진전에 몸을 맡겨서는 안 됩니다. 국가는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입니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여러분입니다. 안심하십시오. 단언컨대, 오늘부터 아르헨티나는 여러분들의 굳건하고 조건 없는 동맹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유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