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뜨끔했나…中서 숭정제 최후 다룬 역사서 전량 회수

강우찬
2023년 10월 23일 오후 6:13 업데이트: 2023년 10월 23일 오후 6:13

명나라 마지막 황제, 측근 배신 끝에 자결
역사서엔 “부지런했지만 무능했던 죄인”

중국에서 지난 9월 출간된 역사서가 한 달 만에 뒤늦게 전량 회수된 사건을 두고 중화권의 관심이 쏠린다.

유통업체 측은 ‘인쇄 (품질) 문제’를 이유로 밝혔지만, 이 책의 제목이 시진핑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읽히는 바람에 당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됐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 16일 중국의 한 서적 유통업체는 명나라 숭정제를 소재로 한 역사서 ‘숭정제 – 부지런히 정사에 임한 망국의 군주(崇禎: 勤政的亡國君)’를 전량 회수한다고 밝혔다. 이후 온오프라인 서점에 진열됐던 책은 곧 자취를 감췄다.

숭정제는 명나라의 17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다. 그는 1644년 이자성의 반란군에 쫓겨 베이징 자금성 북쪽의 경산 아래에 있던 한 고목에 목을 매 자살하며 비극적 삶을 마감했다. 믿었던 환관 등 측근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했다. 380년 전 사건이지만, 중국인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이 책은 원래 2016년에 출간돼 인기를 끈 바 있다. 그런데 지난 5월, 책의 저자인 역사학자 천우퉁(陳梧桐) 전 중앙민족대 역사학과 교수가 지난 5월 숨을 거두면서 재출간된 것이다.

내용도 천우퉁 전 교수의 일부 추가적인 서술을 더했을 뿐, 거의 그대로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제목과 표지다. 원래는 ‘숭정왕사 – 명나라 최후의 풍경’이었는데, 지금 제목으로 바뀌었다.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책이 갑자기 금서가 된 것은 제목 탓이 크다”고 말한다. 부지런히 정사(나랏일)를 돌봤지만 오히려 나라를 망국으로 이끌었다는 제목이 시진핑 중국 공산당(중공) 총서기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유통업체에서는 “(통치자가) 근면할수록 나라가 망한다”는 홍보 카피까지 사용했다. ‘공동부유’, ‘일대일로’, ‘늑대외교’ 등 내놓는 정책마다 역효과를 일으키는 시진핑을 연상시킨다는 반응이 나온다.

숭정제에 대한 평가는 후세의 역사가들 사이에서 둘로 나뉜다. 하나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지만 딱히 잘못을 저지르진 않은 무고한 인물’, 다른 하나는 ‘명나라의 종말을 초래한 무능한 죄인’이라는 것이다.

천우퉁의 책은 후자에 속한다. 이 책의 서문에서는 “숭정제는 나라를 부흥시키려는 야망은 있었으나 재능이 없었고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부족했다”고 썼다. 즉 부지런히 나랏일을 돌보긴 했지만 무능한 까닭에 오히려 종말을 앞당겼다는 것이다.

또한 서문에서는 숭정제에 대해 “독단적이며 의심이 많고 변덕스러운 성격”, “빠른 성공만 바라고 우유부단했다”고 비판하며 “모든 중대한 의사결정에서 오류를 범하고 부적절하게 대처해 결국 역사적 비극으로 이어지고 명나라를 멸망시켰다”고 평가했다.

이런 관점에서 ‘숭정제 – 부지런히 정사에 임한 망국의 군주’라는 제목은 저자의 관점을 잘 반영하고 있다.

역사학자이자 미국 페이톈대학 교수인 장톈량(張天亮)은 “한 달 전에 출판돼 시중에서 유통 중인 책을 매우 신속하게 전량 회수했다”며 “이는 일개 유통업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상당히 높은 곳에서 내려온 명령이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장톈량 교수는 “실제로 중국에서는 시진핑을 명나라 마지막 숭정제와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이번 금서 지정은 시진핑 스스로 망국의 군주와 자신이 닮았음을 시인한 셈이 됐다”며 “동시에 중공으로서는 매우 불길한 징조”라고 밝혔다.

호주에 거주하는 역사학자 겸 시사평론가 리위안화(李元華)는 “명나라 말기에는 독재정치 아래에서 간첩이 기승을 부리고 부패가 만연했다. 이 책은 명나라 말기의 그러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다루고 있지만, 독자들은 오늘날 중국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숭정제는 10대의 어린 나이에 즉위해 정치를 시작했다. 특히 악명 높은 환관 위충현을 제거한 점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마치 시진핑이 반부패 사정을 벌여 고위 관리들을 숙청한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숭정제는 의심이 유난히 강해 유능한 충신들을 차례로 숙청했고 결국 주변에 남은 것은 아첨에만 능할 뿐 무능한 간신들뿐이었다. 이는 명나라의 멸망을 재촉했다. 경산에 고립돼 나무에 목을 매던 숭정제 곁에는 시중을 드는 내시 한 명 외에 따르는 신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평론가 리닝은 “지금의 중국인들이 이 책을 보면, 지금의 시진핑 총서기의 모습과 겹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책을 회수하더라도 그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고 논평했다.

한편 RFA에 따르면, 중국에서 재출간된 ‘숭정제 – 부지런히 정사에 임한 망국의 군주’가 서점에서 사라지자,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이 책의 구판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