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바이올리니스트 신예 박규민 “연주 잘하는 것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예술인이 되고파”

이연재
2022년 10월 7일 오후 11:18 업데이트: 2022년 10월 7일 오후 11:18

바이올리니스트 박규민은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재학 중 도미, 도날드 와이러스타인(Donald Weilerstein)을 사사하며 전액 장학생으로 뉴잉글랜드음악원 학,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그리고 2022년부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안티에 바이타스(Antje Weithaas)를 사사하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공연을 위해 한국에 온 박규민을 지난 4일 공덕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부모님께 바이올린을 배우게 해달라고 엄청 졸랐죠”

박규민은 대부분의 클래식 연주자가 그렇듯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에 입문했다. 그 배경엔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었다.

“형도 그렇고 저도 피아노부터 시작했어요. 그러다 형이 바이올린으로 바꿨는데 형이 연주하는 것을 보니까 멋있어 보이고 그냥 궁금했어요. 그래서 바이올린을 배우게 해달라고 부모님께 엄청 졸랐죠.”

하지만 막상 바이올린을 잡고 나서는 “하지 않겠다”고 도망 다녔단다. ‘초등학생’스럽다고 할까. 이유는 바이올린의 난도 때문이었다고.

“피아노는 소리를 내면 소리가 나는데 바이올린은 난도가 좀 있거든요. 초반에 좋은 소리를 내는 게 굉장히 어려워요. ‘깽깽’대는 소리가 나거든요. 인내심을 가지고 참고 연습을 많이 해야 어느 정도 소리가 나다 보니까 처음에는 좀 힘들었어요.” (웃음)

그런 그가 바이올린을 평생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스승의 영향이 컸다. 그는 “선생님이 매년 열어 주었던 연주회 무대에 올라 연주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어요”라고 회상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연주를) 잘했건 못했건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것이 어린 마음에 되게 행복했거든요. 그리고 기분이 우울하다가도 악기를 잡으면 위안받으니까 평생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박규민은 2012년 금호 영재콘서트로 데뷔했다. 일찍이 이화경향콩쿠르 1위, 부산 음악콩쿠르 1위, 신한음악상 수상 등 굵직한 국내 콩쿠르를 석권했으며 그 성과를 인정받아 ‘예원예고를 빚낸 음악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에는 토마스 앤 이번 쿠퍼 국제 콩쿠르 (Thomas & Evon Cooper International Competition)에서 우승, 유서 깊은 세브란스 홀(Severance Hall)에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이후 어빙 클라인 국제 현악기콩쿠르(Irving Klein International String Competition) 3위, 하얼빈 국제 콩쿠르(Harbin International Competition) 2위 등 주목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 바이올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매력은 잘 모르겠어요.(웃음) 요즘 들어서는 어떤 악기든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첼로도 연주하고 싶고 피아노도 다시 제대로 해보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드는데요. 근데 어쨌거나 바이올린은 ‘주인공’ 악기거든요. 어떤 편성이든 간에 멜로디를 담당하는 악기여서 제가 항상 주도적으로 음악을 이끌어가는 느낌이 있죠.”

– 자신은 어떤 연주자라고 생각하나요.

“연주자들은 각자 스타일이 있는데요. 계획을 잘 세워 준비된 것을 무대에서 보여주는 이성적인 연주자가 있는 반면 본능에 충실해서 즉흥적이고 충동적으로 연주하는 연주자가 있는데 저는 후자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물론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면서 연주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같은 곡이라도 무대마다 다르게 연주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서인지 저는 본능에 충실한 연주자인 것 같아요. 어떨 때는 마음을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무대에 올라갈 때도 있는데, 무대에서만 나올 수 있는 표현들이 있어요.”

새로운 도전, 보스턴에서 베를린으로.. 안티에 바이타스를 찾아서

박규민은 최근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보스턴에서 베를린으로 둥지를 옮긴 것이다. 음악 전공자들은 본인이 배우고 싶은 교수를 찾아, 학교를 찾아, 좋아하는 음악가의 자취를 찾아 유학지를 선택한다.

“사실 미국에 오래 있다가 유럽으로 가는 경우는 그렇게 흔치 않거든요. 저한테는 큰 도전이었죠. 모든 걸 다 내려놓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를 시작으로 베토벤, 슈만, 브람스, 멘델스존, 바그너 등 많은 음악가의 고향인 독일은 세계 모든 음악가가 평생에 한 번쯤은 방문하는 ‘성지’로 통한다.

“유럽의 음악가들이 어떻게 연주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은 선생님이 독일에 계셨거든요. 그분께 배울 수 있다면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서 (독일로 가기로) 결정했죠.”

박규민이 말하는 “배우고 싶은 선생님”은 안티에 바이타스다.

무결점 기교의 연주로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바이올리니스트 안티에 바이타스. 그는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의 강수연과 한국인 최초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양인모의 스승이기도 하다.

“제가 평소에 음악을 많이 듣는데, 안티에 선생님의 바흐 앨범을 듣고 너무 감동받아서 정말 닮고 싶었거든요. 근데 베를린에 계시다는 소리를 듣고 가고 싶었죠.”

–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만난 안티에 바이타스 선생님의 레슨 방식은 어떤가요?

“이런 질문을 몇 번 받았는데 대답하기가 좀 어려워요. 독일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레슨 받은 횟수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선생님은 굉장히 털털하셨어요. 친구 같기도 하고 엄마 같기도 하고 친근했어요. (선생님께) 레슨받고 나서 정말 행복했죠. 연주법이나 가르치시는 것은 미국의 선생님들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음악의 뿌리는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죠.”

박규민은 지난 2019년 금호악기 임대자로 선정된 이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지원으로 1740년산 도미니쿠스 몬타냐나로 연주하고 있다.

그는 2019년 8월 두 차례에 걸친 금호 악기 오디션에서 쟁쟁한 지원자들을 제치고 금호악기 오디션에서 우승하면서 도미니쿠스 몬타냐나를 거머쥘 수 있었다.

‘금호악기은행 제도’는 금호문화재단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값비싼 명품 악기를 무상으로 대여해 주고 있는 음악영재 지원 사업이다.

– 도미니쿠스 몬타냐나 바이올린을 소개한다면.

“악기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떤 소리든 악기가 그대로 흡수에서 연주자가 원하는 소리를 잘 내주는 악기가 있고요. 악기 자체가 가진 고유의 좋은 소리, 예쁜 소리가 너무 좋아서 연주자가 오히려 도움을 얻어 연주자가 악기에 맞춰가는 그런 악기가 있는데 이 악기는 후자 쪽에 가까워요.”

“악기가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으려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어서 제가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어요. ‘내 스타일의 연주를 잘 안 따라오네’ 하는 생각이 처음에 좀 들었는데 3년 정도 사용하다 보니 저도 악기에 적응하고 악기도 저의 소리에 적응하면서 이제는 소리를 잘 내주고 있어요.”

– 바이올린이 나이가 많이 들었어요.(웃음)

“그렇죠. 1740년에 만들어진 악기니까 얼마나 많은 연주자들이 이 악기를 썼겠어요. 그래서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던 부분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농담이에요.”(웃음)

– 금호 악기 오디션에 참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독일이나 미국은 문화재단들이 많아서 어린 학생들이나 젊은 연주자들에게 악기를 무상으로 임대해주는 시스템이 굉장히 잘 갖춰져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리고 그런 기회가 많이 오지도 않고요. 저도 악기가 있어서 중·고등학교 때까지 그 악기로 연주했었는데 대학교에 가면서 일정 수준이 되니까 악기에 한계가 느껴졌어요. 사실 좋은 악기는 연주자의 부담을 덜어주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악기를 사기에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고요. 그래서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아는 분을 통해 콩쿠르 직전에 한두 달 빌려서 쓰다가 콩쿠르 마치면 반납하는 생활을 반복했죠. 근데 때마침 금호 악기 오디션 공고가 났고 운 좋게 됐죠.”

바이올리니스트이기보다 예술인으로

박규민은 지난 7월 독주회를 가졌다. 그는 독주회에서 바로크 시대에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피젠델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a단조’,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1번 G장조, Op78.’, 모리스 라벨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2번 G장조 M.77’, 오페라 ‘파우스트’를 바탕으로 작곡된 비에니아프스키의 ‘환상곡’을 연주했다.

그는 “독주회 프로그램을 짤 때 다양한 색깔로 채우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관객들이 최대한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해 드리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 독주회에 바로크 음악도 포함돼 있었죠.

“제가 요새 바로크 음악에 관심이 많아요. 학교 때는 그냥 주입식으로 공부해 왔는데요. 작곡가들이 정말 많고 다양하게 연주할 수 있거든요. 바로크 음악은 악보가 굉장히 깨끗해요. 음표만 있고 또 어떨 땐 음표도 적지 않을 때가 있어요. 악상들을 구체적으로 표기하지 않아서 연주자에게 자유도가 많이 부여되거든요. 그런 연주가 저한테 잘 맞고요.”

– 어디에 중점을 두고 연주했나요.

“관객과의 소통이요. 진부한 표현일 수도 있는데 제가 1순위로 생각하는 거는 연주회에 오시는 관객분들이 평상시 일상생활을 하면서 느낄 수 없었던 감정들을 좀 느끼셨으면 좋겠거든요.”

–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다면.

“지난달 ‘종달새 비상’이라는 곡을 연주했는데요. 영국 작곡가 ‘본 윌리암스’가 쓴 곡인데 협연 무대였고 인상에 많이 남은 연주회였어요. 저한테는 좀 생소한 음악이고 큰 도전이었어요. 곡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제가 선호하는 형식의 음악이 아니었거든요. 저는 열정적이고 몰아치는 그런 음악을 좋아하고 그런 곡들 위주로 연주했었거든요. 그런데 이 곡은 새가 나는 것을 형상화한 음악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편안해요.”

“곡을 받았을 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고, 그래서 시간을 투자해서 연습과 공부를 많이 했는데 저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 연주회였습니다. 제 스스로 이렇게 말하기가 좀 그렇기는 한데 굉장히 만족스러운 연주였어요.”

– 그럼 어떤 연주자가 되고 싶은가요.

“답변이 거창하고 추상적일 수도 있는데, 사실 음악을 하게 된 계기도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인데요. 악기를 잘 연주하는 사람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예술인이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요. 또 다방면의 지식이 있어야 해서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요. 지금 공부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도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입니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 프로젝트가 있다면.

“바이올린은 선율 악기라 피아노가 채워주어야 하는데요. 함께 연주하며 호흡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저 혼자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도 희열이 있기 때문에 바흐의 무반주 전곡을 꼭 한번 연주하고 싶어요.”

– 계획이 있다면.

“저는 워낙 즉흥적인 사람이라서 계획을 짜지 않습니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불과 1~2년 전만 해도 제가 독일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요. 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다시 미국으로 갈 수도 있고 독일에서 살 수도 있고..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꼬리표가 붙기보다 예술인으로서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할 것 같아요.”

스페셜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보다는 음악을 사랑하는 예술인이 되고 싶다는 박규민과의 인터뷰는 즐거웠다. 그가 걸어갈 새로운 길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