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대북제재 감시 더는 못한다…“국제사회 눈·귀 막았다”

황효정
2024년 03월 29일 오후 7:38 업데이트: 2024년 03월 29일 오후 7:52

유엔 안정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잘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유엔 전문가 패널이 창설 15년 만에 종료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한 중요한 제도적 수단 한 가지를 잃게 됐다.

28일(현지 시간)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 결의안에 대해 표결한 결과, 안보리 이사국 15개국 중 13개국은 찬성했으나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며 부결됐다. 중국은 기권했다.

결의안이 통과하기 위해서는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총 5개 상임이사국 중 단 한 국가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앞서 지난 2009년 당시 북한의 2차 핵실험을 계기로 출범한 유엔 전문가 패널은 북한의 제재 위반 의혹을 조사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안보리 대북제재위를 보조해 왔으며, 안보리는 매년 3월께 결의안 채택의 형식으로 패널 임기를 1년씩 연장해 왔다.

이날 결의안 채택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면서 전문가 패널은 오는 4월 30일 종료되게 됐다. 이로써 안보리는 대북 제재 위반 사항을 유엔 회원국 및 국제사회에 알릴 중요한 수단을 잃었다.

거부권을 행사한 러시아의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대사는 “제재를 변경할 수 있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이 없으며 특정 개인을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는 공정한 절차 조항도 없다”라며 “개별 국가에 대한 모든 남은 제한 조치는 궁극적으로 현실적인 목표를 갖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검토를 받아야 한다”라고 거부 이유를 밝혔다.

이는 대북 제재에 일몰 조항을 추가하자는 러시아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데 대한 러시아의 불만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같은 러시아의 입장에 대해 국제사회는 거부권 행사를 위한 명분일 뿐, 실제로는 북한과 무기 거래 중인 러시아가 전문가 패널을 유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황준국 주유엔 대사는 “현시점에서 러시아는 핵무기 비확산 체제 수호나 안보리의 온전한 기능 유지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탄약 및 탄도미사일 공급을 위해 북한을 두둔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비판했다.

실제 이달 발간된 연례 패널 보고서에는 러시아와 북한이 대북 제재를 위반하고 무기 거래를 한 사진이 담기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북한과의 무기 거래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해 전문가 패널 활동을 중단시킨 러시아를 향해 강력히 규탄했다. 이날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브리핑을 통해 “오늘의 무모한 행동은 미국과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여러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하기 위해 부과한 매우 중요한 제재를 더 약화시킨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부도 성명을 내고 “유엔의 대북 제재 이행 모니터링 기능이 더욱 강화되어야 할 시점에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안보리 이사국의 총의에 역행하면서 스스로 옹호해 온 유엔의 제재 레짐(체제)과 안보리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크게 훼손시키는 무책임한 행동을 택했다”며 강한 유감을 드러냈다.

질문에 답하는 김인애 통일부 부대변인|연합뉴스

통일부 또한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는 핵·미사일 개발과 러시아에 대한 무기 수출 등 북한의 대북 제재 위반 행위를 충실히 감시해 온 전문가 패널 활동을 종료시킴으로써 국제 사회의 눈과 귀를 막아 북한의 불법적 행위를 비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인애 통일부 부대변인은 같은 날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이같이 언급하며 “전문가 패널 활동이 중단되더라도 대북 제재 준수 의무에는 변함이 없다. 북한이 잘못된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유엔은 전문가 패널이 활동을 종료하더라도 대북제재위는 지속되며 제재 체제 이행을 감시하는 역할을 여전히 수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안보리 이사국과 대북제재위 구성원 국가들은 대북 제재를 포함한 모든 안보리 제재를 지속해 알리기 위해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이같이 발언했다.

뒤자리크 대변인 외 안보리 대북제재위 의장국인 스위스의 파스칼 베리스빌 유엔대사도 기자회견에서 “대북 제재는 그대로 남아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베르스빌 대사는 “대북제재위원회는 제재 이행을 위해 독립적인 전문가의 분석과 지원을 받을 수 있으므로 이런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