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맡긴 100억 증발” 상장사 공시…中 금융범죄 기승

한동훈
2023년 11월 16일 오후 6:31 업데이트: 2023년 11월 16일 오후 6:31

기업 동의없이 은행 측이 타기업 계좌로 이체
비슷한 사건 잇따라…법원 “피해자 40% 책임”

‘은행에 맡긴 돈은 안전하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중국은 예외다. 최근 중국에서는 은행에 예치한 돈이 사라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베이징상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상하이 증시 상장기업의 자회사가 은행에 맡긴 약 6000만 위안(약 107억 원)의 예금이 몰래 다른 계좌로 이체된 사실이 알려졌다.

자오쭤항커(超卓航科)는 이달 초 “3월 말 산하 자회사가 중국 자오샹(招商)은행 난징청베이 지점에 예치한 6000만 위안 중 5995만 위안이 지난달 7일 인출됐다”고 공시했다.

이 회사가 은행 측에 문의한 결과 돌아온 답변은 “예금 계좌에 입금된 당일 은행 측이 5995만 위안을 다른 회사의 증거금 거래 계좌로 이체했다”는 것이었다.

회사 측은 공시에서 “자체 확인 결과, 자금이 이체된 회사의 임원이나 실소유주와 우리 회사는 아무런 사업적인 거래 관계가 없으며 두 회사 사이에 체결된 계약도 전혀 없다”고 완전히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자금 이체에 동의한 사실이 없고 이체를 사전에 통지받지 못했다며 사건을 난징시 공안국과 국가 금융감독관리위원회 장쑤성 지국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항공기 부품 생산 및 장비 유지관리 업체로,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과 산하 항공기 수리공장을 거래처로 두고 있다. 2022년 7월 상하이 증권거래소의 첨단기술 기업 자본조달 시장인 커촹반에 상장됐다.

시가총액은 지난 15일 종가 기준 약 39억6000만 위안(7084억 원)이지만, 현재 자오쭤항커의 자오샹 은행 계좌에 남은 잔액은 5만 위안(약 890만 원) 정도로 알려졌다.

자오샹은행은 중국 14개 상장은행 중 하나인 대형 은행이다. 아직 공안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대형 은행 지점에서 고객 예금을 허락 없이 이체한 사건은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자오쭤항커 본사 건물 앞에 회사 로고가 세워져 있다. | NTD 화면 캡처

중국 문제 전문가이자 에포크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왕허는 “동의 없이 예금을 건드렸다면 이는 틀림없는 금융 범죄”라며 “과거에도 은행 내부자가 고객 예금을 빼돌린 사건은 다수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건은 2014년 쓰촨성의 유명 바이주(白酒) 제조사인 루저우라오주(瀘州老窖)의 예금 증발 사건이다. 피해액은 무려 1억 5000만 위안(약 268억 원)으로, 중국 4대 국유은행 중 하나인 농업은행 예금이 갑자기 사라져 논란이 됐다.

문제는 그 후 은행과 법원의 대응이었다. 이 사건은 은행 간부가 외부인과 결탁해 고객 예금을 빼돌렸다는 게 밝혀졌지만 법정 공방이 수년간 이어졌다.

결국 사건 발생 후 6년이 지난 2020년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사라진 예금 중 회수에 실패한 1억3000만 위안에 대해 40%를 예금주인 루저우라오주 측이 책임지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농업은행에는 손실액 중 60%만 부담하라고 했다. 은행 내부자가 짜고 고객 예금을 횡령해도 40%는 예금주 책임이라는 것이다.

2019년에도 비슷한 사건과 판결이 있었다. 국유은행인 공상은행 난닝(南寧) 지점에서 2억5000만 위안(약 447억원)이 넘는 예금이 사라졌고, 이에 연루된 은행 간부에게는 2021년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그러나 예금주들은 피해액의 약 절반을 돌려받지 못했다.

당시 법원은 “은행 측에는 어떠한 배상 책임도 없다”고 판결했다. 횡령을 저지른 은행 간부를 처벌하면서도 은행에는 면죄부를 준 것이다.

다수 예금주들은 어쩔 수 없이 피해액의 일부만 돌려받는 대신 더는 은행 측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해야 했다.

왕허는 “이 사건들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하다. 직원 관리 의무를 진 은행이 책임져야 할 사건이었지만 중국 법원은 피해자의 권리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은 모든 곳에 부패가 만연해 있다. 사법체계도 공정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무신론과 진화론의 공산주의 혁명이 가져온 사회의 민낯”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