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아름다움을 구현한 20세기 조각가, 프레데릭 하트

제프 미니크 (Jeff Minick)
2023년 11월 13일 오후 1:11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8

미국의 조각가 프레데릭 하트(1943~1999)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조각가다. 그는 천재성을 발휘해 아름다운 성화와 추모 미술을 탄생시켰다. 수백 개의 공공 기념물, 초상화 및 예술 작품을 만들어 미국 예술계에 크게 기여했다.

프레데릭은 유년기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지내고, 이후 워싱턴으로 거주지를 옮겨 국립 대성당 서기로 근무했다. 그곳에서 이탈리아 출신 조각가들의 작업을 관찰하며 예술에 흥미를 느낀 그는 조각가의 수습생으로 근무하며 예술 세계에 발을 들였다.

‘무(無)에서 유(有)로’

1974년, 31세의 프레데릭은 워싱턴 국립 대성당의 서쪽 정면을 장식할 조각품을 선정하는 국제 공모전에 참가해 우승을 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의 최고 역작 중 하나로 꼽힌다.

‘무(無)에서’(1978~84), 프레데릭 하트. 워싱턴 국립 대성당 | EVA HAMBACH / 게티이미지

프레데릭의 작품 ‘무(無)에서’에는 태초의 구름 속에서 탄생하는 여덟 명의 인물이 있다. 그들은 저마다 탄생의 고통을 이겨내려 부단히 몸부림치고 있다. 섬세하게 조각된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은 힘차고 강렬하다. 프레데릭은 작품 제목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 중 하나인 ‘무에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와 성경 속 구절인 ‘모든 것은 무에서 만들어졌다’에서 착안해 정했다.

‘무(無)에서’(1978~84)의 일부, 프레데릭 하트. 워싱턴 국립 대성당 | EVA HAMBACH / 게티이미지

프레데릭은 작품에 대해 “나는 ‘무에서’를 창조의 단일한 표현이자 신성한 정신과 에너지의 변화와 성장으로 생각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혼돈의 무에서 나타나 영원한 변형의 순간에 처해 있다. 즉 신성한 힘의 위엄과 신비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프레데릭은 고전 미술 거장들의 신성함을 흡수하고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정신을 작품에 더해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토마스 울프(1930~2018)는 이 작품에 대해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종교 조각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이처럼 ‘무에서’는 중세와 르네상스 감성을 현대에 접목한 놀라운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무(無)에서’(1978~84)의 하단에 위치한 ‘아담’의 조각상, 프레데릭 하트. 워싱턴 국립 대성당 | EVA HAMBACH / 게티이미지

세 명의 군인

프레데릭 하트의 작품 중 또 하나의 역작으로 꼽히는 ‘세 명의 군인’은 1982년 워싱턴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관에 설치되었다. 그는 조각을 만들기 전 수십 명의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했고, 그들이 전투에서 입었던 복장과 사용했던 장비, 당시 그들이 느낀 감정까지 이해하려 노력했다.

‘세 명의 군인’(1982), 프레데릭 하트. 워싱턴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관 | Anton_Ivanov / Shutterstock

고전 조각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제작된 이 청동 조각상은 마치 순찰 중인 숲에서 병사 3명이 막 걸어 나온 듯 보인다. 이들은 모두 지친 듯 잠시 멈춰서 그들 오른편의 ‘벽’을 응시하고 있다.

그들이 바라보는 총 152미터 길이의 벽은 검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그 위에는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한 모든 군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프레데릭은 그 벽과 병사들을 병치되게 배치했다. 그는 벽을 희생의 바다로 생각했고, 바다를 바라보는 인물을 그 앞에 두어 그들의 감정을 보여주려 했다고 밝혔다.

‘무에서’와 ‘세 명의 군인’은 높은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지닌 작품이지만, 당시 대중 언론들은 프레데릭과 그의 작품을 저평가했다. 당시 미술 평론가들은 모더니즘에 심취해 고전에 기반한 그의 예술세계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비평가들의 비판과 무시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며 프레데릭은 점차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대중의 찬사와 부를 모두 얻었다.

고전에 대한 애정과 유산

그는 고전 예술에 대한 이해를 통해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또한 기독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현대 예술가와 차별화된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은 영적이고 인본주의적 영감, 그리고 전통적 미학에 대한 이해가 예술에 명백히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국 국립 미술관 명예 관장인 J. 카터 브라운(1969~1992)은 프레데릭에 대해 “기술적인 능력과 예술에 대한 헌신을 지닌 예술가이다. 고전 예술에 대한 탐닉과 재능이 결합한 작품은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예술에는 영적이며 신성한 요소가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는 옳은 예이다.”라고 평가했다.

‘성 바울 조각상’, 프레데릭 하트. 워싱턴 국립 대성당 | Christianthiel.net / Shutterstock

프레데릭은 현대 예술의 미래에 대해 “예술은 도덕적 권위를 새롭게 해야 한다. 흥미롭지만 고상하고 장엄한 존재로서 일상에서 대중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프레데릭의 말에서 현대 미술계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발견해야 한다. 예술의 본질에서 변이되어 가는 현대 미술의 동향을 다시 고전과 전통 추구로 향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프 미니크는 20년 동안 로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역사와 문학, 라틴어를 가르쳤다. 그리고 두 권의 소설과 논픽션 작품을 집필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