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석에 통찰력을 새겨넣은 예술가, 로렌초 베르니니

미셸 플라스트릭(Michelle Plastrik)
2023년 11월 25일 오후 11:14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8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1598~1680)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생의 예술가다. 그는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인 천재 예술가로 불린다. 화려하면서 극적인 바로크 양식을 정립한 그는 조각뿐만 아니라 건축과 회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생동감 있는 대리석 조각상

‘4대강 분수’(1651),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 이탈리아 로마 나보나 광장 | 공개 도메인

이탈리아 로마에는 베르니니의 흔적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나보나 광장에 설치되어 있는 환상적인 ‘4대강 분수’를 비롯해 ‘성 테레사의 황홀경’과 같은 장엄하고 웅장한 조각상에 이르기까지 그의 재능은 현재까지 많은 작품으로 남아 사랑받고 있다.

‘자화상’(1623),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 캔버스에 오일. 이탈리아 보르게세 미술관 | 공개 도메인

미켈란젤로 이후 가장 재능 있는 조각가로 꼽히는 베르니니는 당대 예술계에서 가장 기대받는 예술가로 교황과 많은 귀족의 후원을 받았다. 특히 그는 후원자들로부터 흉상 제작 의뢰를 많이 받았다. 단단한 대리석에 자연주의적 통찰력과 생동감, 인물을 꿰뚫어 보는 심리적 이해를 투영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수많은 흉상 조각상 중,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인 ‘스키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의 두 흉상’은 베르니니의 훌륭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빛나는 재능을 인정받다

‘바로크 양식’은 17세기 유럽에 널리 퍼진 예술 사조로,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최초의 시각적 예술 양식이다. 특히 이 예술 사조의 발전에는 베르니니의 공이 상당히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만큼 베르니니는 당시부터 엄청난 사랑과 인정을 받아왔다.

베르니니는 조각가로 활동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나폴리에서 태어나 이후 평생을 로마에서 보낸 그는, 로마 최고의 부호이자 교황 바오로 5세의 조카인 스키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1577~1633)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어린 시절부터 큰 후원을 받았다. 추기경은 미술품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많은 작품을 수집했다.

‘아폴론과 다프네’(1622),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 | 공개 도메인

추기경이 베르니니에게 신화와 성경을 소재로 한 대형 조각상 제작을 의뢰해 탄생한 걸작이 ‘아폴론과 다프네’, ‘다윗’ 등의 작품이다. 베르니니는 모든 조각 장르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고 그의 재능과 명성은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졌다.

추기경은 베르니니의 손에서 자신의 초상화 흉상이 탄생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의 염원은 그가 사망하기 한 해 전인 1632년에야 이루어졌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이 바로 ‘스키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의 두 흉상’이다. 이 작품은 과거 추기경의 별장이자 현재 로마 국립 미술관인 보르게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스키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의 두 흉상’(1632),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 공개 도메인 (왼쪽 : 첫 번째 흉상 / 오른쪽 : 두 번째 흉상)

추기경을 모델로 한 이 흉상은 실물 크기의 대리석으로 제작되었다. 성직자 복장을 한 이 흉상은 원래는 하나만 제작될 예정이었으나, 재료의 결함으로 인해 두 번째 조각상이 탄생하게 되었다.

쌍둥이 흉상

베르니니가 처음 만든 추기경의 흉상은 마치 관객에게 말하려는 듯 입술에 힘을 줘 살짝 벌어져 있다. 이렇게 ‘말하려는 모습’을 묘사한 것은 베르니니가 처음 도입한 기법으로, 그의 예술적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또한 추기경의 조각상은 눈동자가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그 덕에 그의 지적이고 총명한 면모가 돋보인다.

‘스키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의 흉상’(1632/첫 번째 작품),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 | 공개 도메인

20년대 인문 예술학자 로버트 토르스텐 피터슨은 베르니니에 대한 저술서 ‘베르니니와 예술의 과잉’에서 베르니니가 추기경의 첫 번째 흉상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에 재앙이 닥쳤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베르니니가 끌을 가볍게 두드리자, 대리석에 내재한 단층선을 따라 균열이 생겼다. 이 균열은 이마에서 목 뒤편까지 생겼다. 조각의 형태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고 형태는 유지되었지만, 균열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베르니니는 소중한 친구이자 열정적인 후원자인 보르게세 추기경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대리석을 구해 두 번째 흉상 제작에 착수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노력으로 두 번째 흉상은 15일 만에 완성되었다. 추기경은 첫 번째 작품을 보고 실망했으나 두 번째 작품을 보고 크게 감격했다.

베르니니가 만든 두 개의 흉상은 생김새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첫 번째 작품이 더 생동감과 활기를 띠고 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예술적으로 엄청난 완성도를 지닌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극찬받고 있다.

칭찬의 힘

추기경의 두 흉상이 지금까지도 극찬받는 이유는 대리석에 투영된 그의 통찰력과 표현력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비치의 ‘모나리자’가 여러 감정을 한 번에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이 흉상 또한 각도에 따라 표정이 달리 보이는 미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바로크 예술의 선두 주자인 베르니니는 타고난 잠재력과 예술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나 이처럼 예술성이 꽃피는 데에는 그의 가장 큰 후원자인 보르게세 추기경의 영향이 지대했다. 추기경은 베르니니를 처음 만난 순간 그에게 “너는 로마를 위해 탄생했다. 그리고 로마는 너를 위해 탄생한 것이다”라고 칭찬했다. 소년의 재능을 알아본 추기경의 칭찬은 어린 베르니니의 야망이나 꿈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베르니니는 그 모든 것을 이룬 위대한 예술가로 거듭났다.


미셸 플라스트릭은 뉴욕에 거주하며 미술사, 미술 시장, 박물관, 미술 박람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