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헝다그룹 회장 체포, 中 고속성장 시대의 종언

강우찬
2023년 10월 16일 오전 11:55 업데이트: 2023년 10월 16일 오후 2:33

쉬자인 체포…부동산 개발에 의존한 고속성장모델 한계
“헝다, 美서 파산보호 신청은 해외 도피자산 보호 의도”

中 부동산 개발업체 수낙차이나도 뉴욕서 파산보호 신청

지난달 말 중국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 쉬자인(許家印) 회장이 경찰에 체포됐다.

그룹 측은 홍콩 증권거래소 공지를 통해 “쉬자인 회장이 법률 위반 혐의로 법에 따라 강제 조치됐다”고 발표했다. 강제 조치는 수사나 재판을 위해 피고인 등을 구금하는 것을 가리킨다.

쉬자인 회장의 체포 소식은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사건의 정확한 의미를 분석하는 보도는 드물었다. 이하 에포크타임스 중국 문제 전문가들의 견해를 정리했다.

멍쥔 “헝다 파산은 ‘중국 부동산 시대’의 종말”

중국 출신 사업가로 미국에 거주하는 평론가 멍쥔은 “쉬자인 회장을 포함한 회사 전직 간부, 일부 직원들의 체포는 부동산 개발을 중심으로 국내총생산(GDP) 끌어올리기 정책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멍쥔은 “중국의 부동산은 정상적으로 발전하는 산업이 아니라 GDP를 견인하는 수단이었다”며 “부동산은 철강, 시멘트, 목재 같은 자재뿐만 아니라 운송, 가전, 인테리어 등 많은 산업을 이끄는 분야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이렇게 중요한 부동산 산업을 제대로 관리하고 건전하게 발전시키지 못했다. 부동산 산업은 권력자들이 부정하게 재산을 축적하고 자산을 현금화하는 창구로 악용됐다”고 지적했다.

멍쥔은 또한 “쉬자인 회장은 이런 권력자들의 부패를 옆에서 도우면서 권력의 비호를 받게 되자 갈수록 대담해졌고 결국 돌아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동산 산업을 통한 GDP 견인, 그 과정에서 권력자들의 비리 등을 “부동산 시대”라고 칭한 멍쥔은 “이제 이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며 “위기는 쉬자인 회장과 헝다그룹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융창중국(영문명 수낙차이나), 비구이위안, 위안양그룹, 국영기업 화룬창업도 비슷한 결말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중 최근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것은 올해 7월 말 선전증시 A주에서 상장폐지된 대형 부동산 기업 타이허 그룹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연간 수천억 원대 적자를 기록하던 타이허그룹은 지난해 말 177억 1100만 위안(3조 92억원) 규모의 부채를 기록했다. 이후 채권단과 채무조정 협상에 들어갔으나 부동산 경기 침체가 맞물리면서 올해 5월부터 20거래일 연속 일일 종가 1위안 미만을 기록하면서 규정에 따라 상장폐지됐다.

하지만 최근 중국 언론에선 타이허 그룹에 대한 뉴스가 뜸하다. 이를 두고 멍쥔은 “베이징의 지인에 따르면 당국에 의해 타이허 관련 언론 보도가 금지됐다”며 “시장을 동요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궈쥔 “부동산은 중국 경제의 마지막 버팀목”

에포크타임스 중문판 편집장 궈쥔은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의 경제발전은 부동산, 인터넷(정보통신), 수출입 등 세 가지 산업에 의존해 왔다. 인터넷 산업은 규제로 주저앉았고, 수출입은 올해 급감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부동산 산업이 유일한 버팀목”이라고 진단했다.

궈쥔은 “이러한 상황에서 쉬자인 회장의 체포는 두 가지 시사점을 준다. 하나는 부동산 산업이 더는 과거와 같은 형태의 마구잡이식 개발에 의존한 성장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쉬자인 회장의 체포는 이런 형태의 사업방식을 구사하는 기업가를 당국이 제재하겠다는 명확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다른 하나는 위안화 가치의 하락이다. 당국은 사실상 부동산 시대에 종언을 고했다. 경기 침체 속에서 중국 경제의 활력을 되돌릴 요소들이 모두 가라앉았다. 중국 경제의 고속성장은 이제 더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연중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위안화 가치를 올릴 요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궈쥔은 “최근 홍콩을 통해 중국 자본이 대거 유출되는 정황이 포착됐다. 과거 잘나가던 중남미 부국들이 몰락한 전철을 뒤따르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스산 “외국 투자자들 대중 신뢰 급락할 것”

에포크타임스 중문판 주필 스산은 헝다사태가 일시적으로 해외 채권 문제를 늦출 순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중국 정부와 기업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의 신뢰를 악화시키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으로 예측했다.

스산은 “중국에는 또 하나의 큰 문제가 존재하는데, 바로 기업의 해외 부채, 특히 달러화 채권 문제다. 예를 들어 헝다는 현재 약 3050억 달러(약 412조원)의 부채 중 360억 달러(약 48조원)가 넘는 해외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 미국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헝다그룹은 지난 8월 미국에 파산보호(챕터 15)를 신청했다. ‘챕터15’는 다국적 기업의 회생을 위해 부채 구조조정을 하는 동안 채권자들로부터 미국 내 자산을 보호하는 규정이다.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헝다의 해외 자산에 대한 모든 소송이 중지되고 채권자 압류가 불가능해진다.

이를 두고 해외 언론들은 헝다그룹이 채무 변제 시간을 확보하려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풀이했다. 해외 자산을 이용해 해외 채무를 우선 변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국 공산당(중공) 당국은 기업 파산 시 채무 변제 과정에서 자국 은행 채권부터 우선 회수한다. 해외 채권자는 후순위로 밀린다. 파산보호로 해외 투자자 소송도 막을 수 있지만, 해외 자산을 회수하려는 중공 당국의 접근도 차단할 수 있다는 게 스산의 설명이다.

스산은 “헝다의 파산은 거의 기정사실이다. 쉬자인 회장은 해외로 빼돌린 자산을 지키려 한다. 중국 부동산 기업들은 거액의 자산을 해외로 빼돌려 왔다. 해외 자산을 두고 중공 당국과 쉬자인 회장 사이에서 쟁탈전이 벌어지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해외 채권자들의 권익이 얼마나 보호될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해외 투자자들의 중국 경제에 대한 신뢰 저하를 일으켜, 향후 중국 정부나 기업이 해외에서 달러화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려 하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 대책, 파벌 간 분쟁으로 효과 못 내”

헝다그룹은 2021년 9월 만기채권의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면서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가 시작됐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최종적인 파산 처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사이 헝다가 부채를 완전히 상환하지도 못했다.

멍쥔은 “시진핑 주석이 쉬자인 회장에게 2년의 시간을 준 것은 선분양한 아파트들을 모두 완공하라는 것이었다. 지금 중국에서는 선분양받은 아파트 공사가 중단돼 입주하지 못한 주민들의 불만 시위가 폭동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쉬자인 회장은 지난 2년간 뭘했나?”라고 자문한 멍쥔은 “자산을 해외로 빼돌리며 달아날 궁리만 했다. 파산보호 신청을 미국 법원에 낸 것도 해외 자산을 지키겠다는 의도다. 격분한 중공 당국은 경제적 파장을 무릅쓰고 쉬자인 회장을 체포했다”고 자답했다.

멍쥔은 “헝다가 파산보호를 신청하자, 한 달 만인 지난달 중순 융창중국도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며 “이들 두 회사뿐만이 아니다. 부동산 기업들 모두 해외에서 자산보호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내 자산을 채권자들로부터 지키려는 것보다는 중공 당국이 못 가져 가게 막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스산은 “중공의 인터넷 기업 규제, 부동산 기업 규제의 진짜 목적은 민영기업이 벌어놓은 자산을 가져가는 것이다. 헝다그룹은 작년 말 기준 부채가 2조4천억 위안(약 444조원)이지만, 자산총액도 1조8천억 위안(333조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또한 스산은 “중공 당국은 지난 6월 신규 보험사 ‘하이항인수(영문명 하버 라이프)’ 설립을 승인했다. 당국은 이 회사가 항다그룹 산하 보험사인 ‘에버그란데 라이프’의 모든 보험계약을 넘겨받는다고 밝혔다. 새 기업을 세워 민영기업의 자산을 인수하는 식은 중공 당국의 상투적 기업 약탈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궈쥔은 “중공 당국은 지난달 중순 시중은행의 지급준비율을 기존 7.6%에서 0.25%포인트 인하해 약 5천억 위안 유동성(약 92조원)을 시중에 공급했다. 돈을 풀어 경기부양에 나선 것이지만, 이는 헝다그룹 총부채(2조4천억 위안)의 4분의 1에 못 미친다”고 밝혔다.

아울러 “항아리에 물을 채우려면 깨진 곳부터 막는 것이 순리지만, 중공은 일단 물부터 붓는 상황”이라며 “경제의 깨진 구멍을 제대로 막을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궈쥔은 “중국의 부동산 개발사업은 권력의 뒷받침이 없인 불가능하다. 한때 1위였던 헝다 같은 기업 뒤에는 당연히 최고위층이 버티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쉬자인은 ‘2년 내 선분양한 아파트를 모두 완공하라’는 시진핑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행할 생각도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권력의 비호를 받아온 쉬자인은 아마 자신이 체포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그것이 현실이 됐다”며 “이번 사건은 헝다그룹에 관련된 모든 죄가 쉬자인과 몇몇 임직원들에게 뒤집어씌워지는 식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