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눈으로 세상을 본 화가, 반 다이크

미셸 플라스트릭(Michelle Plastrik)
2023년 12월 13일 오후 9:04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8

바로크시대 최고의 초상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
직물에 대한 높은 이해로 작품의 완성도 높여

벨기에 플랑드르 출신의 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1599~1641)는 바로크 시대 최고의 초상화가 중 한 명이다. 영국 국왕 찰스 1세의 궁중 화가로 활동했던 그는 매우 우아하고 기품 있는 초상화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실력을 보였던 반 다이크는 그의 나이 16세 때 17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수석 조수로 활동했다. 루벤스는 반 다이크를 ‘내 최고의 제자’라고 부르며 그의 재능을 높이 샀다. 이후 그의 명성은 유럽 전역에 전해졌고 영국 왕실 초청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왕실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섬세함으로 초상화의 절정을 이루다

‘자화상’(1620), 안토니 반 다이크. 캔버스에 오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공개 도메인

반 다이크는 채색에 매우 뛰어났다. 탁월한 채색 기술로 빛과 인물의 움직임, 직물에 놓인 자수와 실의 짜임까지도 완벽하게 묘사했다. 그는 특유의 섬세함으로 특히 레이스와 같은 복잡한 직물 묘사를 정확하면서도 회화적으로 해냈고, 당시 귀족들의 의상을 사실적이면서도 완벽에 가깝게 화폭에 옮겼다.

그는 부유한 비단 상인인 아버지와 뛰어난 자수 기술로 유명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직물에 대한 이해가 높았고 자연스레 이러한 지식을 그림에도 풀어냈다.

‘제임스 스튜어트, 리치몬드와 레녹스의 공작’

‘존 스튜어트 경과 버나드 스튜어트 경’(1638), 안토니 반 다이크. 캔버스에 오일 | 공개 도메인

반 다이크는 1632년 영국으로 이주해 궁정 화가로 임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사 작위도 받았다. 이후 왕과 귀족의 초상화를 위엄 있게 그려내 많은 귀족으로부터 그림 요청을 받았다.

반 다이크의 수많은 후원자 중 한 명인 제임스 스튜어트는 리치몬드와 레녹스의 공작이었다. 찰스 1세의 사촌인 제임스는 왕과 귀족들에게 충성을 다했다. 궁정의 침실 신하이자 경비원, 국무위원 등의 중요한 직책을 맡았고 1633년, 영국 최고의 기사 작위인 가터 기사로 임명되었다. 제임스는 이 높은 영예를 기념하기 위해 반 다이크에게 초상화를 의뢰했고, 그렇게 탄생한 ‘제임스 스튜어트, 리치몬드와 레녹스의 공작’은 세계적인 걸작으로 남아있다.

‘제임스 스튜어트 리치몬드와 레녹스의 공작’(1633), 안토니 반 다이크. 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공개 도메인

이 그림은 매우 연극적인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그림 속 제임스가 착용한 망토에는 은색의 커다란 별이 수놓아져 있고, 보석이 달린 황금 훈장을 목에 걸고 있다. 또한 그의 왼쪽 무릎에는 금색의 가터 장식이 옷을 고정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요소에 반사된 빛의 묘사는 그림 속 사물이 마치 조각처럼 보이게 한다. 반 다이크는 이러한 연출을 통해 작품에 우아함과 화려함을 연출했다.

그림 속 스튜어트가 입은 옷은 당대 패션계에서 최고로 여겨진 것들이다. 스튜어트는 이 옷들을 여유롭고 우아하게 소화했다. 반 다이크는 그림 속 인물에게 이러한 여유로움과 우아함을 부여해 인물의 지위와 고귀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제임스 스튜어트 리치몬드와 레녹스의 공작’(1633)의 세부, 안토니 반 다이크. 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공개 도메인

이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스튜어트가 입은 옷의 레이스 장식이다. 레이스는 당시 매우 고급스러운 소재로, 부유층의 초상화에서 강조되어 표현되었다. 촘촘한 붓으로 자국을 남기는 회화 기법을 통해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반 다이크는 어릴 적부터 익히 봐온 직물에 대한 이해도를 더해 다른 화가들보다 더 섬세하고 정확하면서도 우아하게 레이스를 묘사했다.

스튜어트가 신은 신발은 프랑스식 디자인으로 높은 굽과 커다란 장미 장식이 돋보인다. 발 모양에 꼭 맞게 제작된 신발은 당시 귀족들이 향유했던 복식 문화의 하나이다. 그가 신은 양말은 가로로 주름이 져 있다. 이는 잘 정돈된 금발 머리나 시대의 유행을 잘 반영한 의상과 대조를 이뤄 귀족적인 모습과 낭만적인 이미지를 연출한다.

개를 통해 나타낸 고귀함과 충성심

그림 속 스튜어트는 개 한 마리와 함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개는 스튜어트가 멧돼지 사냥을 하던 중 위기에서 그의 목숨을 구해준 것으로 유명한 그레이하운드 종이다. 이 품종은 고귀함과 충성심을 상징한다. 예술 작품에 개가 등장하는 것은 보통 충성심을 나타내는 의도로 사용된다. 반 다이크는 앞다리를 우아하게 편 채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개의 모습을 통해 단순히 충성심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우아함과 침착함까지 함께 묘사했다. 또한 이 작품에서 개는 스튜어트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찰스 왕에 대한 스튜어트의 헌신을 동시에 의미한다.

‘개와 함께 있는 샤를 5세의 초상’(1533), 티치아노 베첼리오. 캔버스에 오일.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 공개 도메인

관찰과 표현으로 탄생한 불멸의 명작

반다이크는 그림 속 인물의 복장, 자세, 주위의 사물이나 동물을 통해 인물의 성향과 특성을 잘 나타낸 화가였다. 그는 초상화의 모델이 되는 인물에 대한 높은 이해와 애정을 그림 속에 풀어냈다. 그렇게 탄생한 반 다이크의 초상화 ‘제임스 스튜어트, 리치몬드와 레녹스의 공작’은 뛰어난 예술적 기교로 불멸의 작품으로 남아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의 초상화 양식은 이후 영국 초상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고, 이후 예술계에 계속하여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