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국전쟁 속 진실은…‘런승만’의 실체와 김구의 속내

이윤정
2024년 02월 16일 오전 6:40 업데이트: 2024년 02월 16일 오전 7:43

류석춘, 6·25 발발 직후 이승만 연설 전문 공개
정안기 “비망록에 담긴 김구의 본색과 정치적 파장”

영화 건국전쟁의 흥행 돌풍이 심상찮다. ‘김일성의 아이들’을 연출한 김덕영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건국전쟁(The Birth of Korea)’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승만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지난 2월 1일 개봉한 영화 건국전쟁이 보름 만에 누적 관객수 48만 명을 훌쩍 넘긴 가운데, 역사적 사실과 자료에 근거해 이승만과 김구의 실체를 탐구하는 학술세미나가 개최됐다.

2월 15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영화 건국전쟁 속 이승만과 김구’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는 류석춘 전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장과 정안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주제 발표를 했다. 토론자로는 주동식 호남대안포럼 대표, 주익종 이승만학당 이사, 진선여고 3학년 윤선영 학생, 광영고 3학년 변성필 학생이 참석했다.

김덕영 감독 | 한기민/에포크타임스

“런승만은 날조된 거짓 역사”

김덕영 감독이 진행을 맡은 세미나에서 첫 발제자로 나선 류석춘 전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장은 ‘6·25전쟁과 ‘런승만’의 실체’ 발표를 통해 1950년 6월 25일 기습남침 전쟁이 벌어진 지 이틀 뒤인 6월 27일 밤 10시에 방송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연설을 공개했다.

이를 통해 류 전 원장은 그간 학계에 정설처럼 퍼진 “6·25전쟁 발발 직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서울은 안전하니 생업에 종사하라’는 녹음 연설을 방송한 뒤 정작 자신은 지방(대전)으로 피신했다는 주장은 날조된 거짓 역사”라고 반박했다.

류 전 원장은 “이 전 대통령을 ‘런(RUN·도망가다)승만’이라며 희화화하는 말을 학생뿐 아니라 사회지도층도 습관적으로 많이 하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거짓말”이라며 그 근거로 6·25전쟁 발발 직후 라디오로 방송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연설 전문을 공개했다.

그는 이승만의 육성 연설이 담긴 총 12분 47초 분량의 음성 파일은 현재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다며 “당시 이 전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미국 CIA 소속 해외방송정보국(FBIS·Foreign Broadcast Information Service)이 감청해 작성한 영문 기록이 있다”고 소개했다.

류석춘 전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장 | 한기민/에포크타임스

류 전 원장이 공개한 3쪽 분량의 연설문 사본에서 이 전 대통령은 “내가 지난 대여섯 달 동안 계속해서 자랑스럽게 말한 것은 미국의 군사상 원조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운을 뗀 뒤 “지금 우리의 원수들은 사방에서 중무장한 비행기와 탱크, 그리고 군함을 몰고 와서 우리를 옥죄고 있다. 우리 군·경은 이 어려움을 뒤집기 위해 모든 방향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우고 있다”며 “무기도 없이 적과 대적하기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인들은 맨손으로 용감히 싸웠다. 그러나 결국 적군의 선봉대는 서울 외곽 수십 리 지점까지 진출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미국의 맥아더 장군과 트루먼 대통령과 전화 통화로 원조를 호소한 사실을 밝히며 ”깊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중대한 작전이 준비되고 있고, 충분한 원조가 가는 중이다“라는 맥아더 장군의 서명이 담긴 전보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현재 상황에서 국민이 피난을 떠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 이 전 대통령은 “우리보다 더 유력한 나라들도 이미 공산당 세력 수중에 넘어갔고, 일부는 넘어가고 있는 중”이라며 “우리는 공산당의 학살을 막을 수 있다. 우리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원조가 도착할 때까지) 우리 군대가 강력하게 싸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전 대통령은 “서쪽 옹진반도부터 동해까지 38선 전 지역 그리고 동해의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는 지역까지 적과 힘차게 싸우고 있는 우리 군과 경찰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특별히 의정부 지역에서 무기도 없이 용감히 싸우는 군인들에게는 더욱 고맙다”고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전문을 소리 내어 읽은 류 전 원장은 “어느 한마디, 어느 한 군데 시비 걸 데 없는 전쟁 최고지도자의 완벽한 연설”이라며 “최고책임자로서의 고뇌는 물론 주어진 상황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자신의 선택과 노력을 설명하고, 그에 따른 군인과 국민의 협조를 당부하는 호소력이 단연 돋보이는 글”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민 여러분은 안심하고 서울을 지켜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류 전 원장은 국군이 한강철교를 폭파해 다수의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소위 ‘800명 사망설도 객관적 자료가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이와 관련한 논란에 대해 “신기철 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팀장이 2014년 출간한국민은 적이 아니다에 잘 정리돼 있다”고 소개했다.

“김구·유어만 비망록의 진실은”

정안기 낙성대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한기민/에포크타임스

정안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김구·유어만 비망록의 진실’ 발표문에서 “영화 건국전쟁은 이른바 ‘김구의 아킬레스 건’으로도 회자되는 1948년 7월 11일 자 ‘김구·유어만 대화 비망록’을 거론했고, 관객들의 비상한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정 연구위원에 따르면 유어만(劉馭萬) 박사는 1947년 1월 주한 총영사, 같은 해 12월 유엔한국위원단 중국 대표, 1948년 2월 유엔한국위원단 단장 대리, 1948년 8월 주한 대사와 유엔 수석 대표 등을 역임했다.

정 연구위원은 1948년 7월 11일, 유어만이 경교장을 방문해 김구와 나눈 3시간의 밀담 경위에 대해 “김구는 1948년 4월 남북협상에 참석해 북한을 민주기지로 삼아 남한을 공산화시키고 인민민주주의 통일 정부를 수립하자는 ‘조선정치 정세에 관한 결정서’ 등 다수 문건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때문에 유어만은 이승만과 합작을 권유하는 장개석 총통의 의사를 전달하는 한편, 김구에 대한 세평(世評)을 확인하고자 7월 11일 경교장을 방문했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정 연구위원은 “김구는 밀담 와중에 자신의 속내를 내비치고 말았다”며 “남북협상을 계기로 연공합작으로 돌아섰고, 통일 정부 대통령을 몽상(夢想)하는 김구가 ‘어차피 적화된 나라 부통령’ 취임 권유에 손사래를 치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라고 김구의 속내를 짚었다. 이어 “그러했기 때문에 경교장 밀담 이후에도 5·10 총선 무효, 주한미군 철수, 남북협상, 통일 정부수립을 줄기차게 주장했던 것은 아닐까”라며 “비망록은 김구가 반(反)대한민국 불순세력임을 입증하는 역사적인 문건”이라고 주장했다.

정 연구위원은 비망록의 정치적 파장을 두고 “7월 11일 유어만은 경교장 밀담을 통해 김구의 불궤지심(不軌之心)을 확인하고 경악했다”며 “그 때문에 유어만은 밀담에서 확인된 중대한 사실을 이승만 박사에게 알리고자 영문 보고서를 작성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아울러 “비망록을 전달받은 이승만 박사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현재 정확히 파악하기 곤란하다”면서도 “하지만 7월 20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부통령에 김구가 나오게 되면 합작할 의사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승만 대통령은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로 “김구의 불분명한 태도와 정·부통령 불화에 따른 정국 불안정을 거론했다”며 “‘비망록’은 이승만 대통령의 김구에 대한 단호한 결단의 결정적 근거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영화 건국전쟁 속 이승만과 김구’ 세미나에 참석한 시민들 | 한기민/에포크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