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강국 네덜란드, 中 충칭 총영사관 폐쇄…“손절 수순”

알렉스 우
2024년 03월 11일 오후 7:04 업데이트: 2024년 03월 11일 오후 7:04

중국 외교부 “네덜란드 결정 존중”…전문가 “지정학적 요인 작용한 듯”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대(對)중국 견제에 동참하고 있는 네덜란드가 중국 충칭 주재 총영사관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주중 네덜란드대사관은 지난 5일(현지 시간) 소셜미디어 공식 계정을 통해 “충칭 주재 총영사관이 문을 닫는다. 앞으로 베이징에 있는 네덜란드대사관이 충칭, 쓰촨, 산시, 윈난, 구이저우 지역의 업무까지 담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네덜란드 측은 지난 1일 쓰촨성 청두시에서 열린 외국 기업인·투자자 모임에서 총영사관 폐쇄 소식을 먼저 알렸다.

이런 결정이 내려진 이유에 대해서는 “네덜란드 기업들이 중국에서 활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만 언급했다.

이는 경기 침체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국공산당이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가운데 나온 조치다.

중국 외교부는 “모든 국가는 해외 사무실의 설치 및 폐쇄를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다. 네덜란드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네덜란드가 총영사관을 폐쇄하기로 한 데는 국제사회의 중국 견제 강화,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도체 분쟁과 정치적 긴장

올해 초, 네덜란드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조기업인 ASML은 “네덜란드 정부가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의 중국 수출 허가를 부분적으로 취소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네덜란드 당국은 “중국공산당이 반도체 제조 장비를 군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7일에는 네덜란드 공영방송(NOS) 기자들이 ‘청두 은행 시위 사건’을 취재하다 중국 당국에 붙잡혀 구금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9년 4월 4일, 네덜란드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조기업 ASML 공장에서 직원들이 최종 조립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Bart van Overbeeke Fotografie/ASML/Handout via Reuters/연합뉴스

중국 주재 외신기자클럽(FCCC)은 지난 1일 성명을 내어 “이런 일이 발생한 데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중국 정권은 자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외국 언론인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베이징에서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고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중국 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언론과 기자들의 합법적인 권익을 보장하고 있다”며 “외국 기자들도 중국의 법규를 준수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지정학적 요인

미국에서 활동하는 시사 평론가 왕허(王赫)는 “충칭 주재 총영사관 폐쇄는 네덜란드가 중국공산당과 거리를 두고 있음을 반영하는 중대한 정치적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경제적 관점에서는 네덜란드가 총영사관을 폐쇄할 이유가 전혀 없다. 중국은 네덜란드의 주요 무역 파트너”라고 전했다.

또한 “중국은 네덜란드에 무역과 투자를 통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업 스파이 활동 등을 벌이며 네덜란드의 경제 안보에 큰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이런 이유에서 네덜란드가 ‘중국과의 거리 두기’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여기에 국제사회의 중국 견제 흐름까지 더해짐에 따라 네덜란드는 점점 더 중국을 파트너가 아닌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네덜란드가 총영사관 폐쇄를 결정한 데는 이런 지정학적 요인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앞으로 네덜란드와 중국공산당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김연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