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은 현역…K군가로 안보 중요성 일깨운 노장들

대한민국 군가합창단 제5회 정기연주회
이윤정
2022년 06월 13일 오후 5:21 업데이트: 2022년 06월 14일 오후 11:17

호국보훈의 달 기념 공연
절반은 예비역 장성 출신
군가로 나라사랑·안보의식 고양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6월 10일 오후 8시.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특별한 연주회가 열렸다. 평균 연령 60대 중반인 중·노년 남성들로 구성된 대한민국군가합창단의 다섯 번째 정기연주회다. 호국보훈의 달을 기념해 무대에 오른 노장들은 우렁찬 하모니의 군가 합창으로 2천여 명의 관객들에게 감동과 추억을 선사했다.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를 주제로 열린 이번 연주회는 전투복 차림의 머리 희끗희끗한 중·노년 남성 70명이 국군교향악단의 연주에 맞춰 육군·해군·공군·해병대 군가를 연이어 열창하는 것으로 막을 올렸다. 이들의 군복이 눈에 익다 싶더니 2016년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궜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대위(송중기 분)가 입었던 바로 그 군복이었다.

이판준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의 지휘로 △옛 전우들의 행진곡 △멸공의 횃불 △부라보 해병 △멋진 사나이 △힘내라! 대한민국 등 군가 15곡이 연주됐다. 아마추어 합창단이고 연령대도 높지만 목소리는 젊은이 못지 않게 힘이 넘쳤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나며 호소력 짙은 울림으로 전해졌다. 빨간 마후라, 진짜 사나이 등 일반 대중들의 귀에 익은 군가가 나올 때는 관객들도 박수와 함께 따라 부르기도 했다.

공연은 심언호 중령이 지휘하는 국군교향악단 협연과 어우러져 웅장함을 더했다. | 대한민국군가합창단 제공

공연은 심언호 중령이 지휘하는 국군교향악단 협연과 어우러져 웅장함을 더했다. 국군 교향악단은 2010년 1월, 우리나라 전 군 유일의 오케스트라로 창단했다. 이후 미국 5개 도시 순회연주, 한-베트남 수교 20주년 기념 초청공연,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합동연주, 중국 베이징 초청 연주 등 군 문화 외교사절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날 연주회에는 참전용사와 가족, 천안함 유가족, 국가유공자 등이 초청됐다. 정호용 전 국방부장관과 권영해 전 국방부장관도 공연장을 찾았다.

2시간 남짓 이어진 연주회에서 군가 외에 무인도, 최진사 댁 셋째 딸 등 가요도 선보였다. 이 밖에도 국방부 국악대 초대국악대장을 지낸 김호석 경기대 실용음악과 교수의 향피리 연주, 소리꾼 전태원의 판소리, 소프라노 김정혜, 정시영의 오페라 음악 등 다채로운 레퍼토리 구성으로 풍성한 무대가 펼쳐졌다.

2시간 남짓 이어진 연주회는 군가 외에도 향피리 연주, 판소리, 오페라 등 다채로운 레퍼토리 구성으로 풍성한 무대가 펼쳐졌다. | 대한민국군가합창단 제공

‘대한민국 군가합창단’은 국가 안보 일선에 있었던 전직 국방장관, 예비역 장성(將星)이 주축을 이루는 군가 합창모임이다. 단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들의 어깨에 달린 별을 모두 합치면 100개가 넘은 적도 있다. 사회에서 맡은 직업과 역할은 제각각이지만 ROTC, 육군포병학교 등 ‘군대’라는 연줄로 하나로 뭉쳐 합창을 시작한 지 몇 년 만에 30여 명이던 단원들은 세 배로 불어났다.

홍두승 서울대 명예교수가 단장을 맡고 있으며 학계, 언론계, 법조계, 교육·문화계, 기업 등 사회 각계 각층에서 리더 역할을 해온 역군 90여 명으로 구성됐다. 이판준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가 지휘를, 최윤진 숭실사이버대 외래교수가 피아노 반주를 담당하고 있다.

홍두승 단장은 군가합창단의 의미를 묻자 “전역한 군 원로로서 후배 장병들을 위로하고 사기를 진작하는 취지로 만들었다”며 2016년 제1군단 포병여단 연병장에서 위문공연 했던 추억을 떠올렸다.

아울러 “매년 6월을 기해 나라와 민족을 구한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의 희생을 추모하고 나라의 소중함과 군의 중요성을 일깨운다”며 특히 이번 공연을 두고 “북한의 도발과 핵실험 기류 속에서 안보 위기가 가중되는 가운데 이뤄진 시의적절한 공연이었다”는 의미도 부여했다. 홍 단장은 “무엇보다 나라와 군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군대라는 공통의 화제로 뭉칠 수 있다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라고 덧붙였다.

군가합창단의 시작은 사적 모임에서의 즉석제안이었다. 2013년 즈음,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홍두승 교수, 김종완 전 재외동포재단 이사, 김영석 전 연세대 부총장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 “우리 군가 부르는 모임 한번 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군합창단은 즐겁게 군가를 부르면서 군 생활의 추억을 나누고 군 부대 위문으로 후배 장병들을 격려하자는 취지에서 결성됐다.

점차 단원 수가 늘고 연습공간을 마련하기가 어려워지자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이 사옥을 내주었다. 단원들은 한 달에 두 차례씩 이판준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군가를 연습했다.

군가합창단 2019년 오스트리아 공연 당시 모습 | KTV국민방송 캡처

합창단은 2015년 6월 25일, 서울 송파구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6·25 전쟁 65주년 기념행사로 첫선을 보인 후 군부대 공연 등 본격적인 대외활동에 나섰다. 같은 해 8월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광복 70주년 기념행사, 11월엔 서울 영등포구 KBS홀에서 국방부 주최 군가합창대회 초청 특별연주로 무대에 올랐다. 2016년 12월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미 친선 송년음악회에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공연은 2016년부터 시작됐다. 2016년 6월 20일 서울 서초구 더 케이호텔 아트홀에서 대한민국군가합창단 창단연주회를 시작으로 2019년까지 매년 6월 정기연주회를 이어오다 코로나19 사태로 2020, 2021년은 공연하지 못했다.

해외 공연을 통해 참전용사를 기리는 추모행사를 열고 생존 노병을 위문하기도 했다. 2019년 10월, 네덜란드와 벨기에 한국참전비를 방문해 6·25 참전 용사를 위문하고 오스트리아 국방부 초청 비엔나 공연을 성료했다.

6월 10일 공연을 앞두고 분장실에서 대기 중인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 본인 제공

공연이 끝난 뒤 합창단 테너 1 파트를 맡고 있는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회장을 로비에서 만났다. 창단 초기부터 참여해온 채 회장은 “이번 공연을 위해 음원과 악보를 전자우편으로 받아서 각자 연습한 뒤 지난 2월부터 매주 월요일에 모여 2시간씩 맹연습했다”며 “옛 전우들이 모여 함께 군가를 부를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이어 “간접적으로나마 안보 의식을 고양하는 의미에서 앞으로도 전방부대 위문 공연 등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군합창단은 오는 9월 6일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장천 아트홀에서 2020년 작고한 고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 추모음악회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