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된다는 것은…‘문학 속 아버지들’

워커 라슨(Walker Larson)
2023년 11월 28일 오후 1:41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8

서양에서 탄생한 위대한 문학 작품에 훌륭한 아버지가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부성애를 지닌 아버지는 거의 없고 폭군이거나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인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문학 작품 속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근본적인 원동력은 갈등이다. 등장인물이 극복해야 하는 긴장과 대립, 문제, 장애는 이야기의 근간을 형성한다. 그리고 갈등은 종종 가족 관계에서 비롯된다. 좋은 부모가 있는 가정에서는 가정 문제나 사회 문제가 발생하는 빈도가 현저히 낮아진다. 반면 좋은 부모가 없다면 사회 문제나 가족 문제 발생률이 높아지고, 이는 곧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처럼 좋은 이야기의 탄생 기점이 된다. 그렇기에 많은 문학과 위인전 등에는 나쁘거나 실종된 부모가 자주 등장한다.

부성애의 잠재적 영웅 모델을 제시하는 ‘아버지상’

물론 문학 속의 모든 아버지가 실패한 인물은 아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부성애의 바른 예가 되는 사례도 많이 등장한다. 프랑스의 시인 샤를 페기(1873~1914)는 “현대 사회에서 매우 분명히 볼 수 있듯이 세상에는 단 한 명의 모험가, 즉 한 가족의 아버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모험가이자 영웅인 아버지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전해지며 우리에게 큰 교훈과 감동을 주고 있다.

‘일리아스’의 헥토르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인물 헥토르는 트로이의 영웅이자 헌신적인 가장이다.

호메로스는 헥토르에 대해 ‘트로이의 외로운 방어자’라고 표현했다. 트로이를 공격하는 수많은 그리스 군에 맞서 싸우며 트로이 병사들을 이끈 그는 많은 적들을 이겨냈다. 헥토르가 이렇게 전장에서 엄청난 전투력을 발휘한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안드로마케를 떠나는 헥토르’(1727), 장 레스타우 2세. 캔버스에 오일 | 공개 도메인

일리아스의 마지막 부분에서 호메로스는 헥토르와 가족의 마지막 재회를 묘사했다.

“결전을 앞둔 헥토르는
그의 아내, 아들과 마주했다.
그는 홍조 띤 볼과 별처럼 빛나는 눈을 가진
사랑하는 아들에게 손을 뻗어 그를 안으며 웃었다.
환한 미소를 짓는 위대한 전사, 헥토르.
그는 그저 말없이 아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는 피 묻은 헬멧을 벗어 잠시 땅에 내려두고
아들에게 입 맞춘 뒤 그를 품에 안은 채
제우스와 불멸의 신들에게 기도드린다.
운명을 이미 아는 듯, 그를 만류하며 눈물짓는 아내.
그는 그녀를 안아주며 다독인다…”
– 호메로스, ‘일리아스’ 서사시 6권 中 –

아내와 아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 전 헥토르의 결연한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아버지상’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템페스트’의 프로스페로

‘프로스페로와 미란다’(1803), 헨리 톰슨. 캔버스에 오일. 런던 왕립예술아카데미 | 공개 도메인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인 ‘템페스트’에는 프로스페로라는 마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원래 밀라노의 공작이었으나, 억울하게 관직을 박탈당하고 어린 딸과 함께 신비의 섬으로 추방당한다. 그는 추방생활 중 얻게 된 마법 능력을 이용해 항해 중 조난당한 적들을 섬으로 오게 만들어 회개하게 만드는 등 극 중 사건들을 해결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딸을 위해 좋은 배필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한다. 나폴리의 왕자 페르디난드가 태풍으로 조난되자 그를 구해주고 청년의 자질과 순결, 결단력을 시험한 후 딸과 백년가약을 맺도록 이어준다.

프로스페로는 그가 보인 초인적인 노력과 끈기가 딸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는 노래를 부른다.

“오, 나의 천사여. 그대는 나를 지켜주었다.
그대는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하늘에서 온 강인함을 내게 불어넣어 주었고,
내가 뱃머리에서 소금 방울(눈물)을 바다에 가득 떨어트렸을 때
그대는 내 짐을 지고 신음하며 내가 견뎌내게 하였다.”

프로스페로는 인생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 어린 딸의 존재와 사랑으로 인해 마음을 다잡고 용기와 힘을 얻었다. 그리고 자식을 위한 사랑으로 그는 많은 고통과 고난을 이겨내고, 다시 명예를 되찾고 자식의 영원한 행복과 사랑까지 얻게 된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밥 크래칫

‘크리스마스 캐럴’의 한 장면(1844), 프레드 바너드 그림 | Hulton 아카이브/게티 이미지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는 자린고비 노인 스크루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스크루지 아래에서 오랜 시간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밥 크래칫이 등장한다. 그는 적은 월급에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맡은 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별한 영웅심이나 용기를 발휘하진 않지만 매일 일상의 고단함을 견뎌내는 그는 특유의 고귀함과 희생으로 수많은 아버지를 상징한다. ‘평범한 영웅주의’라 불리는 이러한 형태의 좋은 아버지상은 모든 가정의 아버지들이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헤이든(1913~1980)은 밥 크래칫처럼 일상에서 보이는 영웅적인 아버지의 위대함에 대한 시를 썼다.


“일요일에도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검푸른 추위 속에서 옷을 입고
한 주 내내 모진 날씨에 일하느라 쑤시고
갈라진 손으로 불을 피웠다.
아무도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데도.

잠이 깬 나는 몸속까지 스몄던 추위가
타닥타닥 쪼개지며 녹는 소리를 듣곤 했다.
방들이 따뜻해지면 아버지가 나를 불렀고
나는 그 집에 잠복한 분노를 경계하며

느릿느릿 일어나 옷을 입고
아버지에게 냉담한 말을 던지곤 했다.
추위를 몰아내고
내 외출용 구두까지 윤나게 닦아 놓은 아버지한테.

내가 무엇을 알았던가, 내가 무엇을 알았던가
사랑의 엄숙하고 외로운 직무에 대해.

-로버트 헤이든 ‘그 겨울 일요일’ –

‘더 로드’의 아버지

‘도둑과 그의 아이’(1832), 칼 프리드리히 레싱. 캔버스에 오일. 필라델피아 미술관 | 공개 도메인

2006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 ‘더 로드’는 미국 현대소설계를 대표하는 작가 코맥 매카시(1933~2023)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소설은 현대 문명이 대재앙으로 인해 멸망한 후, 더 나은 환경을 찾아 헤매는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는 지구상에 ‘더 나은 환경’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지만, 자신의 희망이자 빛인 아들이 용기를 잃지 않게 하고자 고군분투한다.

생존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몇몇 생존자를 마주한다. 생존자들은 대부분 절망에 빠져 인간성을 잃은 모습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도덕적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소설 속 암울한 배경과 아버지의 노력과 사랑은 대조되어 더 밝은 빛으로 묘사된다.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은 환경이 암울할수록 더 선명하게 반짝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넌 내 마음의 전부야. 항상 그랬어. 넌 최고의 아들이자 남자야”라며 격려와 사랑을 아끼지 않는다.

문학 속에서 빛나는 아버지들

이야기 속에서 갈등의 주원인이 아닌 현자이자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인 아버지들은 시대별, 장르별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고대 서사시 속 헥토르부터 20년대 소설 속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좋은 아버지의 기준과 이유는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니고 우리에게 감명을 준다. 이들이 보인 참된 아름다움과 사랑에서 우리는 따뜻함과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워커 라슨은 위스콘신에 있는 사립 아카데미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아내와 딸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영문학 및 언어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헤밍웨이 리뷰, 인텔리전트 테이크아웃, 뉴스레터 ‘헤이즐넛’에 글을 기고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