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의 시대, 진리에 대한 무지와 의심 : 보티첼리의 ‘아펠레스의 비방’

류시화 인턴기자
2022년 12월 29일 오후 12:46 업데이트: 2022년 12월 29일 오후 12:46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는 엄청난 양의 정보에 쉽게 노출됩니다. 많은 정보 중 진실이 아닌 것이 많지만, 그 양이 지나치게 많아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판별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이른바 ‘가짜 뉴스’의 희생양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것은 비단 언론뿐만이 아닙니다. SNS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나, 가까운 동료나 친구가 거짓 정보를 퍼뜨리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 우리가 현명하게 대처하려면 어떤 지혜가 필요할까요? 르네상스 시기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림 ‘아펠레스의 비방(Calumny)’에서 몇 가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불운의 고대 화가, 아펠레스

보티첼리는 고대 그리스 화가 ‘아펠레스’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그렸습니다.

아펠레스는 기원전 3세기경에 활동한 인물로 고대 그리스 시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여겨졌습니다. 그의 엄청난 실력에 많은 예술가가 그를 질투했습니다. 예술가 중 한 명인 안티필루스는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게 아펠레스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말해 아펠레스를 파멸시키려 했습니다.

아펠레스는 감옥에 있는 동안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비방(Calumny)’이라는 작품을 그리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처형을 당했고 ‘비방’ 또한 유실됩니다.

이후 기원후 1세기경에 활동했던 그리스 작가 루키아노스가 아펠레스의 ‘비방’에 얽힌 이야기를 글로 정리했고 그로부터 약 1,400년 후 보티첼리가 루키아노스의 글을 바탕으로 ‘아펠레스의 비방’을 재현해 그렸습니다.

보티첼리의 ‘아펠레스의 비방’

잔잔한 바다를 배경으로 둔 건물의 기둥에는 기독교와 그리스 신화 속 일화를 묘사한 화려하면서도 고전적인 그림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다양한 복장과 표정이 담긴 여러 인물이 있습니다.

보티첼리가 재탄생시킨 ‘아펠레스의 비방’에는 아펠레스의 운명을 결정하는 인물로 당시에 실제로 결정권을 가졌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이 아닌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인 미다스 왕이 등장합니다.

그림의 가장 오른편에 위치한 미다스 왕의 양쪽에는 두 명의 여인, ‘무지’와 ‘의심’이 가까이 붙어 서서 왕의 귀에 아펠레스에 대한 거짓을 속삭이고 있습니다.

어두운 옷을 입고 미다스 왕을 바라보는 남성은 ‘원한’입니다. 원한은 미간을 찌푸린 채 미다스의 눈을 멀게 하려는 듯 왕의 눈을 향해 손을 뻗습니다.

원한은 바로 옆에 서 있는 여인, ‘비방’의 팔을 잡아끕니다. 그녀는 한 손에는 횃불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바닥에 앉아있는 아펠레스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깁니다.

비방의 양쪽에 선 여인, ‘사기’와 ‘배신’은 비방의 머리를 땋고 꽃을 장식하며 보기 좋게 꾸며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 속 한쪽에는 검은 옷을 입고 우두커니 서 있는 나이 든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는 ‘후회’입니다. 후회는 그림 속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진실’을 돌아봅니다. 진실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겸손하게 몸을 가리고 서 있습니다.

비방과 원한이 진실을 가리다

보티첼리가 프톨레마이오스 왕 대신 미다스 왕을 그린 것은 이 작품의 주제를 단순히 아펠레스에 대한 일화에 국한하는 게 아니라 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미다스 왕은 ‘아폴론’과 ‘판’의 음악 대결에서 아폴론 신의 신성한 진리와 탁월함을 인정하지 않고 저항하기 위해 판의 승리를 주장했습니다. 신성함을 부정했던 그는 결국 아폴론에 의해 당나귀 귀를 얻습니다.

무지와 의심은 미다스 왕의 당나귀 귀에 의혹과 거짓을 속삭입니다. 왕은 그들에 의해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이는 곧 거짓된 정보, 오보의 시작입니다. 무지와 의심에 의해 미다스 왕은 앞으로 몸이 기울고 ‘원한’에게 손을 뻗으며 가까이 다가갑니다. 이는 무지와 의심이 시간이 지나면 분노와 적개심, 원한을 유발하고 그 부정적인 감정을 유지하는 데 원동력이 됨을 의미합니다.

원한이 왕의 눈을 공격하려는 듯이 손을 뻗는 것은 오랜 분노와 증오는 결국 진실에 대한 증오로 변질해 눈이 멀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비방은 원한과 분노에 의해 이끌려 진실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데 일조합니다. 그리고 사기와 배신은 비방을 미화해 비방이 인정받고 힘을 쓰도록 돕습니다.

비방의 손에 들려있는 횃불은 보통의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횃불은 비방. 바로 거짓의 손에 들려 마치 거짓이 진실인 양 보일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보티첼리는 잘못된 정보가 퍼지는 단계를 그림 속에 묘사했습니다. 진실과 진리에 대해 무지하고 의심하게 되면 신성한 진리에 대한 분노와 반감이 축적되고, 이에 따라 원한이 쌓여 진실에 대한 비방을 하고, 비방은 자기 합리화와 미화를 통해 힘을 얻게 되어 널리 퍼집니다.

진실과 사랑을 향하여

보티첼리는 이와 상반되는 개념인 진리와 진실에 대한 두 가지 표현을 그림 속에 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펠레스와 ‘진실’ 그 자체입니다. 이 둘은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거의 맨몸 상태로 있습니다. 이들은 노출된 몸으로 진실하고 정직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펠레스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인물들이 거짓말로 공세를 퍼붓고 있음에도 그는 다른 인물들에게 자비나 도움을 간청하지 않습니다. 아펠레스는 그저 이 소란을 넘어 진정한 진리를 찾고 진실한 마음으로 신에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혼란 가운데 ‘후회’는 시선을 진실에 고정한 채 천천히 왕을 향해 다가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왕과 마주했을 때 후회는, 무지와 의심에 눈이 먼 나머지 원한과 증오에 사무쳐 비방을 사실이라 여겼던 왕에게 그 모든 게 거짓이었음을 폭로할 것입니다. 그리고 미다스 왕은 비방과 원한의 희생양이 된 것에 대해 후회하고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결국엔 진실이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된 정보와 거짓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많은 의심과 증오를 물리치고 진리와 진실과 어떻게 하나가 될지 많은 노력과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