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포착한 풍경화, 영국식 정원으로 재탄생…클로드 로랭

미셸 플라스트릭(Michelle Plastrik)
2023년 12월 4일 오후 11:11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8

17세기 화가 클로드 로랭(1604~1682)은 유럽 풍경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고요함과 조화를 표현하기 위해 그림 속 풍경의 구성을 이상화해 그렸고, 그의 화풍은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클로드는 청년기에 이탈리아로 이주해 나폴리와 로마에서 일하며 그림을 공부했다. 그는 유년기에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인정받아 많은 예술가에게 배움을 얻었다. 특히 조경가이자 환상주의 건축가인 아고스티노 타시(1580~1644)에게 교육받으며 자신만의 풍경화 구성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바로크 양식 화가에게 고전적 예술의 특징을 배웠다.

유럽 전역을 열광시킨 예술가

‘자화상’(1833), 클로드 로랭 | 공개 도메인

클로드는 독특한 화풍과 예술적 기량으로 20대 중반이던 1630년대 초부터 성공을 거뒀다. 교황 우르바누스 8세와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 프랑스 왕족 등 유럽 전역에서 중요한 후원자들의 후원을 받으며 예술 활동을 펼쳤다.

클로드의 작품은 사후에도 저명한 수집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18~19세기 유럽을 여행한 영국 귀족들은 클로드의 작품에 열광했고 그의 그림을 구입해 영국으로 가져왔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주로 활동했던 클로드의 작품이 대부분 영국에 남아 있는 이유다.

로마의 자연에 대한 연구

‘로마의 캄파냐’(1639), 클로드 로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공개 도메인

클로드의 풍경화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질서정연한 이상적인 풍경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작품은 하루 중 특정 시간과 대기 조건을 자연의 색채와 빛을 통해 아름답게 구현한다. 그의 작품 속에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 배경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도록 대부분 작게 묘사됐다그는 다른 예술가들에 비해 늦은 나이에 예술 교육을 받았지만, 다양한 신화나 문학, 성서의 이야기를 접하며 전통적 요소를 그림 속에 포함하기도 했다. 당시 이러한 주제의 작품은 단순한 풍경화보다 더 권위 있는 작품으로 여겨졌다.

‘하갈과 천사가 있는 풍경’

클로드의 작품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림인 ‘하갈과 천사가 있는 풍경’은 작품 공개 당시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식 정원 미학을 탄생시켰다.

이 그림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묘사한 작품이다. 성경 속 인물인 하갈은 하인 신분의 이집트 여인이다. 그녀는 오랜 결혼생활에도 자식이 없었던 주인 아브라함의 아이를 잉태해 출산하게 된다. 그녀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다투고 사막으로 도망친다. 삭막한 사막을 헤매던 중 물이 떨어지는 곳을 발견한 그녀는 아들 이스마엘을 덤불 아래에 두고 하느님에게 기도로 구원을 간구한다.

하갈의 기도에 천사가 등장해 물을 나눠준다. 천사는 이스마엘이 위대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 약속하며 그녀에게 사라와 아브라함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를 권유한다.

이 작품은 클로드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그려졌다. 당시 하갈의 이야기는 예술계에서 인기 있는 주제였다. 대부분 예술가는 배경보다는 하갈과 천사에 초점을 두고 그림을 그렸지만, 클로드는 풍경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탄생시켰다.

하갈의 이야기는 이집트의 사막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클로드는 흐릿한 햇살이 비추는 로마의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선택했다. 동시에 그는 이야기의 핵심을 압축해서 그림 속에 녹여냈다.

‘하갈과 천사가 있는 풍경’(1646), 클로드 로랭. 런던 내셔널 갤러리 | 공개 도메인

원작 속 수원지는 강물 형태로 묘사됐고, 천사는 하갈에게 돌아가라고 권유하며 먼 곳에 있는 마을을 가리킨다. 다른 한 손은 하갈을 가리키며 자신의 전언이 하느님의 약속임을 알려준다.

클로드는 이처럼 언뜻 평범한 풍경화로 보일 수 있는 작품 속에 성경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녹여내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켰고, 이 작품은 영국 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에 퍼진 목가적·이상적 미학 양식

버킹엄셔의 스토 하우스를 둘러싸고 있는 스토 정원. 18세기에 건설되었으며 영국식 정원 양식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 사무엘 정호이밍/Shutterstock

클로드의 작품이 전파되기 전 영국에서는 엄격하고 기하학적인 정원 양식이 인기를 끌었다. 정원사들이 정교하게 다듬고 배치한 식물들로 꾸며진 정원 양식은 클로드의 작품이 영국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후 자연스럽고 목가적인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클로드에 의해 전파된 새로운 형태의 정원은 지금도 남아있다. 그 예로 영국 버킹엄셔주의 ‘스토 하우스(Stowe house)’의 정원을 들 수 있다. 7만8000여 평에 이르는 초대형 정원인 ‘스토 정원’은 원래는 대칭을 이루는 정갈한 구조로 조성돼 있었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 클로드의 영향을 받아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게 됨으로써 불규칙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재정비됐다. 이곳은 현재 영국 문화재로 지정돼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 자연에 대한 조예 깊은 표현력으로 풍경화를 그려온 클로드 로랭의 작품은 미술관, 박물관뿐만 아니라 실존하는 정원과 공원에도 그 모습이 보존돼 있다.

미셸 플라스트릭은 뉴욕에 거주하며 미술사, 미술 시장, 박물관, 미술 박람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