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정전 사태로 보는 중국 관료사회의 ‘탕핑’ 현상

스산(石山)
2021년 10월 5일
업데이트: 2021년 10월 5일

최근에 주목받는 중국 관련 이슈는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과 중국공산당의 인질외교,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그룹의 금융 위기, 대규모 정전 사태 등이다. 오늘은 정전 사태를 다뤄보기로 한다.

필자 나이 또래의 중국인은 모두 정전을 자주 겪었다. 필자는 어릴 때 정전을 좋아했다. 정전 되면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마음껏 놀다가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정전’ 핑계를 대면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때는 집집이 양초를 준비해 비상시를 대비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중국의 일부 지역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하지만 요즘 사회는 전기가 없으면 40~50년 전보다 훨씬 심각해진다. 전기 의존도가 더 높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휴대폰 배터리를 장시간 충전하지 못하면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지금은 다들 알리페이나 위챗으로 결제를 하고 물건을 사기 때문이다. 사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도 많다.

이런 대규모 정전 사태는 주로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발생하는데, 이번 실책은 관료들의 집단 ‘탕핑(躺平)’에서 비롯됐다.

‘탕핑(躺平·드러눕다)’은 ‘쓸데없이 노력하지 말고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하자’는 생활 태도를 말하는데, 최근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탕핑(躺平)주의’가 널리 퍼지고 있다.

중국의 전기 공급은 크게 공업용, 상업용, 도시용, 농촌용 등 4등급으로 나뉘며 등급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정부는 도시 주민이 쓰는 전기를 가장 중시하고 가격도 가장 싸다. 이번 정전으로 많은 도시가 피해를 봤는데, 이례적으로 수도 베이징 주민들까지 영향을 받았다.

29일 인터넷에 떠도는 정부 문건에 따르면, 시진핑이 “대가를 따지지 말고” 주민들이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상황이 그만큼 심각했음을 말해준다.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대체로 석탄 원가가 전기요금보다 높다는 점과 ‘탄소중립’ 정책을 꼽는다. ‘에너지 소비 이중 통제(能耗雙控)’라고 불리는 탄소중립 정책은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기 위한 탄소 저감 정책을 말한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흥미로운 대목을 짚었다. 인민일보는 논평을 통해 “(지방정부가) 초등학생이 밀린 여름방학 숙제를 몰아서 한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많은 성·시가 베이징 정부가 하달한 연간 탄소 배출량 감축 및 에너지 소비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자 연말에 돌격적으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대정전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방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대목으로,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지시를 착실히 실행하지 않아 이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맞서는 일종의 연성(軟性) 저항이다.  즉 중앙이 지시한 이상 책임은 중앙에 있다며 일종의 ‘탕핑’ 수법을 쓴 것인데, 실제로 이런 역할을 했다. 주민들의 인터넷 댓글을 보면 지방에 대한 비난은 거의 없고 베이징에 대한 불만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중국의 화력발전은 대부분 국유기업이 담당하고, 국유기업의 관리자는 모두 관료다. 그들의 심정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석탄값이 전기값보다 높은 현상은 중앙정부가 호주 석탄 수입을 금지한 데서 비롯됐다. 발전을 많이 할수록 적자가 커지는 상황인데 마침 탄소 배출 감축을 요구하니 아예 발전을 하는 둥 마는 둥 ‘탕핑’을 한 것이다.

좀 지나고 석탄 가격이 떨어지든가 중앙정부가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다시 정상적으로 발전을 할 것이다. 적자가 발생하면 상부에서 경영 책임을 묻기 때문에 그냥 ‘탕핑’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중국 관계(官界)에서 관원의 ‘탕핑’은 사실 젊은이들보다 더 심각하고 더 일찍부터 시작됐다.

3~5년 전에 신화통신이 관료 사회의 나태함을 경계하는 논평을 낸 적이 있는데, 요즘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인민일보의 인터넷판 인민망은 8월 27일 ‘탕핑하는 심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소수의 간부들이 탕핑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일부 나이가 좀 많은 사람은 ‘배가 항구에 도착하고 차가 정류장에 도착했다(정년이 됐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고 생각해 ‘손을 떼는 식’으로 탕핑을 하고, 어떤 사람은 고위급 위원으로 선출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식으로 탕핑을 하고, 어떤 사람은 평소에 업무 의욕은 있지만 조직 구조상 승진할 길이 막막하다고 생각해 ‘승진을 포기하는 식’으로 탕핑을 한다.”

지난해 11월 인민일보의 또 다른 기사는 “많은 중국 공산당 관리가 어려움에 직면하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비켜 간다”고 지적했다. 또한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공을 세우려 하지 않고 과실이 없기만을 바라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이 기사는 문장 말미에 중요한 말을 남겼다.

“낙마한 관리들은 일을 많이 해서 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 고의로 법을 어기고 규율을 어지럽히는 짓을 한 것이다.”

이 말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지난 몇 년간 너무 많은 관리가 낙마했고, 낙마한 후의 처지가 모두 참담했기 때문이다. 부부급(副部級·부성장 및 차관급) 이상이 327명, 해방군 장교와 무장경찰관(부군급 이상)이 67명 낙마했다.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8차 당대회(2012년) 이후 실각하고 실형 선고를 받은 관료는 정국급(正國級·국가지도자급) 1명(저우융캉), 부국급 6명, 군사위 위원급 2명, 정부급 수십 명, 차관급 수백 명이다.

입건된 부성급 부군급 이상 간부는 440명인데, 이 중에는 18차 당대회 후보 중앙위원 이상 43명,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기위) 위원 9명, 해방군 장교와 무장경찰관(부군급 이상) 67명이 포함됐다. 그 외 청국급 간부 8900여 명, 현처급(縣處級·중앙기관 처장급) 간부 6만3000여 명, 기타 말단 간부 27만8000여 명도 입건됐다.

이들은 형사 처벌을 받아 교도소에 수감된 자들이다. 그 외 당 내부에서 ‘처분’을 받은 자들도 있는데, 좌천이나 경고를 받은 자 등은 200여만 명에 이른다.

이것은 2012년 말부터 2017년 말까지의 상황일 뿐이고, 최근 2~3년간 대대적인 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많은 관료가 낙마하는 것 외에도 정법 계통의 경찰과 검사, 판사를 포함한 하위 간부들도 대거 조사를 받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인터넷 소식에 따르면 쓰촨(四川)성에서만 자수한 공안경찰이 4만여 명에 이르고, 공안부 중요 인물 여러 명이 낙마했다.

지난 8월 중기위 회의에서 왕젠신(王建新) 중기위 및 국가감찰위 선전부장은 “중공 18차 당대회가 열린 2012년 말 이후 지금까지 전국 기율검사 감찰기관에서 388만 건(417만 명)을 입건하고 380만 명 이상을 당 기율 처분을 했으며, ‘부적격 당원’ 90여만 명을 제명했다”고 밝혔다. 중국 공산당의 표현에서 ‘제명’은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다. 즉 교도소에 가두는 것과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에서 친지와 통화할 때 가장 큰 화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지인 중 누가 죽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 체포됐다는 것이다. 이는 크게 이상할 게 없다. 공산당원 9000만 명 가운데 400만 명이 조사·처분을 받는다는 것은 20명에 한 명꼴이다. 또 1000만 관료 중에 90만 명이 법적 책임을 추궁당한다는 것은 10명에 1명, 즉 10%가 부패 소송에 연루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누구나 체포된 관리를 여럿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다시 관료들이 왜 탕핑을 하는지 살펴보자.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인민일보는 중국 공산당이 관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일을 많이 해서 실수를 많이 범했기 때문’이 아니라 ‘고의로 법을 어기고 규율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을 때 실수인지 고의인지 누가 알겠는가? 누가 결정하는가? 우리는 일부 고위 관리들이 법정에 설 때 모두 ‘실수’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상부와 다른 관리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중국의 법관은 독립적으로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자의 정신에 따른다. 실형을 선고할지 몇 년형을 선고할지는 모두 상급자가 결정한다. 상급자가 ‘고의적이다’라고 하면 고의적인 것이 된다.

문제는 관계에서나 재야에서나 남에게 미움을 사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금전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손에 피를 묻힌 사람도 적지 않다. 한마디로 누구에게나 정적(政敵)이 있다. 뭔가를 잘못하면, 그게 실수라 해도, 정적은 반드시 원칙과 노선을 내세우고 ‘정치 문제’로 몰아 추궁한다. 예를 들면 당에 솔직하지 않았거나 당에 신념을 가지지 않은 것도 관리가 낙마하는 죄명이 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중국 공산당 관계가 얼마나 험악한지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탕핑을 해야 위험을 잠시나마 피할 수 있다.

이는 공산당 관리들을 위한 변명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 관계에서 부패하지 않으면 벼슬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관리는 혼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으로 협력해야 한다. 중국 공산당 체제에서 혼자만 물들지 않고 깨끗하면 협력할 사람이 없게 된다. 베이징 당국의 표현을 빌린다면 ‘패거리’가 없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 공산당 체제에서 승진도 할 수 없고, 설사 승진한다 해도 외톨이가 돼 얼마 지나지 않아 밀려날 것이다.

그래서 중국 공산당의 법률에 따르면 중국 관료는 대부분 탐관오리로, 모두 죄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은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모두가 법률이란 탈을 쓰고는 암묵적인 규칙에 따라 일을 처리했다. 그러나 지금은 암묵적인 규칙이 바뀌었다. 더구나 이 새로운 규칙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관계의 운영 및 작동 방식에 큰 혼란이 빚어졌고, 탕핑이 최선의 선택이 됐다.

고위 관료에게 있어서 ‘탕핑’은 적극적인 정책 결정이나 적극적인 상황 판단은 하지 않은 채 데이터만 제공하고 상부에서 지시한 것만 하는 것이다.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천여 년 전 중국 수나라 제2대 황제 양광(楊廣)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요양성을 공격했다. 수양제는 총지휘관이 돼 구체적인 공격 전략을 짰다. 그러나 수양제는 수백㎞ 떨어진 후방에서 지휘했다. 성벽을 뚫을 때마다 전방의 장수가 말을 타고 달려와 보고했고, 명령을 받고 돌아오면 성벽은 다시 막혀 있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니 겨울이 왔다. 마침내 전투는 대패했고, 후퇴할 때 추격당해 장병 수십만 명을 잃었다.

분에 못 이긴 수양제는 명령에 불복하는 관리도 죽이고 명령에 복종하는 관리도 죽였다. 이후 잇따라 요동 정벌에 나섰고, 마침내 강성했던 대국이 눈사태처럼 무너졌다. 내부적으로 보면 수나라는 각지의 관리들이 탕핑하는 바람에 무너졌다. 즉 적극적인 정책 결정을 하지 않고 적극적인 정세 판단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은 명나라 말기에도 발생했다. 군에는 군대를 감독하는 환관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환관들이 일선 군대의 최고 지휘관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황제에게 보고하는 것이 주된 임무인 환관들은 군에 관해서는 전혀 몰랐다. 결국 군 지휘관들은 주동적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탕핑을 했다.

역사는 돌고 돈다. 전체주의 체제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바로 ‘풀어주면 혼란해지고, 조이면 죽는다’는 것이다. 역대 중국 왕조가 멸망한 것은 외적의 침입이 아니면 내부 민란 때문이었다. 전자는 황제가 모든 권력을 거머쥠으로써 군정(軍政)이 경직되는 것과 관련되는데, 바로 지나치게 권력을 거둬들이면 관원들이 외부 침입에 주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나라가 죽는 것이다. 후자는 황제가 권력을 지나치게 풀어 지방 관원들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면 중앙의 명령이 집행되지 않고 지방 세력이 할거해 왕조가 무너지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경제적으로도 그렇다. 이런 차원에서 대정전 사태를 보면, 하급 관리들은 베이징의 ‘톱 레벨 디자인’을 보면 웃기고 이치에 맞지 않지만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산당 중앙의 중요 방침을 ‘망의(妄議·함부로 논함)’한다는 혐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수동적으로 집행함으로써 지금 이 국면이 조성됐다.

시진핑이 집권한 후는 ‘조이는’ 과정이다. 결과는 당연히 ‘죽음’에 이르는 길뿐이다. 관리들이 대규모로 탕핑하는 것은 이 ‘죽는’ 과정을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일 뿐이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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